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올해 대학가의 5월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위드 코로나’를 끝내고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던 시기, 19, 20, 21, 22학번 모두가 우왕좌왕 어리바리(?)한 신입생 같다는 놀림을 받았는데, 23학번이 들어온 이후는 캠퍼스 어딜 가나 긴 줄이 이어졌고, 곳곳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인가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 축제 분위기도 모처럼 달아올랐다.

베이비부머인 내게도 대학 축제의 추억이 있다. 일명 ‘뺑뺑이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던 1977년 이화여대에서는 마지막 메이퀸 대관식이 열렸다. 장소는 지금은 사라진 운동장에서. 메이퀸 대관식을 취재하기 위해 일간지 기자들이 몰려들던 시절이었다. 5월 30일 오전 대관식 당일, 녹색 반바지에 가슴 가득 교표가 새겨진 미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신입생들은 외부인들의 운동장 진입을 막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운동장 둘레에 죽 서서 대관식을 참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대학생 눈에는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머리에 왕관을 쓰고 화려한 가운을 입은 여왕의 대관식이 코믹한 에피소드 정도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는 대부분의 여자대학에서 퀸 선발대회를 열었고, 수영복 차림의 여대 퀸이 <선데이 서울>류의 잡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세간에선 어느 여대 퀸이 가장 예쁜지(실은 섹시한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고, 여성의 외모와 지성은 반비례한다는 성희롱성 농담이 떠다니기도 했다.

이화여대의 메이퀸 행사는 여성의 미를 상품화한다는 비난이 고조되면서 폐지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이미 그 이전부터 일부 학과에서는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추첨을 통해 과 퀸을 뽑기도 했고, 입학 후 몸무게가 가장 많이 불어난 친구를 과 퀸 후보로 추천하는 등 퀸 행사 자체를 희화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1970년대 말 대학가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쌍쌍파티였다. 5월 축제 시즌이 돌아오기 전부터 쌍쌍파티에 초대할 파트너를 물색하느라 미팅과 소개팅이 활발히 이루어지곤 했다. 서울대 문리대 1학년 6반과 이대 문리대 1학년 6반 학생이 전원 참석하는 ‘반(班)팅’. 여자의 소지품을 선택하면서 짝짓기가 이루어지는 ‘신데렐라 미팅’, 남녀 숫자를 일부러 맞추지 않아 누군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가야만 했던 ‘피보기 미팅’ 등이 생각난다. 심지어 축제 당일 하루만 땜빵(?)할 파트너를 찾는 ‘대일밴드팅’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예전 이화여대 정문은 이화교로 연결되었고 그 아래로는 기차가 지나다녔다. 우연히 기차 꼬리를 밟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낭설이 전설이 되어 선배에서 후배로 입소문을 타고 전해졌다. 당시 이화여대 쌍쌍파티는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3, 4학년을 위한 축제 날이 되면 정문 대신 쪽문만 살짝 열어 놓고 티켓 검사를 한 후 입장하도록 했다. 그날 쌍쌍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장안의 선남선녀가 모두 모여들었다는 소문은 과장이었겠지만, 늘어선 줄이 정문을 지나 이대 입구 지하철역을 돌아 아현동 방향까지 이어졌던 건 생생히 기억난다.

1970년대 후반은 정치적으로 매우 엄혹했던 유신시대였지만, 역설적으로 대학가엔 치기와 낭만이 넘쳤던 듯하다. 실제로 연고전 고연전이 열리면 이대생들이 대거 파트너로 차출된 덕분에 이대 강의실은 텅텅 비기 일쑤였고, 축제 기간 중 이대 운동장에서 관록의 문리대 연극반 마당극이 열리면, 그 넓은 운동장 절반을 꽉 채운 관객들이 신나게 추임새를 넣는 멋진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제 퇴임을 앞둔 나이에 20대 축제 현장을 어슬렁거리자니, 정체 모를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아이돌에 점령당한 대학가 축제를 비난하고, 개성을 상실한 천편일률적 대학가 축제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미디어의 목소리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도 유명가수나 밴드를 비싼 값에 초대하고, 고고댄스에 디스코에 퇴폐적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았던가.

요즘 20대에게 낭만적 연애는 사치요,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연애를 포기한 지 오래라는 이야기도 그다지 새로울 것 없고, 가벼운 성관계를 선호하는 미국식 훅업(hook up)문화가 한국에도 상륙했다는 소식 또한 오래전에 들었다. 하기야 축제 말고도 게임에 유튜브에 숏폼에 SNS에 지금 세대는 즐길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다채롭고 다양하지 않던가.

마음속 복잡함의 수수께끼는 뜻밖의 순간에 풀렸다. 차 안에서 ‘말을 해도 좋을까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 한 번 먹는 데 하루 이틀 사흘...’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송창식의 노래가 흘러나오던 순간, 아이돌 가수의 K-팝 가사는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들리지 않건만, 20대에 두고 온 그 노래 가사는 구구절절 가슴 깊숙이 들어옴을 느끼던 순간, 낭만은 20대의 전유물이 아님을 알았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낭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절절해지는 것임을...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