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신구대 교수
전정일 신구대 교수

이제 곧 5월이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더 오락가락하는 봄 날씨에 사람도 식물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소위 ‘신록의 계절 5월’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4월 중순에 이미 주변 산은 녹색이 짙어졌다. 평년보다 따뜻했던 3월 날씨가 식물 생장을 일찍 앞당겼음이 분명하다.

이맘때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식물이 자라는 모습에 새삼 놀라게 된다. 바닷가에서 저 멀리 떠 있는 배를 볼 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던 배가 잠시 딴청을 피우다 문득 돌아보면 어느새 저만치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이 마치 그런 모습이다. 어느 날 새싹이 돋은 것 같더니 하루 이틀만 지나도 어떤 식물은 한 뼘만큼 어떤 식물은 팔뚝 길이만큼 자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식물이 자라는 속도와 관련하여 식물학에서는 ‘생장 곡선’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용어는 씨앗이 싹터서 완전히 생장할 때까지의 과정에 속도의 변화가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식물의 생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싹 트는 초기에는 아주 천천히 자라고, 그 후에는 탄력이 붙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생장이 진행된다. 이렇게 빠른 생장 시기가 지난 뒤에는 점차 속도가 느려지고 이어서 생장은 완전히 정지한다.

대나무를 예로 들어보면, 땅속에서 죽순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는 생장한다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일단 죽순이 땅 위로 머리를 내미는 것과 동시에 하루 동안 60cm나 자라며, 며칠 안에 우리 키보다 더 커지는 것도 있다. 어떤 종의 대나무는 시간당 거의 40mm(90초마다 1mm씩)의 속도로 24시간 동안 91cm까지 자란다. 일본에서는 ‘왕대’라는 종이 24시간 동안 최대 156cm까지 자라는 것이 관찰되었다고도 한다. 바나나도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 중의 하나인데 잎 면적이 하루에 최대 1.4㎡나 자란다. 이 넓이는 웬만한 컴퓨터 모니터 하나만 한 면적이다.

물론 전체 생장량이 아주 적어서 매우 느리게 생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식물도 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긴몸초롱이끼’라고 하는 식물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연평균 생장률이 2.7mm에 불과할 정도로 생장이 느리다. 이 식물도 생장의 전체 비율을 보면 중간에 특별히 빠른 기간이 존재한다.

이러한 생장 과정에 대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생장 속도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S자 곡선이 되는데, 이를 '생장 곡선'이라고 한다. 생장 곡선이 S자 모양이 되는 것은 길이뿐만 아니라, 무게 증가에서도 같은 형태를 나타낸다.

 막 땅을 뚫고 솟아오른 죽순. 비온 뒤엔 생장이 더 빨라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막 땅을 뚫고 솟아오른 죽순. 비온 뒤엔 생장이 더 빨라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생장 속도가 빠른 식물이든 느린 식물이든, 전체 생장량의 대부분이 생장 곡선에서 중기에 해당하는 기간에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식물은 일단 생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에 다다르면 머뭇거리지 않고 빠르게 생장을 해버리는 것이다.

식물의 생장 곡선에서 초기의 느린 생장 기간을 우리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는 이 시간에 마치 식물의 생장이 멈춰 있는 것같이 느낀다. 중기의 빠른 생장 기간을 우리는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초기의 느린 생장 기간은 식물이 도약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전체 시간의 길이를 보면 초기의 느린 생장 기간이 중기의 빠른 생장 기간보다 더 긴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생장을 준비하고 있다가 막상 시작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쭉 뻗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생장 곡선은 비단 식물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우리 사람이 사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무엇인가 실행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멈춰 있는 것처럼 한동안 사전 준비를 하고, 그 준비가 완성되는 시기에 다다르면 머뭇거리지 말고 생각했던 바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생각했으면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일이든 사랑이든 말이다.  <다음 글은 5월 1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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