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논설위원,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논설위원
권오용 논설위원

지난해 공익법인의 결산 공시를 분석해보면 전체 1만1435개 법인 중 3644개 법인이 외부 회계감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전 4356개 법인에 비하면 712개나 줄어들었다. 이쯤 되면 투명성의 대전제인 외부감사가 후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실망할 것 없다. 실상을 보면 외감 전문을 공시한 법인은 한 해 전 2520개에서 2935개로 늘어났다. 그 전해까지는 외부감사를 받았다고 공시한 법인이 실제로 외부감사인지 내부감사인지 구별 없이 공시해 혼란스러웠는데 올해부터 감사보고서 전문을 게재하는 성실한 공시가 늘었다.

성실한 공시는 거짓 혹은 착오로 인한 불성실한 공시를 엄하게 제재해서 늘어났을까? 아니다. 공시 양식의 조그만 변화가 결산 공시의 성실성을 높였다. 지난해부터 '외부회계 감사인'과 '감사 의견'을 결산서류에 기입하도록 양식이 변경됐다. 외부 회계감사를 수행한 곳과 감사의견에 대한 정보를 공시해야 되니 작성하는 정보의 정확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성실한 공시가 이뤄졌다. 제도의 변화가 습관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참으로 바람직한 변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해 정부가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요구한 것은 늦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걸로 보인다. 비영리 투명성 운동에 참여해 온 필자로서도 노조의 조합비가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세금감면은 그 자체로 노조원에게는 혜택이지만 일반 납세자에게는 부담이 된다. 응당 들어와야 할 세금의 일부를 노조 활동에 쓰라고 유보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늘어난 납세자의 부담을 감안하면 노조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야 하는 것은 납세자인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고 조세당국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것이 조세의 정의다. 그동안 정부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나라 노조는 약자라는 이유로 정부의 직접적 지원, 즉 보조금 혜택까지 받고 있다. 사무실을 제공받고 해외연수까지 다녀온다. 모두가 국민들이 마련해준 보조금에서 나왔다. 따라서 보조금은 당연히 그 용도와 쓰임새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대통령이 지난 연말 보조금에 대해 전면적 제도 개편을 지시한 것은 정부의 의무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다.

정부 보조금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00조 원을 넘겼다. 기부금은 윤미향이나 어금니 아빠 사건 이래 사회적 감시가 증대하고 외감 의무화 등 제도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기부금의 10배에 이르는 보조금에 대해서는 제도의 미비로 그 쓰임새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의 보조금 실태를 보고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의 ATM(현금지급기)으로 전락했다.”고 얘기했겠는가.

특히 비영리 분야의 보조금은 사업별로 정산보고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공익법인의 전체 결산공시 안에서 보조금 지출의 흐름을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우선 공익법인 결산서류 양식에 보조금 지출 내역을 추가해 보조금과 기부금의 쓰임새를 통합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공익법인의 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과 결산서류 공시시스템을 연결해야 한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세제 혜택을 받는 단체는 기부금뿐 아니라 보조금에 대한 지출 내역을 함께 공시하고 있다. 미국과 같이 기부금과 보조금의 쓰임새가 통합 공시된다면 시민사회의 감시도 용이해지고 투명성의 측면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급증하는 복지 수요를 감안하면 보조금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시민단체 등 제3 섹터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 행정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부패가 조장되고,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어야 할 시민사회를 오염시킬 수 있다. 공시양식의 변경과 같은 조그만 제도 하나가 공익법인의 투명성 개선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조금도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이것은 정부의 국민에 대한 도리이자 조세정의를 구현하는 확실한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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