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신구대 교수
전정일 신구대 교수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다 보면 문득문득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곤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외환위기 이후에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취업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청년들이 세상을 한탄하면서 나오게 된 말이다. 부모가 자식을 지원해주는 능력에 따라, 그 능력치가 높으면 금수저, 낮으면 흙수저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수저 분류 기준은 집안의 부유함을 수저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해서 ‘수저계급론’이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사실 이 수저계급론의 수저를 나누는 기준은 아주 모호하다. 대기업 재벌이나 기초생활수급자같이 거의 모든 사람이 금수저와 흙수저라고 합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수저의 기준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수저계급론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하는 것은 최근에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뉴스에 ‘금수저’들의 약진이 눈에 띄게 많아지면서, 이들에 의해 촉발된 갈등도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으키는 갈등의 저면에는 금수저들의 공감능력 부족이 깔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약간의 ‘선민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필자와 같은 ‘흙수저’들의 시기와 질투가 갈등을 더 부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식물계에도 금수저와 흙수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간쯤 어디에 해당하는 ‘은수저’와 ‘동수저’도 존재한다. 식물을 분류하는 한 방법으로, 번식체 유형에 따라 크게 포자식물과 종자식물로 나눌 수 있다. 포자식물은 번식체, 즉 자손으로서 ‘포자’를 형성하는 반면, 종자식물은 씨앗, 즉 ’종자’를 형성한다. 포자식물과 종자식물의 차이는 여러 가지 특징으로 나눌 수 있지만, 가장 쉽고 핵심적인 차이는 그 번식체 내부에 영양물질을 담고 있는지다. 포자식물은 어미 식물이 포자에 영양물질을 담아주지 않지만, 종자식물은 생장 초기에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는 영양물질을 종자에 담아준다. 이렇게 보면 포자식물은 흙수저이고 종자식물은 금수저이다.

한편, ‘금수저’인 종자식물 중에 진정한 ‘금수저’는 따로 있다. 현화(顯花)식물 또는 꽃식물이라고도 불리는 피자(被子)식물이 바로 그것이다. 식물분류학적으로 종자식물을 다시 겉씨식물 즉, 나자식물(裸子植物)과 속씨식물 즉, 피자식물로 나눈다. 나자식물과 피자식물의 핵심적 차이는 씨를 감싸는 씨방의 유무로, 피자식물만이 씨방을 가지고 있다. 이 씨방은 나중에 열매로 자라게 되는데 열매 또한 씨앗에게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왼쪽: 닭의난초, Epipactis palustris (L.) Crantz ]과 가장 큰 씨앗[오른쪽: 코코드메르야자, Lodoicea maldivica (J.F.Gmel.) Pers.], 출처: ‘꽃식물의 이해’(앤 베빙턴 저, 전정일 번역)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왼쪽: 닭의난초, Epipactis palustris (L.) Crantz ]과 가장 큰 씨앗[오른쪽: 코코드메르야자, Lodoicea maldivica (J.F.Gmel.) Pers.], 출처: ‘꽃식물의 이해’(앤 베빙턴 저, 전정일 번역)

정리하자면, 포자식물은 부모에게서 지원받은 것이 거의 없는 흙수저이고, 종자식물 중에 나자식물은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은 은수저이며, 종자식물 중에 피자식물은 종자 속에 저장된 영양분과 종자를 감싸고 있는 열매라는 자산까지 물려받은 진정한 금수저인 것이다.

식물 진화 역사를 보면, 포자식물로부터 종자식물이 진화했다. 당연히 시간적으로도 종자식물이 더 나중에 지구에 등장했다. 약 4억 년 전부터 2억5천만 년 전까지는 흙수저인 포자식물이 지구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 후에 6천5백만 년 전까지는 은수저인 나자식물이 가장 번성했다. 금수저인 피자식물은 그 이후 현재까지 번성하고 있다. 피자식물이 금수저이긴 하지만 모두 잘 사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종자에 들어 있는 영양물질의 양과 열매의 크기나 과육의 형성 여부 등이 아주 다양하므로 사람 세상에서의 수저계급론과 같이 아주 모호하고 멸종하는 식물도 많다.

역사를 살펴보거나 국가 간에 비교를 해봐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각 집안의 부유함에 차이가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부모가 부유하면, 즉 금수저라면 흙수저보다는 더 손쉽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흙수저들도 노력하면 된다’라고도 생각한다. 이 두 가지 모두 분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흙수저와 금수저가 똑같은 노력을 해도 부모의 다양한 지원에 힘입어 금수저가 더 높은 효율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흙수저들은 무한한 노력과 생존력을 발휘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다행인 것은 같은 포자식물의 특성에서 볼 수 있듯이, 흙수저들은 놀라운 생존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 포자식물인 쇠뜨기라는 식물은 잡초로 인식되기 때문에 농부나 정원사의 눈에 띄는 대로 뽑혀 나간다. 그런데, 생존력이 워낙 강해 아무리 뽑아도 완전히 제거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농부들이나 정원사에게는 아주 지긋지긋한 식물이다. 그러한 생존력을 바탕으로 쇠뜨기는 4억 년 가까이 지구에서 번성하고 있다. 

 쇠뜨기. 어디에서나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는 대표적 포자식물.
 쇠뜨기. 어디에서나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는 대표적 포자식물.

이렇게 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흙수저들이여, 용기를 내자. 흙수저의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굳건하게 살아가자. 포자식물에서 종자식물로 진화했듯이 우리의 후대는 금수저로 진화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금수저들이여, 겸손하고 양보하며 덕을 쌓자. 종자식물도 멸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 글은 7월 5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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