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서기 1696년은 조선왕국이 병자호란을 당한 지 60년이 되던 해였다. 열네 살에 조선조 19대 왕으로 오른 숙종은 즉위 22년이 되는 이때에 새봄을 맞아 전국 팔도의 감사들에게 특별 유시를 내린다.

“새해 새봄이 되어 초목이 다 기쁘게 생기를 띠고 있는데, 불쌍한 우리 무고한 창생들은 유독 이토록 망극한 기근에 시달려 유랑하다가 길에서 쓰러지는 참상이 지난가을과 겨울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의 분위기는 병자년 때보다도 더 위급하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당시엔 전쟁이 계속되어 더없이 위태한 형국이었지만 오히려 화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여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팔도에 큰 흉년이 들어 곡식 이름을 가진 것은 몇 이랑도 결실을 맺은 것이 없다.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고 있는 백성들이 한 해 동안 먹고살 양식이 없어 돌아다니며 빌어먹으려 해도 되지 않으니, 백성들이 위망에 처한 것이 오늘날처럼 심한 적이 없었다.

아, 임금이 백성들에 대한 것은 아비가 자식에 대한 것과 같다. 자식이 질병과 고통이 있으면 치료할 방법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방법을 끝까지 다 강구하는 법이다. 만약 혹시라도 베풀어야 하는데 베풀지 않아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한 것이 있게 되면, 그 회한이 응당 어떠하겠는가. 오늘날 국가의 예산이 다 고갈되어 애통하다고 할 정도이고 중외도 텅텅 비어 손쓸 곳이 없으니, 비록 크게 혜택을 베풀려 해도 할 길이 없다.

그러나 군신 상하가 밤낮으로 생각하고 도모하여 한결같이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최고로 하여, 하나의 정사와 하나의 명령이라도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은 즉시 주달하여 빠뜨리는 일이 없게 하고, 밖으로는 감사와 수령이 진휼을 개시할 때를 당하여 반드시 내가 전에 반포한 뜻을 본받아서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과 마음을 같이해야 될 것이다.“

예전에는 툭하면 흉년이 들어 농사에 의존하던 조선이란 나라의 백성들이 고통을 많이 겪었지만 병자호란을 겪고 60년이 지난 이해에 그렇게 전국적으로 곡식이 없어 많은 이들이 굶어 죽고 유리걸식을 하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때를 당한 속종의 유시가 간절하다.

​“대책을 잘 요량하고 특별히 구제하고, 절대 굶주린 백성들의 입에 넣을 한 홉의 쌀이라도 간사한 관리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거리가 되지 않게 하라. 한 도(道) 백성들의 목숨을 경들의 손에 맡겼으니 그 책임의 중요함이 어떠하겠는가. 참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다급한 백성들을 구제하여 나의 뜻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저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령스러운 백성들이 어찌 지극한 정성으로 하는 것과 불성실하게 하는 것을 알지 못하겠는가. 수령 중에서 인물이 못나서 재리(財利)를 빙자하여 백성들이 죽는 것을 서서 보기만 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즉시 처자까지 처형하는 벌을 가하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조선시대의 왕은 유시를 할 경우에도 신하가 써 온 것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숙종 임금의 이 유시는 과거의 유식한 사례를 많이 인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숙종이 직접 쓴 것으로 짐작하겠고 오늘날에 봐도 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이 배어 있고 그 각오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숙종은 병자년 흉년의 위기를 넘겼거니와 그러한 최고 지도자인 왕의 마음과 대책은 400년 이상 지난 현재에 적용해도 될 만큼 감동이 있다.

최고 지도자가 이러한 국민들에 대한 사랑과 강력한 추진력이 있다면 현대라고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겉으로는 경제적으로 크게 올라섰지만 구석구석에 못 먹고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더구나 부동산값 폭등으로 생긴 전세 사기 등으로 연일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이어지는 상황이어서 대책이 정말로 시급하다.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의 벼랑이라 하겠다. 오죽하면 줄줄이 목숨을 버리겠는가?

