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첨단기술, 첨단산업을 개발하는 나라가 패권국가로 등극한다는 국제정치경제 이론이 있다. 18세기에 영국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하여 당시 첨단산업이었던 석탄산업과 섬유산업을 발전시켜 패권국이 되었다. 그 후 19세기 들어서 철강산업과 철도산업이 새로운 첨단산업으로 등장하자 영국, 독일, 러시아 등이 경쟁하였다. 영국은 식민지를 개척하여 철도산업을 부흥시켜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미국은 20세기 초에 포드가 자동차 대량생산체제를 개발한 덕택에 철도보다 자동차 생산에 철강을 훨씬 더 많이 투입하여 자동차산업 첨단국가가 되었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산업 연관효과가 높아서 생산, 판매, 수리, 보험, 여행 등 다방면에 걸쳐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미국은 이미 1930년에 각 가정에 평균 1대씩의 자동차를 보유하였다. 유럽의 경우 1950년대 후반에 겨우 이 정도의 자동차 보유국이 되었다. 미국은 자동차 산업을 통해 패권국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상회담 합의사항은 유례없이 광범

한편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1960~70년대에 첨단 전자제품(트랜지스터, TV. 냉장고, 세탁기 등)을 싼값에 대량생산 수출하여 고도성장을 달성한 결과, 1978년에 소련을 능가하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1980년대 초에 ‘재팬 넘버원(Japan Number One)’이 나올 정도로 일본이 패권국의 지위를 넘보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IBM이 PC를 만들고, 스티브 잡스가 애플과 스마트폰을 발명하여 새로운 첨단산업인 IT(정보통신)산업에서 앞서나가자, 일본은 후퇴하고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새로운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첨단산업 패권국가 이론가들은 미중 패권경쟁의 승패는 어느 나라가 첨단기술, 첨단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런 국제정치경제적 시각에서 지난 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되짚어보고, 향후 과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양국은 군사동맹, 핵동맹, 가치동맹, 경제동맹, 사이버동맹 외에 첨단기술동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에 한미 정상의 기술동맹 관련 합의사항을 보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매우 광범위하고 구체적이다. 핵심만을 정리해 보면 첫째, 미국의 국가안보 보좌관과 한국의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창설, 둘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미국 국가반도체 기술센터(NSTC)의 차세대 반도체 공동연구 참여, 셋째, 양자정보과학기술협력 공동성명에 서명, 넷째, 우주와 사이버안보 협력 강화, 다섯째, 이공계 대학원생과 대학생 2023명 교류 프로그램을 위한 6000만 달러 공동 투자 등이다. 우리나라가 첨단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는 미국의 기술동맹 파트너가 된 것은 매우 자랑스럽고, 또한 앞으로 우리의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동맹은 양자의 이익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므로 공짜는 없다. 미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첨단기술이 중국에 유출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기술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기업의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전시키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 기술동맹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미중 패권경쟁에 희생양 되지 않아야

문제의 심각성은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반도체 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고급기술 분야의 한중 무역 제재 등이 미국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한 한국 기업에 대단히 불리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한국 자동차는 제외되어 있다. 또 미국에 투자한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영업기밀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미국의 산업 무역정책이 호혜주의에 입각하여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는 윤 대통령의 방미 후속 조치로 5월 중순에 한국을 방문하는 아라티 프라바카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실장을 설득하여 호혜주의에 입각한 한미 기술동맹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 정부는 1985년 일본이 미국과 플라자협정을 맺어 엔화 절상을 하는 바람에 승승장구하던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이 되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은 플라자협정을 통해 마침내 일본을 견제하는 데 성공하였다. 앞으로 한미 기술동맹이 단순히 중국 견제용이 아니라 한미 양국의 동반성장과 공동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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