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도시에 살다 보니 주변은 늘 메마르고 거친 환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며칠만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면 몸과 마음마저 말라 들어가는 느낌이다. 녹색식물에 대한 갈증으로 눈도 메말라 흐릿해지는 것 같다. 가로수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느 때부터인가 가로수조차 없는 거리가 많아지는 느낌이다.

도시에서는 왜 그렇게 많은 공사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모두 사람들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함이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도시뿐만 아니라 전국을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땅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곳에서도 몸과 마음이 말라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오가는 길의 발걸음을 멈추고 파헤쳐진 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멀리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초록의 빛깔이 군데군데 얼룩처럼 번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디선가 날아와서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식물들이다. ‘선구식물(先驅植物)’, 바로 이렇게 맨땅에 먼저 들어와서 정착하는 식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로 ‘pioneer species’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영어든 우리말이든 참으로 멋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찮은 잡초라고 취급받는 명아주는 식물 천이로 볼 때 의로운 선구식물이다.
 귀찮은 잡초라고 취급받는 명아주는 식물 천이로 볼 때 의로운 선구식물이다.

선구식물은 ‘개척종’이라고도 부르는데, 식물 천이(遷移)의 초기에 맨땅에 먼저 들어와서 정착하는 식물로, 빛을 좋아하고 생장 속도가 빠르며 수명이 짧은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토양에 영양분이 아주 부족하고 극단적으로 건조하거나 또는 반대로 극단적으로 습기가 많은 환경에 잘 적응하는 특징도 있다. 그 외에, 선구식물 중에는 ‘질소고정’ 능력, 즉 질소 비료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생장에 필요한 질소를 공기 중으로부터 흡수하고 변형해 생장에 활용하는 능력을 갖춘 것들이 많다.

이들 선구식물이 한 지역에 들어와서 살아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양분도 물도 아주 부족해서 다른 식물들은 살기 어려운 척박한 땅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한다. 사는 동안에는 다른 식물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질소 비료와 같은 양분을 만들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은 후에는 수명이 짧아서, 또는 뒤이어 따라 들어와서 더 왕성하게 자라는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일찍 생을 마감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척박한 땅에 외로이 들어와서 의로운 일을 하고 일찍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꾼 위인을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선구자’라고 부르듯, 아무것도 자라지 않던 척박한 땅을 녹색의 편안한 환경으로 바꾸는 시작을 끌어내는 ‘선구식물’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존경을 표하자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선구식물과 비슷한 특성을 나타내는 ‘침입종’이라는 것이 있다. 침입종은 척박한 환경을 잘 견딘다는 특성이 있는 점에서는 선구식물과 같지만, 왕성한 생장력으로 다른 식물들이 살아가는 공간까지 모두 점령해서 살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주 다르다. 식물을 잘 모르는 탓에 선구식물이나 침입종 모두 ‘잡초’라는 말로 천대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선구식물은 외롭지만 의롭게 살아가지만, 침입종은 의롭지 못하고 해로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개인이든 기업이든 ‘선구자’를 사칭하는 ‘침입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선구식물을 개척종이라고도 부르듯, 선구자는 ‘개척자’이기도 할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분야에 도전하고 길을 개척해서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그런 선구자가 아쉬운 시대이다. <다음 글은 5월 25일에>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