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언론인·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정숭호 논설위원

내가 삼손이라 치면 내 힘은 메모 앱인 ‘에버노트(Evernote)’에 들어 있었다. 삼손은 애인 데릴라에 속아서 머리칼이 잘려 힘이 사라졌지만 멍청한 나는 한순간 손가락을 잘못 놀려 내 힘의 원천을 날려 버렸다.

나는 책에서 찾아낸 위대한 작가/사상가들의 말을 이 에버노트에 저장해왔다. 내 글이 힘 있어 보였다면 거의 이 앱 덕분이었다. 필요할 때 여기서 좋은 말을 꺼내서 내 글에 섞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 에버노트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복원하려 온갖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메모 앱 '에버노트'.
    메모 앱 '에버노트'.

에버노트라는 앱이 있다는 건 무슨 책을 읽다가 알았다. 10년도 더 전이다. 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고 메모의 힘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종이 공책에 휘갈겨 놓은 메모는 낙서일 뿐 필요할 때 찾아 쓸 수 있는 내 기억력의 보완장치는 될 수 없었다. 거기 비하면 에버노트는 정말 편했다. 책을 읽다가, 영화를 보다가 좋은 글귀가 나오면 곧바로 자판을 두들겨 입력할 수 있었고 책을 페이지째 스캔해서 저장할 수 있었으니 왜 안 편하겠는가.

10년이 지나면서 내 딴에는 엄청난 ‘자료’를 모았다. 여러 해 전에 대충 셈했더니 일부 중복이 있었으나, 1만 꼭지는 더 됐던 것 같았다. 처음엔 사용법을 잘 몰라서 마구잡이로 입력했지만 익숙해지면서는 주제별로, 작가별로 모으게 되었다. 어떤 것은 책 제목으로 정리했다. 정리 기준은 멋대로였지만 키워드로 검색하면 내가 찾던 문장들이 순식간에 숨어 있던 곳에서 나타나 모니터에 좍 펼쳐졌다. 칼럼을 쓸 때는 물론이고 책을 쓸 때는 더 요긴히 이용했다. 얼마 전 출간한 ‘애덤 스미스’도 그렇게 모은 자료가 있어 이른 시간에 탈고할 수 있었고, 그전에 낸 ‘가보지 않은 여행기’, ‘진정한 대통령 트루먼’도 에버노트의 기억력에 의지했다.

칼럼을 쓸 때 주제를 못 찾으면 여기에 저장한 글들이 주제가 되어주었다. 마감이 코앞인데도 글감이 없어 ‘오늘은 무얼 쓰나’ 생각에 빠진 채 에버노트를 펼쳤다가 그날의 시의(時宜)에 맞는 기막힌 글귀를 마주하고는 기뻐하면서 신나게 자판을 두들긴 적이 많았다.

책 읽는 게 싫증 날 때는 여기에 적어 둔 글들을 읽으면서 그것을 달랬다. 그 글귀들이 담겨 있던 책, 그 책을 읽게 된 계기, 그 책을 소개한 사람, 그때의 상황 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을 생각한 건 물론이다.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힘이 작용했기에 이리도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었나라는 의문도 생기고, 그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 있기에 이렇게 치밀하고 정연한 이론을 만들어 우리의 삶에 아직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라는 부러움에 빠지기도 한다. 멀리로는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괴테 위고 톨스토이, 가까이로는 콘라드 오웰 츠바이크 카잔자키스 카뮈 보르헤스 마르케스 쿤데라 루슈디 등등 세계문학전집을 이루는 이름 중 상당수와, 에라스무스 몽테뉴 스미스 다윈 미제스 하이에크 포퍼 라이엔바흐 등등의 사상가들이 그런 사람들이다(그 노트가 없으니 이들 외의 위대한 이름들을 적어 넣을 수가 없다. 머리 잘린 삼손도 나처럼 애처롭게 울부짖었겠지).

가나다로 정리한 것의 제일 앞 항목은 ‘가난’이었다. 거기서 어떤 글이 맨 앞에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오웰이 쓴 ‘파리와 런던의 성자’라는 글에 나오는 문장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거지가 되어봤다는 오웰의 하층 생활 체험기인데, 길을 걷다가 가게 유리창에 정말 너무나 처참한 모습의 거지가 있어 누군가 가봤더니 자기였다는 글이었다. 제일 마지막 항목은 ‘희생’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저장한 글만 잘 정리해도 책 한 권 만들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만들었으면 초라하나마 ‘인용문 사전’ 비슷한 게 됐을 것이다. 책 만드는 게 무리라면 페이스북에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가장 최근에 떠올렸던 항목은 ‘뇌’와 ‘기억’이었다. 머리를 달고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어떤 이는 터무니없고 사악한 것에 머리를 쓰고 어떤 사람은 선하고 좋은 일에 머리를 쓰려 하는가, 말하자면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에 맞서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궁금해하다가 그들의 뇌 속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뇌’ 항목에서 기억나는 건 움베르토 에코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그는 ‘프라하의 묘지’라는 소설에 “우리의 기억은 뇌의 주름 사이사이에 쌓여 있다”라고 적어 놓았던 것 같다. 사람들의 뇌 속에 들어가 그 주름 사이에 무엇이 쌓였나가 궁금한 나는 이런 궁금증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 빗대 ‘나는 너의 뇌 속에 들어가고 싶어’라는 제목의 글에 담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헛일이 되었다. 오늘 에버노트를 켜자마자 모니터에 또 나타난 “업데이트하세요”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에버노트는 이 메시지를 집요하게 보내왔다. 업데이트를 하면 돈이 꽤 든다는 걸 알아서 무시했는데 오늘은 너무 오래 공짜로 썼다는 생각이 들어 ‘예(Y)’를 누른 후 시키는 대로 ‘다음(NEXT)’을 눌렀다. 잘못됐음을 알아차린 건 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쳐넣은 후였다. 처음 가입했을 때, 즉 10년 전에 쓰던 주소와 비번을 입력해야 하는 걸 요즘 쓰는 걸로 입력한 순간 신규 가입자가 됐고 10년간 기록해온 내 공부는 사라졌다. 10년 전 쓰던 메일 주소와 비번을 알면 다시 찾을 수가 있다고 하나 그것 잊어먹은 지도 한참 오래라 불가능하다.

삼손으로 시작된 이 글을 시지프스로 끝내볼까 싶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들 만 개 이상의 인용문을 새로 저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책을 읽을 것이고 아름다운 글귀를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예전처럼 흘려보내나?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모아놓자. 모아놓자. 그게 아니면 내가 무얼하겠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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