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논설위원, KBSI 분석과학마이스터

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1960년대 경제개발과 더불어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몰려들면서 도시가 팽창함에 따라 급수 수요가 늘어났지만, 높은 지대까지 수도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동네 샘터나 수도가 있는 아랫동네에서 물을 길어다 먹게 되었다. 북청물장수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산동네 어머니와 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만 하는 물 부족 애환의 시절이었다. 당시에 동네 뒷산 약수(藥水)터엔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새벽 운동 삼아 물통 한두 개씩 들고 와서 물을 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을 비비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약수터로 따라나서야 했던 지금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후 수도 사정이 좋아졌어도 ‘먹는물관리법’(1995.1.5.)이 제정되고 본격적인 ‘먹는 물의 수질 관리’가 시행되는 1990년대 말까지 약수물 길어오기는 계속되었다.

약수란 암반(巖盤)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 중 몸에 좋다고 알려진 샘물이라고 정의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약수는 특별한 약효보다는 깨끗한 물로 ‘물맛이 좋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먹는 물의 수질 관리’가 적용되면서 다른 지역에서조차 물 뜨러 방문할 정도로 그 지역에서 유명했던 약수가 부적합 판정을 받아 폐쇄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최근 충주시 샘물 약수터는 총 대장균이, 보은 향교골 약수터는 탁도가 수질기준을 각각 초과해 먹는 물 부적합 판정을 받기도 했다(23.05.19, Newsis).

결국 약수란 암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샘물로, 암반의 틈을 지나면서 자연 정화과정을 거치게 되고, 암반의 일부가 용해되어 미량의 미네랄을 포함하는 미네랄워터(mineral water)이다. 다른 말로 광천수(鑛泉水)이다. 지하로 구멍을 뚫어 암반 대수층(帶水層)에서 물을 퍼 올린 지하수와 다를 바 없다. 또한 이를 여과 과정을 거쳐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 생수(生水)이다. 탄산수도 미네랄워터의 일종으로 물속에 탄산가스가 들어 있어 특유의 톡 쏘는 맛으로 일반 생수에 비해 청량감이 좋다. 과식을 하거나 속이 불편할 때 사이다나 콜라를 마시듯 탄산수를 마시면 일시적으로나마 진정되는 효과는 있겠지만, 다량 섭취하면 오히려 위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pH 5.8 이하인 탄산수는 먹는 샘물로 부적합하다.

사람 몸의 약 70%가 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물이 직접 생리작용을 일으키지도, 에너지를 공급해주지도, 면역작용에 관여하지도, 질병을 고쳐주지도 않지만, 부족하면 생리작용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기에 하루 약 3리터 정도의 물을 섭취해야만 한다. 그중 절반은 음식물이나 몸속의 생리작용에 의해 공급되지만, 나머지 절반을 먹는 물로 마셔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먹는 물에 관심을 두고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석회질 기반암으로 인해 샘물을 직접 음용이 불가능한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나마 석회질 성분이 적어 직접 마시기에 적절한 수준의 샘물이나 우물이 발견되면 이를 브랜드화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전설을 만들어 성지화하거나 우연한 치료 효과를 과장하여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소문을 퍼뜨려 기적을 낳은 ‘신비의 물’을 만들어냈다.

세계 4대 ‘기적의 물’이라고 하는 프랑스 루르드 샘물은 성모의 발현지로, 독일 노르데나우 샘물은 석회질 암반이 아닌 폐광산의 동굴로, 멕시코 트라코테 우물은 병원 임상실험을 통한 호전효과로, 인도의 나다나 우물은 델리 북쪽 150km 떨어져 위치하며(남쪽에 비해 북쪽이 석회질 암반이 적음) 말랐다가 다시 솟아났다는 신비감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pH 7.2~7.8의 약알칼리수로 우리나라의 샘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트라코테 우물에 대해 멕시코 보건당국은 "우물에는 칼슘, 칼륨 등 미네랄의 함량이 다소 높을 뿐 치유되는 기적은 없다. 오히려 우물 주변 농장의 하수 때문에 장티푸스나 콜레라를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기적이나 신비화를 좋아하고 상술에 능한 일본도 여기에 합류하여 일본 3대 밀림지대의 하나인 북부 규슈(九州) 오이타(大分)현 해발 1000m의 분지에 위치한 히타천령수(日田天嶺水)가 피부염에 좋은 기적의 물이라고 떠들었다. 검증을 위해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 기적의 물을 분석한 결과 특별한 함유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보통의 우물물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활성수소가 다량 포함되어 있다”며 또 다른 신비화를 촉발했고, 위에서 언급한 4대 기적의 물에도 공통적으로 활성수소가 다량 포함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다가 아예 수소수(水素水)를 상품으로 만들었다.

