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누구에게나 인생 드라마가 있겠으나, 내게는 높은 시청률 속에서 세 번째 시즌을 방영 중인 ‘낭만닥터 김사부’가 있다. 전문 문화평론가도 아니고 아직 종영 전이라 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시즌1의 1화부터 지난주 방영된 시즌3의 14화까지 모든 회차를 시청한 애청자로서 이렇게까지 강한 고민과 토론 거리를 제공하는 드라마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소감을 나누고자 한다. 드라마의 내용이 노출될 수 있으니 아직 다 못 보신 분은 서둘러 14화까지 보고 이 글을 읽어주시면 좋겠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개인사로 인하여 시골 병원에서 김사부라는 가명으로 살고 있는 천재 의사다. 그런데 이 병원이 한적한 시골 병원이 아니라 환자의 수나 상태가 전쟁터 수준이다. 대형도로, 유명한 산, 스키장과 카지노까지 사고가 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갖추어 주말마다 엄청난 환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배우 한석규가 열연 중인 김사부는 천재 의사답게 열악한 시설과 부족한 의료진에도 불구하고 명대사인 “살린다, 무조건 살린다”를 외치며 난세의 영웅다운 면모를 뽐낸다. 형태는 의학 드라마이지만 비현실적인 속도와 기술로 수술 중인 주인공을 보는 젊은 의사들의 표정이 마치 무협지의 천하제일검을 보는 듯하다.

기대하며 시작한 이번 시즌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종전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주었다. 4화쯤 지났을 때 이번에 작가가 바뀌었는지 검색해 봤을 정도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낭만’

가장 당황스러운 점은 이번 시즌의 악역 차진만 센터장(이경영)이다. 주인공인 김사부의 위기라는 점에서 악역이라고 칭했지만,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 관한 공식 소개에도 주인공과 '대립'이라고 되어 있을 뿐 악역이라고 소개되어 있지 않다.

전 시즌에서는 드라마의 전형적인 악역이 등장했다. 능력도 없으면서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서 환자의 치료를 방해하는 모습에 ‘뭐 저런 의사가 다 있어?’ 분노하고 결국 방해 실패에 허망한 표정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통쾌했다.

이번 시즌의 차진만 센터장은 개인의 안녕을 꾀하는 악역이라기보다는 그저 현실에 너무 타협한 사람이다.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서슴없이 포기하는 모습에 정이 떨어지다가도 “의사들도 사람인데 왜 모든 위험을 부담해야 하나?”, “환자의 치료만큼 의사들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의사들이 존경은 못 받아도 존중은 받아야 할 것 아니냐”라고 나설 때는 ‘어라? 틀린 말이 아닌데?’ 하며 말문이 막힌다.

김사부가 말하는 낭만이 이상주의의 헛소리라며 의료생태계의 현실에 대해 논하다가 낭만은 꿈의 다른 말이며 앞으로 나아갈 동력임을 깨닫고 자신의 자존심보다 병원의 이익을 위해 자리를 비워줄 줄 아는 다른 방식의 지도자였던 센터장이 떠난 자리에는 통쾌함보다는 여운과 안타까움마저 남게 된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닥터’

이번 시즌에서 또 하나 달라진 것이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다. 대사도 별로 없던 돌담병원 식구들의 과거와, 병원 밖의 개인사들이 병렬식으로 펼쳐져 너무 많은 정보가 피로할 정도였다. 그런데 모아두고 보니 이처럼 현실적인 드라마가 없다.

주변 인물들이 김사부의 낭만과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들도 병원 밖의 삶이 존재하는 사람인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밤낮없이 환자의 치료에만 최선을 다하는 천재 의사 곁에 있으면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이혼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오죽하면 별거의 이유가 “꿈이 생기니 현실과 멀어지더라”고 했겠는가? 환자를 구하다 크게 다친 의사는 본인의 걱정보다 무리하는 동료들에 더 신경을 쓰며 회복되지 않은 손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무리수를 둘 수 있다. 대형재해 현장 파견으로 죽을 뻔하다가 구출된 간호사는 환자를 살피느라 따로 안부를 전하지 못해 온종일 마음 졸이며 걱정한 연인에게서 결국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기도 한다.

이쯤 되니 전 시즌의 성공으로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지는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된다. 김사부 같은 비범한 의사 캐릭터 때문에 괜히 평범한 의사들이 문제인 것처럼 욕을 먹는다고, 판타지 같은 드라마 속 의사를 현실에서 찾는 시청자들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말이다.

이 드라마에 자꾸 감정이 이입되는 것은 김사부의 소명이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소셜 미션으로 투사되기 때문이기도 한다. 자원순환 분야의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필자는 “환경을 위한다면 너도 모든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고 숲속의 움막에서 지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사회 문제는 무관심 속에서 심화되기에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동참이 필수이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이들은 개인의 삶을 완벽히 희생해야 한다는 오해가 ‘알면 골치 아파지니 처음부터 관심을 갖지 말자’며 눈을 돌리게 만든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사부’

이번 시즌의 주제는 아무래도 사부이다. 티가 날 정도로 선생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수많은 방해와 역경에도 굳건히 흔들리지 않던 김사부는 제자들로 표현되는 주변 인물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맞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한다.

이 고민이 응축되어 왜 소중한 후배들을 사지로 모느냐고 묻는 차진만 센터장에게 김사부가 질문을 던진다. “너(현실주의 센터장)의 방법으로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달라”고 말이다. 후배들 사이에서도 “김사부처럼 할 수 있는 건 김사부뿐, 너는 너만의 길을 찾아라”라는 조언이 나오기도 한다. 그간 성장하는 젊은 의사역으로 시골 병원에 파견 온 것이 이상할 정도로 비범한 능력자들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능성만을 가진, 아직 가르칠 게 많은 젊은 의사들이 등장한 것도 사부로서의 낭만닥터를 잘 보여주는 요소이다.

아직 종영 전이지만 외로운 천재 1인의 100%보다 보통 사람 100명의 1%가 모였을 때 세상이 바뀐다는 결말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역시 내 인생드라마라며 찬사를 보낸다. 한 사람의 완벽한 희생보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1%씩 확실한 최선을 다할 때 세상은 더 빨리 지금보다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모두의 낭만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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