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민주당이 개딸(개혁의 딸) 문제로 계속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재명 당 대표를 비롯한 친명계는 지지 세력인 개딸을 버릴 수 없지만 통제가 쉽지 않아 고민이다. 한편 비명계는 개딸의 극단주의가 민주당을 분열시키고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데 장애물이어서 정치적 결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곧 출범하는 민주당 혁신위가 좋은 해법을 제시해야 할 판이다.

도대체 개딸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이런 상반된 평가가 나오나? 개딸은 오늘날 가장 활발한 팬덤(fandom)이다. 어른들은 이 단어가 생소할 텐데, 광신자(fanatic) 또는 팬(fan)에 영토를 뜻하는 돔(dom)를 합성한 것이다. 주로 아이돌 스타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을 팬덤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치인 팬덤은 특정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팬덤이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함께 특정 정치인을 비판하는 다른 정치인들을 악마화하거나, 불법 시위, 문자나 팩스 폭탄 등으로 업무를 마비시키는 폭력성을 보여 주는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한편 팬덤은 주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익명성과 함께 신속성을 무기로 한다. 따라서 누가 개딸인지 알기 힘들고, 또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다만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개딸 회원만이 노출될 뿐이다.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집단이므로 조직이나 지도부가 없어서 개딸 회원들에 대한 통제가 쉽지 않다.

그런데 개딸과 같은 팬덤의 원조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총선에서 낙선한 노무현 후보의 지역주의 타파 등에 동조하는 지지자들이 온라인에서 만나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을 만든 것이 노사모였다. 그런데 노사모가 2002년 대선에서 노 후보의 당선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는 바람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필자가 2003년 노사모 전국 총회에 참석해 보니 한국의 다른 정치집단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과거 정치인 지지 모임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서 이기자"는 분위기였으나 노사모는 정치를 놀이(play)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총회에 참석한 회원 중에 3분의 1 정도는 정치적 토론을 즐기고, 3분의 1 정도는 축구, 노래를 비롯한 오락을 즐기러 왔고, 3분의 1 정도는 나와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심지어 나이 많은 어머니와 함께 온 회원, 어린 아들과 딸을 유아차에 태우고 다니는 회원, 노래 CD, 티셔츠 등을 파는 회원 등 매우 다채로웠다.

필자가 노사모 총회 참여 관찰 후 김대중의 ’동교동계‘와 노사모를 비교하는 논문을 발표했더니 학자들의 반응이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어졌다. 일부 학자들이 "노사모가 노무현의 홍위병에 불과한데 노사모를 지나치게 미화한다"고 비판하였다. 다른 학자들은 노사모가 디지털시대 새로운 형태의 정치 참여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노사모와 같은 정치인 팬클럽이 세 차례의 정치적 사건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개딸처럼 팬덤으로 진화했다. 첫째, 2009년 노무현의 자살 이후 노사모 회원들 간에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정서가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노무현의 후광 아래 대선에 도전하는 문재인 후보가 출현하자, ‘문빠’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제인)”으로 진화하였다. 이후 "네 마음대로 해, 내가 지켜줄게"라는 정서가 확산되었다. 마지막 사건은 지난 대선에서 2030 여성 유권자들이 윤석열 후보의 남성 구애전략에 맞서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스스로를 개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후보가 0.7%라는 매우 아슬아슬한 표차로 낙선한 후. 개딸이 강성 정치 팬덤으로 진화하였다.

팬덤의 역사적 진화과정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시대에 온라인 정치참여 양상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사모는 주로 블로거(blogger)시대에 등장한 것으로 SNS시대에 등장한 팬덤에 비해 정치적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정치 참여에 비하면 온라인 정치활동의 상대적 이점이 매우 크다. 온라인의 경우 오프라인에 비해 참여 비용이 훨씬 적기 때문에 유권자의 정치 참여가 매우 용이하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정치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참여의 효능감도 크다. 결국 팬덤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온라인 정치 참여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팬덤이 생성AI 시대에는 새로운 온라인 집단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에서는 내년 대선에서 AI가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팬덤들이 AI를 활용한 공천운동이나 선거운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한편 팬덤 현상은 한국 정당의 허약성을 의미한다. 정당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당원 및 유권자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고, 내부의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외인부대, 비공식 집단에 불과한 팬덤이 활개를 치게 된다. 결국 정당 조직을 개방적이고, 민주적으로 개편하여 팬덤 회원들이 당내 모임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 또 정당이 내부 갈등을 스스로 신속하게 해결해 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이득을 보기 위해 팬덤을 악용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팬덤의 익명성을 이용해서 일부 극렬분자들이 상대방을 악마화할 때, 이를 제대로 제재하거나 질타하지 못하면 결국 팬덤 정치인 자신이나 소속 정당이 나중에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다. 팬덤 정치인들의 각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