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미국에 있는 손주들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보내려고 우체국을 찾았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우편번호에 주소, 전화번호, 보내는 물건의 품목, 중량, 가격까지 일일이 영어로 다 기재해야 하는 난코스였다. 힘들게 발송 주문을 마친 뒤,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스펠링이 틀리거나 알아보기 어려운 필체는 일일이 확인하며 대신 입력해 줘야 해서 인터넷 신청을 먼저 권한다면서 2400원을 할인해 주었다.

처음이어서 어렵지, 몇 번 해 보면 쉽다는 직원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걸 아내가 다 해 주어서 서툴기만 한 나는 엄두가 안 나는 일이 많다. 시도도 안 해 보고 자기에게 미루거나 사람부터 부른다고 아내는 핀잔을 준다. 컴퓨터, 다리미가 고장이 나도, 인터넷이 안 되거나 휴대전화 사용법을 잘 몰라도 아내를 부르고, 열차표나 공연 티켓을 예매하는 일도 아내가 다 해 주니 점점 더 어리바리해진다. 늘 입던 옷만 입는 날 보고 딸아이가 아내에게 아빠 옷 좀 사 주라고 지적한 일이 있었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입다 보면 외출하기 전, 어떤 옷을 입을지 엄두가 안 나는 때도 있다. 당신이 먼저 죽으면 안 되겠다고 아내를 보며 웃었지만,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예삿일이 아니다 싶다.

혼자가 된 나를 위해, 왜 이러고 사느냐며 아이들이 수시로 챙기고 간섭해야 할, 손이 많이 가는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이 기꺼이, 즐겁게 날 찾아오는 건 아니더라도 싫거나 짜증이 나는 짐이 되지는 말아야지 다짐한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도 여전히 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의존하는 자녀, 마마보이나 마마걸로 심리적, 정서적으로 독립 못 한 미성숙한 자녀도 문제다. 결혼을 안 하고 부모 집에서 계속 눌러사는 자녀들, 직업도 없이 여전히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 사는 기생독신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자녀 양육이나 부모 부양도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생기는 가족 문제요 사회 문제이다. 24시간 자신의 생존을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신생아나 영유아는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 자녀의 양육 부담이나 경제적, 신체적, 정서적으로 자식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늙으신 부모 간병 부담이 극에 달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의존이 지나쳐 의존성 성격장애로 진단되면 치료받아야 한다. 타인의 충고나 보호 없이는 일상적인 일도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판단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일을 혼자 수행하거나 시작도 하지 못하는 사람,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과장된 두려움 때문에 혼자 있으면 불안하거나 무기력해지는 사람, 친밀한 관계가 끝났을 때 필요한 지지와 보호를 받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급하게 찾는 사람 등이 그런 경우이다. 연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와 보호를 유도하고, 힘든 상황에서는 무기력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지나친 의존 행동으로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하여 결국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건강한 상호의존이 아니라 병적인 동반의존(공의존)도 문제다. 동반의존이란 다른 사람이 자기 행동에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두면서 남의 행동을 조절하려는 관계 패턴을 말한다. 중독자는 알코올이나 약물, 기타 중독 등에 의존하고 가족들은 이러한 중독자에게 의존한다. 가족이 중독자에게 의존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반의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들이 중독자에게 계속 필요한 존재로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독자가 회복되어 더 이상 알코올이나 약물에 의존하지 않게 되더라도 가족이 그것을 원치 않는 지경까지 간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 홀로서기는 필수 조건이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지 말고 최소한 남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조그만 도전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도 한때 AI니, 메타버스니, 자율주행, 인간형 로봇, 드론, 디지털 전환 같은 주제에 대해 귀동냥하러 다닌 때가 있었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 정보를 접하면 접할수록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만 커져 그런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의 일이라고 접어버린 적이 있다. 휴대전화로 사진 잘 찍는 법, QR코드 활용법, 디지털 드로잉, 유튜브나 PPT 제작 같은 것도 배워 보았지만, 배우는 것으로 그치고, 계속 연습하며 익히지 않으니 까맣게 다 잊어버리기 일쑤다.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웬만한 공구는 척척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설명서를 읽고 또 읽어 보아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나 같은 사람은 자꾸 해 보는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똥손’이라고 시도조차 안 하면, 안 그래도 손재주 없는 사람이 아무것도 못 하는 악순환이 깊어진다.

돈이 정말 많아 언제고 수리공이나 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런 돈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생활 속에서 소소한 도전을 즐길 필요가 있다. 이제껏 슬로 라이프나 적당한 게으름을 미화하며 살았었다. 하지만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나태나 안일에 젖어 있다 도태되어 절망하는 일이 없도록 아내에게 의존하는 부분을 과감하게 줄이고 내 두 다리로 하루빨리 바로 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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