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결혼 의례의 변화가 눈부시다. 새삼 의례(ritual)에 눈길이 가는 건,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디테일의 변화 속에 의외로 곱씹어야 할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6.25전쟁 중인 1952년 혼례를 올린 (친정) 엄마는 하얀 한복에 하얀 면사포를 쓰고 부케를 들고 있었고, 아버지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즐겨 입는 연미복에 나비넥타이 차림이었다. 10여 년이 지나 1963년 결혼한 막내이모는 사진 속에서 허리 라인이 잘록한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 보아도 무척 세련된 모습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빈곤의 늪을 지나는 동안에도 결혼 의례의 서구화는 제법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80대로 접어든 사촌이모가 결혼식을 올렸던 1960년대 중반에는 양가를 대신해서 하객을 초청하는 청첩인을 따로 모셨다고 한다. 청첩인으로는 양가와 친분있는 명망가나 지역사회 유지를 모셨다는데, 그만큼 혼례가 공적 의미를 부여받는 중차대한 사건이요, 가족 또한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사적 공간이기보다는 친족 및 지역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의례 속에 담아낸 셈이라 하겠다.

그동안 우리네 결혼식은 신랑 신부보다는 양가 부모님이 중심이 되어 치러졌다는 데 별 이견은 없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대형교회에서 중국계 미국인과 결혼식을 올린 선배는, 당시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결혼식장을 가득 메운 모습을 보고 신랑이 무척 당황해했다”는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물론 지금도 부모님 도움 없이는 결혼이 불가능한 만큼 ‘상견례 후 프러포즈’가 일부 결혼 적령기 세대의 새로운 관행으로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한데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랑 신부로 이동해가면서 ‘주례 선생님’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에 유독 눈길이 간다. 사회 전반에 어른이 사라지고 있는 풍경과 오버랩되어 씁쓸함을 숨길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분명 결혼의 의미가 신랑 신부를 키워낸 가족 및 친족집단의 결합으로부터,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만남으로 변화된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동시에 결혼의 위상이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는 공적 지위로부터 지극히 사적이며 소소한(trivial) 일상으로 격하(?)되었음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한다.

주례의 위기 징후는 조금 더 일찍 감지되었다. 이웃 대학의 원로교수님으로부터 당신 교수 생활에서 나름 보람 있었던 주례를 다시는 서지 않겠노라 다짐했다는 하소연을 들은 것이 1990년대 중반이니 말이다. 예전 제자들은 깍듯이 예를 갖춰 주례를 모시곤 했었는데, 어느 날 주례 자격으로 결혼식장에 도착하고 보니 문 앞에서 신랑 친구 녀석이 봉투를 쑥 내밀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라는 것이다. 당시 느꼈던 불쾌함과 민망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며, 혀를 끌끌 차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균 초혼 연령이 남녀 모두 서른을 훌쩍 넘겼으니, 충분히 나이 들어 하는 결혼식인 만큼 부모님께 의지하기보다 본인들 주도로 하겠다는 속내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신들 결혼식에 평소 왕래도 없는 친인척이나 얼굴도 잘 모르는 부모님 친지보다는, 직장 동료 및 친구의 진심어린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도 납득이 된다. 솔직히 왕래하는 친족의 범위도 대폭 줄었고, 친족 유대의 중요성도 예전만 못하니, 결혼식에 초대할 친인척 명단이 초라해진 것 또한 사실 아니던가.

그러니 번거로운 주례도 모시지 않고, 번잡한 폐백도 생략한다. 한때 친정 식구들 앞에서도 인사를 올려야지 해서 폐백을 두 번 드리는 것이 잠깐 유행한 적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생략하는 것이 대세란다. 하기야 “맏며느리는 하늘이 낸다.” 했던 시대를 지나 “제 남편이 장남이에요.” 하는 시대로 접어든 데다, 이젠 장·차남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졌고 며느리의 정체성 또한 약화된 시대 아니던가.

이제 결혼식장은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보다는 신나고 즐거운 이벤트장이 되었다. 이 또한 공적 의미를 상실한 결혼의 기반이 오롯이 두 사람 관계에만 의존하는 ‘표현적 개인주의’로 이동해갔음을 반영하는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다만 2인 관계는 본질적으로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가변성을 내장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소개되면서 찬반 논란을 부른 4500달러짜리 프러포즈 이벤트는, 고가의 명품과 깜짝 이벤트 속에서 상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믿는 요즘 연인들의 안타까운 몸부림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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