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저 론 디샌티스는 위대한 미국의 복귀(our Great American Comeback)를 이끌기 위해 출마합니다.” 미국 공화당의 내년 대선 경선에서 트럼프의 잠재적 맞수로 거론돼 온 론 디샌티스(Ron DeSantis, 45)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난주 SNS 동영상을 통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선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4년 전 대선 구호를 연상시킨다.

영상 게재 직후 디샌티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트위터의 음성 채팅 플랫폼 ‘트위터 스페이스’에서 1시간 30분간 대선 출마 대담을 갖고 “교육, 총기 등 좌파 진영과 갈등을 빚는 분야에서 보수의 가치를 증진하겠다”며 자신의 브랜드인 ‘문화 전쟁(culture war)’을 앞세웠다.

   본격 점화된 미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그러나 트위터를 통한 초유의 출마 선언은 기술적 문제로 끊김 현상이 반복되다 약 25분간 송출이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접속자 수가 폭증하면서 서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트위터에 디샌티스(Desantis)의 이름을 패러디해 ‘Desaster(재난을 뜻하는 Disaster의 변형)’라는 단어를 올렸고, 바이든은 자신의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인터넷 주소를 트위터에 게재하면서 “이 주소는 작동합니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출마가 기정사실화되는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에서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이후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외에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공화당의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인 팀 스콧, 에사 허친슨 전 아칸소 주지사, 기업가 비백 라마스와미 등이 이미 경선 도전을 선언했으며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오는 7일 출마 선언을 한다고 미 CBS방송이 보도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판세를 보면 향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은 극우에 가까운 ‘강성 보수(hard right)’ 성향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디샌티스 주지사 간 양강 대결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두 후보는 동성애, 낙태, 총기, 인종, 이민 문제 등에 보수적 색채의 강경 메시지를 발신하는 등 이념적 차별성이 크게 없다.

디샌티스는 누구인가? 1978년 9월 14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출생한 디샌티스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아버지는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에서 기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간호사인 서민 가정에서 자랐다. 이 점에서 뉴욕 부동산 재벌 아버지를 둔 ‘금수저’ 출신의 트럼프와는 달리 ‘자수성가형’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백인 노동자들은 대체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반면 교육받은 백인들은 디샌티스를 지지한다.

디샌티스는 아이비리그 명문인 예일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하버드대 로스쿨 재학 중 미 해군 장교로 임관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육군 법무관으로도 근무했다. 쿠바 관타나모 만의 군 포로수용소에 배치돼 수감자의 처우를 감독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이후 이라크에 파병돼 네이비실 팀 자문으로도 활동했다.

디샌티스는 2012년 미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2016년까지 3선에 성공했다. 하원의원 시절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던 그는 40세이던 2018년 플로리다 주지사에 출마해 민주당 앤드루 길럼 후보를 49.6% 대 49.2%로 누르고 최연소 주지사가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가 그가 근소한 차이로 당선하는 데 기여했다. 트럼프가 지난 1월 선거 유세에서 "내가 그를 (주지사에) 당선시켰다"며 디샌티스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배신(disloyal) 행위가 될 것"이라고 비난한 이유다.

그가 대선 후보로 급부상할 만큼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주지사로 당선된 이후 보여준 독특하면서도 논쟁적인 코로나19 대응책과 '문화전쟁' 덕분이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때 학교 수업을 재개하는가 하면, 마스크 의무화 및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등 연방정부의 조치와는 다른 행보를 선택했다.

많은 이들이 끔찍한 결과를 예상했음에도 플로리다주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은 전국 평균 수준을 기록했으며, 감염병 대유행 속에서도 플로리다주의 경제는 다른 지역보다 나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로써 그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추진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는 한 연설에서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디샌티스의 ‘문화전쟁’ 얼마나 주효할까

디샌티스는 민주당이 대변하는 진보 세력에 맞서 ‘문화 전쟁’을 주도하며 보수 적자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그는 지난 1월 플로리다 공립 고등학교에서 ‘미 흑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고, 지난해 3월에는 초등학생에게 동성애 등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하는 ‘돈 세이 게이(Don’t say gay, 게이라고 말하지 말라)’ 법에 서명했다. 학교와 직장에서 인종과 성에 대한 논의를 제한하는 내용의 이른바 ‘워크 중단 법안(Stop Woke Act)’도 추진했다. 또 ‘정치적 올바름(PC)’을 표명한 진보 성향 기업들의 공격에 나서면서 세계적 테마파크인 디즈니월드부터 맥주 브랜드인 버드라이트까지 그의 타깃이 됐다.

디샌티스는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극우 성향이면서도 차별화된 전략을 펼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가 거친 백인우월주의나 “국경에 장벽을 세워 이주자를 막자” 같은 과격한 언행으로 ‘러스트벨트’(Rust Belt,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의 백인 실업자 등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면, 디샌티스는 가족주의와 기독교 기반의 정통 보수층을 겨냥한다. 트럼프에 버금갈 정도로 강성 보수이면서도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트럼프’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워싱턴포스트는 그가 “트럼프보다 똑똑하다(smarter than Trump)”고 평가했고, 진보 성향의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디샌티스가 달변이고 순발력이 있으며 “머리가 있는 트럼프(‘Trump with a brain)”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반대 평가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디샌티스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같은 양면성을 지닌 인물로, 규범과 권위주의 사이를 오간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지지율에서는 트럼프가 디샌티스를 월등하게 앞서고 있다. CNN이 여론조사기관 SSRS와 지난달 17~20일 미국 유권자 12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화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 중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한다는 비중은 53%였다. 2위 디샌티스는 26%를 기록, 트럼프의 절반 수준이었다. 나머지 공화당 경선 주자들의 지지율은 6% 이하다.

다만 대부분의 유권자는 확실히 어떤 후보를 지지할지 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CNN은 분석했다. 내년 11월 대선까지 17개월을 남겨두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있는 가운데 트럼프보다 한 세대 젊은 디샌티스가 트럼프 팬덤의 아성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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