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차 지난주 파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한ㆍ프랑스 정상회담은 지난해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처음 열린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이 엘리제궁을 방문, 양자회담을 가진 것은 2018년 10월 이후 거의 5년 만이다.

윤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경험이 없는 정치 신인 출신으로 정계 투신 1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된 공통점이 있다. 한편 작년에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7년차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퇴임 이후 EU의 선임(senior) 지도자가 되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선 공동 언론 발표에서 “프랑스는 대한민국의 오랜 친구로, 1950년 6ㆍ25전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가 위기에 놓여 있을 때 달려와 준 진정한 우방국”이라며 ”이러한 도움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6위, 수입시장 점유율 8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고 양국 간의 전통적인 유대를 강조했다. 또 문화강국 프랑스를 염두에 둔 듯 한국은 ”영화 ’기생충‘을 만든 나라가 되었고, 이곳 파리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K팝의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 위협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전 세계 평화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북한의 불법적 도발에 대해 대한민국은 차기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해서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6·25 전쟁에 프랑스 대대를 파견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와 같은 국제법에 의거한 공동 참여에 의해 북핵 위기에도 결연히 대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루는 데 프랑스가 한국을 지지할 것이라고 재천명했다. 이는 정권에 관계없이 프랑스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2016년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북한의 핵 확산 위협에 대해 언급하면서 “프랑스는 한국과 ‘동맹(alliée) 관계’라고 말했다. 또 2018년 프랑스를 방문,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원칙인 ‘CVID’를 강조하며 완곡히 거절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북한의 명백한 인권침해 역시 지속적으로 단호히 규탄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혁명 발발 한 달 후인 1789년 8월 26일 '인간 및 시민의 권리 선언'(인권 선언)을 공포한 프랑스는 인권 선도국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늘 단호한 입장을 보여왔다. 프랑스는 EU 주요국 중 북한과 수교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한화문화재단의 퐁피두센터 해외관 서울 유치를 양국 문화 기관 간의 교류 강화의 사례로 예시하며 프랑스 문화도 K팝의 파리 공연처럼 한국에서 ‘열기(ferveur)’를 불러일으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또 양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포함한 외교·안보 협력, 인공지능(AI)·우주 등 첨단기술과 미래 전략 산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유럽에서 인태 전략을 선도하는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한국이 주최한 ‘2023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 2개 프랑스 자치령(프렌치 폴리네시아, 뉴칼레도니아)이 참여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프랑스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를 방문 중인 한국 8개 그룹 회장단을 21일 엘리제궁으로 따로 초청해 경제협력을 논의했다. 양국 교역 현황은 작년 한국의 대불 수출이 15% 증가하여 130억 달러로 사상 최대다. (수출 52.5억 달러, 수입 77억 달러, 한국무역협회 통계)

회고컨대 프랑스는 근·현대사의 고비에서 우리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중요한 우방이다. 1836년 1월 프랑스인 모방 신부(Pierre-Philibert Maubant)는 중국으로부터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잠입한다. 그는 북미 지역에서 온 개신교 선교사들보다 반세기 앞서 계획적으로 조선을 찾은 최초의 서양인이다. 당시 ‘서학(西學)’이라고 불리던 천주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유교를 국교로 하는 '은자의 왕국’ 조선에서는 반체제적인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1866년 봄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금지령을 내려 프랑스 선교사 9명과 함께 한국인 천주교도 8천여 명을 학살한다.

같은 해 10월 프랑스 신부들의 살해에 보복하기 위해 프랑스함대는 강화도를 침범한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서양 군대와의 무력 출동인 병인양요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886년(고종 23년) 한불 양국은 조불(朝佛)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에 포함된 선교 자유에 관한 조항은 외국 선교사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 이 땅에 신앙의 자유를 꽃피우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프랑스는 우리 독립운동 및 대한민국 태동과 깊은 인연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上海)의 프랑스 조계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파리는 유럽 내 한국 독립 외교의 중심지였다.

또 파리의 국립샤요극장은 1948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탄생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이곳 샤요 극장에서 개최된 제3차 유엔총회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는 결의안(195호)을 48대 6(기권 1)으로 통과시켰는데, 이는 6·25가 터졌을 때 유엔군 파병의 근거를 제공한다.

한국전쟁 기간 중 프랑스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1개 대대 규모의 병력(연인원 3,421명)을 파병한다. 이 중 270명이 전사한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항상 우리 정부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이와 같이 프랑스는 근현대사의 고비에서 한국에게 많은 도움과 영향을 준 우방이다. 한불관계의 역사는 바로 우리의 근·현대사다.

지난 130년간 한국은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Les Échos)가 지적하듯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변방 국가에서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되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프랑스와는 민주, 법치, 인권이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과학 기술, 안보, 방산, 원전, 우주 항공 등 다방면에서 협력을 긴밀히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