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선 논설위원,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 연구교수

이주선 논설위원
이주선 논설위원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What Men Live by)’는 그의 대표적 명작이다.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인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하는 핵심임을 호소력 있게 설파한다.

하나님은 천사장 미카엘에게 한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 오도록 명령했는데, 그는 쌍둥이 딸을 갓 낳은 여인의 영혼을 거두지 못한다. 여인의 애절한 호소에 차마 그 영혼을 거두지 못한 미카엘에게 하나님은 재차 그렇게 하라고 명한다. 하나님은 여인의 영혼을 데려오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그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카엘은 명령대로 그녀의 영혼을 다시 거두는 과정에서 날개가 부러진 채 지상에 벌거벗은 몸으로 떨어진다.

그는 지상에서 사람이 되어 사는 동안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뒤 천국으로 복귀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으로 시작한 이유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경제학의 설명도 이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라서다. 경제학은 사람이 “사회협력”으로 산다고 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혹자는 경제원론에서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학은 사회협력이 사람의 삶을 동물 상태를 넘어 문명과 문화를 건설하게 한 원동력이었음을 설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람의 일상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나 사회협력으로 유지·발전한다. 여러분은 오늘 출근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회협력이 있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차로 집을 나서면서 우리는 그 시간에 같이 도로에 나온 다른 운전자가 내 차를 받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내가 무사히 회사에 도착할 것도 의심치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걱정 없이 출근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운전하면서 상호 협력하기 때문이다. 사실 출·퇴근뿐만 아니라 마트에서의 식료품 구매나 전화 통화도 고도의 사회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사회협력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경제학은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필수적 사회협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이 설명을 최초로 시도한 것은 경제학의 비조인 애덤 스미스이다. 그는 ‘국부론(Wealth of Nations)’에서 이기적 개인들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데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이 개입해서 사람들에게 상호 이익이 되게 하므로 사회가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부 개입 없이도 각자 이익이 되는 행동을 부지런히 하면 사회협력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오늘날 경제학이 시장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이 바로 이 사회협력의 핵심이며,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른 사회적 조정 기구(mechanism of social coordination)는 시장 가격(market price)이다.

흔히 사람들은 시장을 약육강식과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가격에 개입할 것을 자주 요구한다. 그러나 시장 가격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특정 정보가 없더라도 그가 어떻게 할지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는 ‘사람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게 하려고 돈을 더 많이 가지기 원한다.’는 보편적 사실에 기반한 핵심 정보를 가격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많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은 경제학이 가격 기구(price mechanism) 분석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비판하며, “경제학은 경제적 사안 분석에만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즉, 경제학적 사고방식의 보편적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그러므로 더 많은 돈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정부 정책, 개인의 결혼·출산·직업 선택, 심지어 종교와 신념의 선택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가격은 이런 사람의 이기적 행동과 인센티브를 총망라해서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따라서 가격 분석에 기반한 경제학적 사고방식은 공자·석가·예수·마호메트가 설파한 삶의 근본원리보다 더 정확하게 ‘사람들이 어디로 움직일까?’를 보여준다.

시장은 사람들이 가격을 통해 협력하는 공간이고, 거기서 형성된 가격은 점쟁이보다 더 정확하게 향후 전개될 삶의 향방을 말해주는 중요한 ‘신탁(oracle)’이다. 그러므로 시장 가격을 조종·조작하려는 국가의 시도는 이 신탁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는 ‘소음(noise)’이다, 당연히 이 소음은 사회협력으로 번영할 수 있는 사회에 비효율성과 불확실성을 확대하여 사회나 국가를 쇠퇴와 몰락으로 이끌어 간다.

우리는 역사에서 이런 일을 너무나 자주 봐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도자라거나 심지어 경제학자라는 자들이 앞장서서 사회협력의 핵심인 가격에 대한 개입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 하고 있으니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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