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평일에 연차를 내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마침 엄마도 쉬는 날이라 하셔서 우리는 모처럼 밖에 나가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우리 동네 맥도날드 뒤편에는 엄마와 내가 참 좋아하는 감자옹심이(강원도 음식으로 감자와 녹말이 든 새알)를 파는 식당이 있는데, 이곳에 오면 ‘감자옹심이+메밀 칼국수’ 메뉴를 주문한다. 가끔은 왕만두 한 접시를 곁들이기도 한다. 한가한 우리 동네치고는 줄을 서서 먹는 게 영 어색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웬만큼 잘 알려진 장소인 것 같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식당에서 인사를 잘해주는 싹싹한 종업원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도 매끄러운 운영으로 자리를 곧잘 만들어냈다.

손님 4명이 나가자 종업원이 우리를 그 자리로 안내했다.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엄마하고 내가 넓게 앉아서 점심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컵에 물을 따르고 수저를 올려놓자마자, 직원은 맛있는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를 신속하게 가져왔다. 오랜만에 먹는 메밀 칼국수 생각에 들뜬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엄마는 출입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저분들하고 여기 같이 앉는 게 어때? 다리가 안 좋으신가 봐.”

예상치 못한 말에 두 눈썹을 번쩍 들어 올렸다. 갑자기 할머니 두 분이 내 옆에 서서 우리 모녀의 4인석 식탁에 손을 얹고 물었다.

“우리 2명인데 여기 같이 앉을까?”

1년에 몇 없는 날이라서 엄마하고 단둘이 맛있는 점심을 즐기고 싶었다. 거절할 틈도 없이 할머니는 풀썩 앉으시는 게 아닌가. 내가 기대한 건 우릴 향해 다가오는 뜨거운 사발 그릇이었지만 눈 앞에 펼쳐진 건 옆자리 할머니와 원치 않는 합석이었다.

“여기다 감자옹심이+메밀 칼국수 두 그릇 더 갖다 줘요.”

엄마를 향해서 나는 잔뜩 인상을 썼다. ‘오늘 편하게 점심을 먹고 싶었는데 비좁은 자리에서 메밀 칼국수를 후루룩하기에 영 마뜩잖다’라는 걸 표정으로 담았다. 김치를 집으려고 팔을 들 때마다 할머니의 꽃무늬 소매가 자꾸 어깨에 닿았기 때문이다. 식당의 다른 곳은 자리가 비워졌다가 금세 또 채워졌다.

엄마와 나의 대화는 메밀 칼국수 면을 이로 잘라내듯 뚝 끊어졌다. 내 몫의 음식만 쳐다보면서 감자옹심이를 질겅질겅 씹고 삼켰다. 할머니는 3분만 기다리면 새 자리에 앉을 수 있었을 텐데 종업원이 권하지도 않는 우리 쪽 자리에 굳이 찾아와야 했을까? 가뜩이나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는 타인과 불필요한 접촉을 삼가는 분위기(사회적 거리 두기)였는데 반경 5센티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옷소매를 스쳐 가면서 식사를 하는 게 불편했다.

설상가상으로 귀도 따가웠다. 할머니는 음식을 기다리는 내내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옆 테이블 대화가 너무 시끄럽다고 하질 않나, 물이 없다, 음식이 느리게 나온다는 둥. 나는 눈썹이 거의 하나로 이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말없이 메밀 칼국수만 쳐다보았다.

“아유 그렇기는 해요. 여기가 가장 바쁠 때 우리가 먹으러 온 거니까요~”

엄마는 할머니의 날카로운 지적에 둥그런 대답을 꺼냈다. 감자옹심이를 입에 머금어도 친절한 표정과 온화한 말투를 유지하는 엄마는 왜 나처럼 불편해하지 않을까?

음식이 나오자, 할머니들은 우리가 먹는 그릇과도 비교를 시작하셨다. 우리가 먹던 김치 그릇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김치의 양이 더 적네, 메밀 칼국수를 덜 담은 게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도 할머니의 불만이 귀에 들렸는지 곁눈질로 우리 테이블을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더욱 불편한 얼굴을 한 채로 감자옹심이만 씹었고 엄마는 할머니에게 대답했다.

“그러셨어요?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잖아요. 제가 보기엔 저희가 양이 더 적어 보였는데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네요.”

“아~ 그런가, 내가 봐도 영 다른데~”

“그래도 이 집 음식 참 맛있게 잘해요. 그렇죠?”

“맞아, 이 집이 맛있어.”

우리 테이블은 전보다 평온해졌다. 적어도 할머니는 불만 같은 건 더 이상 꺼내지 않으셨다. 힘을 줬던 눈썹을 다시 내렸고, 마지막에는 할머니들과 끝인사까지 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배를 채우고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끊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The only thing I do know is that we have to be kind. Please, be kind.”(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친절해야 한다는 거야. 제발 친절하게 대해 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올해를 시작하며 펜으로 직접 적었던 문장이 있다. 다정함에는 힘이 있다는 걸 실감한 실제 상황이었다. 친절한 태도는 까칠한 나도 누그러트리고 할머니의 불만도 사그라트리는 단단한 힘을 지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 순간 다정함을 잃지 말자고 곱씹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냉랭해지고 까칠하게 행동하는 내 모습을 반추했다. 영락없이 어린 티가 났다. 친절하고 세심한 엄마를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지닌 참 어른의 모습을 보았다. 엄마의 다정한 대처가 그날의 점심을 더 값지게 해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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