​이럴 경우 대통령의 의지도 의지이지만, 이를 받아서 수행해야 할 각 시·도 행정책임자들의 분발도 필수적인 만큼 정말로 우리나라 정치 행정을 맡은 분들이 한마음이 되어 적어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궁리는 빨리 마련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예전 왕조실록을 읽다가 하게 되고, 그 대책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싶은 것이다. 숙종이 유시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치와 행정의 지도자들이 성심을 다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다 알 것이기에,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숙종의 어진으로 추정되는 그림. 1954년 12월 부산 용두산 대화재로 6·25 당시 부산에 대피시켜 놓았던 역대 조선 왕들의 어진 등 국보급 문화재 3500여 점이 소실됐다.  
숙종의 어진으로 추정되는 그림. 1954년 12월 부산 용두산 대화재로 6·25 당시 부산에 대피시켜 놓았던 역대 조선 왕들의 어진 등 국보급 문화재 3500여 점이 소실됐다.  

숙종은 다시 한 번 엄정한 지시를 한다. 흉년으로 전국에 절도가 횡행한다고 절도를 막을 방도라며 오로지 잡아들이는 것만을 일삼지 말고 먼저 위로하고 안심해서 종착할 수 있는 정사를 펴서 나라의 명령을 수행하는 책임을 다하라고 한다. 나라에 재정이 없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하라고 다그친다. 여러 가지로 작금의 우리 현실을 꿰뚫어 보고 내린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들이 숙종 임금에 대해서는 서인과 남인 사이의 정권을 인위적으로 자주 바꾸어 지식인들의 부침이 심했고, 장희빈의 부상과 몰락을 둘러싼 궁중 이야기를 전설처럼 주로 듣고 배웠지만 사실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국력을 많이 키운 군주로서 새롭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1674년 즉위한 이후 그 이듬해부터 북방의 참략에 대비하기 위해 개성의 대흥산성(大興山城)과 용강의 황룡산성(黃龍山城)을 재수축하였고 강화도의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49곳에 돈대를 쌓았으며 일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산성도 수축하는 등 국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큰 성과를 만들었다. 또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여 실효를 거두었으며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계속된 토지정리사업을 완성했고, 상평통보를 주조해서 중앙관청 및 지방관청 등에 통용하도록 함으로써 경제가 충실해지도록 했다. 백성들은 숙종의 재위 45년 동안 전란의 피해 없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폐한지(廢閑地)로 버려둔 압록강 주변의 무창(茂昌) ·자성(慈城)의 2진(鎭)을 개척하여 영토 회복운동을 전개하였고, 1712년 함경감사 이선부(李善溥)로 하여금 백두산(白頭山) 정상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게 하였고 울릉도를 우리 영토로 확인하는 큰일을 하였다. 이를 통해서 곧 이어지는 영조와 정조의 중흥기를 열었으니 숙종이야말로 참으로 걸출한 군주였는데 우리들이 미처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서오릉에 있는 숙종의 명릉(明陵).
서오릉에 있는 숙종의 명릉(明陵).

이번에 숙종이 새해에 내린 백성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 담긴 지시와 추진력을 보면서 당쟁과 궁중 암투에 가려진 한 조선왕국의 군주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숙종의 간절한 마음을 받아 지금 우리 주위에서 전세사기로 집과 삶의 의지를 잃은 모든 이웃을 위해 재정 여유의 있고없고를 따지지 말고 그들을 살리는 방책을 여야 모두가 함께 강구했으면 한다. 전세 사기의 문제가 생긴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고 사기를 친 사람들이 산재하는데 지난 시절의 정책이 잘못돼 파생된 문제라면 그때의 집권여당이었던 지금 야당도 책임이 있고, 또 지금 여당도 그 책임 공방을 할 여유가 없으니 사람을 살릴 방도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재정이 문제라면 여야가 합의해서 예산을 조속히 추가하는 방안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숙종의 어필 칠언시.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문집을 읽고 읊은 시다. 경기도박물관 소장.
보물로 지정된 숙종의 어필 칠언시.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문집을 읽고 읊은 시다. 경기도박물관 소장.

다행히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 제도를 활용해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사들인다고 한다. 당초 정부는 피해 주택 공공매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으나 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적극 개입하기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참으로 정책이라는 것이 목적과 달리 부작용이 많으니만큼 정책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좋은 교훈을 우리가 지난 정권에서 배우고 되새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 책임만을 따지고 죄를 지은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워낙 상황이 엄중한 만큼 여야 정치권, 행정권이 마음을 합해야 할 것이다. 숙종 임금의 간곡한 유시를 보면서 그가 국방과 정치, 경제 전반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추진한 정책의 이면에 이처럼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들을 위해 모든 지혜를 아끼지 않은 모습을 우리 현대에 최고 지도자와 각 지방의 지도자들에게서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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