같은 지역의 샘물을 정화한 후 생수로 판매하다 보니 차별화가 되지 않아, 과학용어를 빌려 신비감으로 포장한다. 그리고 프리미엄 생수 시장을 공략하고자 건강을 유지하려는 현대인의 심리에 편승해 어원조차 불분명한 기능수(機能水)들이 남발되고 있다. 육각수, 알파수, 레민다수, 황토수에다가 수소수, 산소수, 전해수, 이온수, 알칼리수 등이 있고, 이도 모자라 육각수 알칼리 이온환원수, 천연 미네랄워터 등 온갖 과학용어를 갖다 붙여 물을 신비화하고 있다.

육각수는 물 분자가 육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 물이라고 하는데, 액체 상태의 물이 어떠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말은 그냥 거짓말이다. 눈이나 유리창에 얼어붙은 성에의 사진, 즉 고체 상태의 사진을 마치 물이 육각형 모양을 한 것처럼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린다. 전자현미경만 30년을 다뤄온 입장에서 서서히 냉각된 얼음 결정에서 육각형 모양을 확인한 바 있지만, 액체 상태 물의 모양을 관찰한 적이 없다.

정체 모를 촉매로 만든다는 알파수나 우주의 파동을 담고 있다는 레민다수의 원수(源水)는 다른 생수와 다를 바 없는 샘물이다. 황토로 걸러낸 지장수(地漿水)인 황토수를 지금 시대 굳이 마셔야 할 이유가 있을까? 황토 속의 다양한 무기물이 함유되어 있다지만 유용한 미네랄만 들어 있을 것인가?

수소수는 먹는 물에 수소 분자를, 산소수는 먹는 물에 산소 분자를 주입한 물이다. 수소는 시간이 지나면 날아가 버려 애초에 그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용존산소는 일반적으로 상온에서 약 10ppm이 녹아 있고, 온도가 내려가면 조금 더 많이 녹아든다. 하지만 산소수에는 40ppm의 산소가 들어 있고, 고농축 산소수에는 80ppm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사람이 하루 필요한 산소가 약 500g임을 고려할 때 산소수에 들어 있는 산소의 양은 무의미한 수준일 뿐이다.

전해수(電解水)는 먹는 물에 전기적인 힘을 가해서 얻어지는 물로, 산성이온수와 알칼리이온수가 있고, 이온수라고도 한다. 물에 양극과 음극에 백금전극을 넣어 직류의 전기를 통하면, (+)극 쪽에는 물에 녹아 있는 음이온이 모이게 되어 산성이온수가 되고, (-)극 쪽에는 양이온이 모여 알칼리이온수가 생긴다. 특히 알칼리이온수를 알칼리수라 하며 위장증상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도움이 되는 pH는 8.5~10.0의 알칼리수로 ‘먹는 물의 수질기준’을 벗어나 생수로 판매할 수 없고 식품의 제조 용수로만 사용 가능하지만, 생수로 판매되고 있다.

알칼리수는 알칼리 소주로까지 확장되어 두산주류에서 ‘목 넘김이 좋은 부드러운 맛을 내는 소주’가 ‘처음처럼’의 제품 컨셉이 되었다. 처음처럼이 부드러운 소주의 대명사임을 인식시키고자 2006년 20도를 시작으로 2019년 16.9도로 낮춰 부드러운 소주 시장을 선도하다 보니, 시중에서 알칼리수가 목 넘김이 좋은 물로 인식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기도 한다.

어차피 마시는 물, 건강을 위해 이왕이면 좋은 물을 마시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 물을 마시고 만족하면 그만이니 굳이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근거도 없는 각종 과학적 용어를 빌려 신비감을 조성하는 얄팍한 상술에 비싼 값을 치러가며 효과도 없는 물을 선택하도록 방관할 수 없기에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봤다. 물은 물일 뿐이다. 우리나라 생수 회사들도 눈감고 아웅하며 소비자를 현혹하지 말고,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세계적인 명품 생수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