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국고보조금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 연일 발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조금을 타 쓰는 시민사회단체들도 투명성에 비상이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보조금 비리를 ‘부패와 이권의 카르텔’로 규정하고, 이는 혈세의 낭비일 뿐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행위라고까지 말했다. 백 번 들어도 옳은 말이다. 그동안 정부가 보조금 비리를 알고도 방관하고 있었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인지 현장에서도 기부금, 보조금 운용을 투명성의 준거에 맞추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4월에 이미 완료된 올해의 공익법인 투명성 평가를 지금이라도 받겠다는 요청이 한국가이드스타에 잇달아 들어왔다. 예년에는 없던 일이다.

공익법인의 비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부천국 미국에서도 1960년대까지는 공익법인이 세금을 피해가는 창구로 인식될 정도로 비리가 많았다. 제임스 레이놀즈라는 유명인은 여러 개의 암 기금 모금단체를 만든 뒤 30년 동안이나 온갖 수법으로 모금을 했다. 그런데 암 환자에게 쓰인 돈은 모금액의 3%도 채 안 되고 개인비용으로 유용한 돈이 2000억 원이 넘었다. 못된 것만 배웠는지 우리나라에서도 판박이가 있었다. 공익법인 새희망씨앗은 모금한 돈 128억 원 가운데 126억 원을 외제차 구입, 해외 골프, 아파트 구매 등에 탕진했다 법의 철퇴를 받았다. 윤미향 사건도 그 짝퉁이다.

공익법인의 비리를 없애기 위해 미국은 꾸준히 제도를 정비해왔다. 공익법인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1969년의 세금개혁법(Tax Reformed ACT)으로 투명성과 책무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를 도입했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의 비영리 단체들은 IRS990 양식에 의거, 12쪽 분량의 필수 공시양식에 참고서류를 첨부해 국세청(IRS)에 제출하고 있다. 한 해 동안의 사업내용과 기부금, 보조금 사용 내역을 모두 공개하는 자료이다. 심지어는 상위 연봉자의 연봉까지 공개되고 있다.

우리도 회계 투명성 등 당면의 과제가 해결되면 공익법인이 사업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책무성 평가로까지 발전시켜야 한다. 독감에 항생제 처방뿐만 아니라 체질개선 요법까지 권고받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된다.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업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설립한 공익재단은 기업 사회공헌의 첨병으로 적극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때로는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편법 운영되어 왔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몇 년 전 대기업 산하의 거의 모든 공익재단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거기다 기업재단은 재벌가 사모님의 장식품이나 다름없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기부금 지출에도 투명성에 대한 기준 없이 권력의 요구에 따르다 보니 기부하고도 사법처리되는 우스운 일까지 생겼다. 이 모든 것이 기업 사회공헌의 이름으로 집행되니 돈은 돈대로 쓰고도 제대로 된 평가를 국민들에게 받기 어려웠다.

차제에 기업이 설립한 공익재단의 경우 신탁이사회를 구성해볼 것을 제안한다. 이는 법에 의해 강제되지 않고도 진정성만 있다면 충분히 검토될 만하다. 기부한 사람이 아니라 기부자의 뜻을 구현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공익법인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구성된 신탁이사회를 통해 기업은 국민들 사이에 사회공헌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영국 정부는 공익법인에 대한 지침서를 통해 신탁이사회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고 있다. 기업이 솔선해 신탁이사회가 정착된다면 이는 다른 공익법인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비영리 전반에 투명성과 책무성이 향상되는 선순환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 제도를 공익법인 운영에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정 공익법인 종사자가 그 법인과 연관된 공직으로 취임하면 자동으로 그 단체에 대해 유관부처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시민운동의 지도자들이 유관 부처의 장으로 들어가 자기가 몸담았던 공익법인에 보조금을 퍼주는 악습이 근절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의 시민단체 눈치보기도 막을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또 돈과 자리를 노린 시민운동 지도자들의 일탈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투명성은 해결되어야 할 사건이라기보다는 스며들어야 할 문화로 보아야 한다. 단속과 처벌에 의존하는 투명성은 오래가지도 자리 잡지도 못한다. 스스로 지키고 가꾸어 문화로 정착되어야 시민운동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빛나게 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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