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어느 나른한 오후, 식물을 무척 좋아하고 잘 키우는 학생으로부터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나른한 오후에 힘내시라는 따뜻한 인사말과 함께 보내온 사진 속의 식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것 같은 모습이다.

사진 속에는 선인장 한 그루가 자그마한 화분에서 힘차게 솟아올라 자기 몸집만 한 꽃을 달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선인장을 키운 학생의 말에 의하면 7년 전에 높이 3cm 정도의 어린 묘를 사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20cm 정도로 컸고 이번에 처음으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선인장은 보통 전문가도 기르기 어려워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사실 식물을 많이 죽이는 편이라. 식물 전공자로서 부끄러워서 어디에 말도 잘 못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전문가도 기르기 어려워하는 선인장을 꽃까지 피우는 학생이 놀랍고 대견하고 감사하다. 이 학생은 이미 전문가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잘 키워 처음 꽃핀 모습을 내게 공유해주는 그 마음이 더 감사하다. 

‘자태양’ 선인장, 선인장과의 식물로 학명은 ‘에키노세레우스 리기디시무스[Echinocereus rigidissimus (Engelm.) Rose]’
‘자태양’ 선인장, 선인장과의 식물로 학명은 ‘에키노세레우스 리기디시무스[Echinocereus rigidissimus (Engelm.) Rose]’

학생이 보내준 사진 속의 식물은 우리말로는 ‘자태양(紫太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선인장과의 식물로, ‘에키노세레우스 리기디시무스[Echinocereus rigidissimus (Engelm.) Rose]’라는 학명이 붙어 있다. 영어 이름으로는 ‘애리조나 무지개선인장(Arizona rainbow cactus)’ 또는 ‘무지개 고슴도치선인장( rainbow hedgehog cactus)’이라고 불리는데, 꽃을 들여다보면 ‘무지개’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자생지 자연에서는 높이가 최고 45cm 정도까지 자란다고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식물의 원산지는 멕시코의 치와와와 소노라, 미국의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등의 건조한 사막 지역이다. 사막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덥기만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식물이 사는 지역은 해발 1200~2000m의 높은 지역이니 겨울에는 추울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러니까 ‘자태양’ 선인장은 추위에 잘 적응할 것이 분명하다.

자료에 의하면 이 선인장은 영하 12도까지 견디고, 봄철에는 급격히 온도가 높아지는 환경이 되어야 꽃이 잘 핀다고 한다. 더불어 봄이 되기 전에 토양이 매우 건조한 상태가 유지되면 개화가 촉진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생지인 미국의 애리조나 지역의 기후를 보면, 연간 강수량이 400mm 정도에 불과하고, 비가 오는 시기는 12월과 1월 사이에 잠깐, 그리고 7월 잠깐에 불과하고, 5~6월은 연중 가장 건조한 시기이다. 이러한 기후에 적응했을 ‘자태양’ 선인장은 겨울에 잠깐 내리는 비를 머금고 있다가 뜨거운 초여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사진을 보내준 학생도 겨울 3개월 동안은 물을 주지 않고 키운다고 하니, 이 사실을 잘 알고 키운 것이다. 

 이 자태양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오랜 기간 에너지를 축적하며 기다리고 준비해온 것을 잘 알게 해준다. 
 이 자태양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오랜 기간 에너지를 축적하며 기다리고 준비해온 것을 잘 알게 해준다. 

우리는 식물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물, 양분, 빛 등 모든 것이 풍부한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식물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영양생장을 충분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즉, 몸에 에너지를 충분히 저장해야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양생장을 잘하기 위한 좋은 환경이면 꽃 피울 준비를 일찍 마칠 수도 있고, 사막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몸에 충분히 에너지를 저장했다고 해서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개화를 촉발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식물 종류에 따라 하루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는 것이 개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또, 저온이 개화를 촉진하기도 하고, ‘자태양’ 선인장에서 보듯이 건조한 환경이 개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식물 종류에 따라 다양한 조건이 개화를 촉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리하면, 꽃을 피울 에너지를 몸속에 충분히 준비한 후에 무엇인가에 자극받아 개화가 촉진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 중에서도 오랫동안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하는데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꽃 피우기에 아직 충분한 에너지가 축적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꽃 피울 마지막 한 가지 촉진제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식물마다 꽃 피게 하는 마지막 조건이 모두 다르듯이, 사람들이 인생에서 저마다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촉진제도 모두 다를 것이다. 오랜 기다림 속에 핀 선인장꽃처럼, 그 사진의 주인 학생도 오랜 기다림 속에 시작한 공부를 잘 마치고 마침내 꽃 피우기를 응원한다. 그리고 또, 꽃을 피우기 위해 열심히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도 어느 날 마침내 꽃 피울 수 있기를 기원하고 응원한다.

           <다음 글은 6월 22일에>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