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논설위원, KBSI 분석과학마이스터

 

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사막에 내리는 눈’(닐라 작)이라는 소설이 있다. 비행기 사고로 사막에 떨어진 한 여인이 노예로 전락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왕비로 신분 상승하는, 급행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의 로맨스판타지 웹소설이다.

사막에 눈이 내리는 현상이 환상 속에만 존재할까? 지구에서 가장 더운 지역 중 하나인 사하라 사막에 눈이 쌓였다고 한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사막 도시 아인세프라가 2022년 1월 눈이 쌓여 겨울왕국이 되었다. 가장 추운 시기인 1월에도 평균 12℃를 유지하는 아인세프라 지역에 처음 눈이 내린 건 1979년 2월이었고, 2016년 12월 37년 만에 다시 눈이 내려 사막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도 했다. 이후 2017년, 2018년,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눈이 내려 이제 거의 매년 눈이 내리는 건 일상이 되었다.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렸다면 파키스탄은 2022년 역사상 최악의 대홍수를 겪었다. 파키스탄은 몬순 지역에 있지만, 히말라야 남부 산맥과 그 주변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연간 강우량이 510㎜ 이하인 지역이다. 6월에서 9월에 이르는 몬순우기에 예년에 비해 2배 이상의 물 폭탄이 쏟아져 파키스탄 국토 3분의 1이 잠기고, 100만 채의 집이 파손되어 33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500명 이상이 사망하는 최악의 재난을 당했다. 이에 파키스탄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재난을 넘어 ‘재앙’인 지역도 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사이 해역의 얕은 바닷가에서 수상가옥을 짓고 살아가는 바다의 방랑자 ‘바자우족’. 해수면의 상승과 강수 부족으로 이들의 삶은 위태롭게 되었다. 죽어야 땅속에 묻힌다는 바자우는 해수면이 올라와 배 위의 삶을 접고, 모래에 집을 짓고 정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착한 섬 주변은 수심이 깊어 바다의 보물이라던 해초(아갈아갈)를 재배할 수 없어 위험한 참치잡이로 삶이 바뀌었다. 신의 선물이라던 빗물은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인근에서 식수를 사 먹어야 한다. 가구 수입의 3분의 1을 식수 구입에 할애해야 할 정도로 삶이 더 곤궁해졌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 투발루는 땅이 점점 물에 잠겨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재앙’이 현재 진행 중이다. 9개의 섬 중 이미 2개는 바다에 잠겼고, 수도마저 물에 잠겨 옮겨야 했다. 21세기에 국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더해 생태계 변화로 마실 물 구하기 어렵고, 농작물도 죽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이들의 책임으로만 치부할 수 있겠는가?

이외에도 북유럽 핀란드의 25℃ 이상 고온 지속(최고 33.5℃), 러시아 모스크바 폭염(최고 34.8℃), 캐나다 서부 폭염(최고 49.6℃, 1주간 719명 돌연사), 미국 데스밸리 폭염(최고 54.4℃) 등 수많은 기상이변이 발생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근 들어 빈도가 높은 기상이변의 발생 원인이 지구온난화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현재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은 1.2℃ 상승했다. 기온이 올라가면 한파, 홍수, 가뭄, 폭염 등 기상이변이 잦아지며, 생태계 변화나 해수면 상승 등을 초래하고 이에 따른 재해가 일어난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 따르면 극한 발생 빈도가 기온이 1.2℃ 상승에 4.8배, 1.5℃ 상승에 8.6배, 2℃ 상승에 13.9배, 4℃ 상승에 39.2배 증가해 폭염이나 한파가 올 확률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1.5~2℃ 이상일 경우 기온 상승 속도가 빨라질 뿐만 아니라 기상이변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를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서서히 진행되던 현상이 한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변곡점)라 한다. 2016년 발효된 파리협정에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2℃, 가능하면 1.5℃ 이내 억제를 목표로 하는 것도 1.5℃가 티핑포인트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온실가스로, 다양하지만 관리 대상이 되는 6대 온실가스로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이 있다.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바는 종류별로 다르지만,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는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55%로 가장 큰 대표적 온실가스다. 그래서 전체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측정치로 나타낸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이산화탄소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대규모 화석연료 사용이 거의 없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극히 적었지만, 산업혁명 이후 에너지원으로 화석연료 사용이 크게 증가했다. 산업혁명 이후 1950년대까지는 매년 60억 톤 정도였으나, 1990년대에는 연간 220억 톤, 이후 2020년대에 들어서는 매년 340억 톤 규모의 이산화탄소를 발생하고 있다. 산업혁명 시점부터 배출된 이산화탄소량은 누적 1조5000억 톤 수준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는 저렴한 화석연료를 주 에너지원으로 하는 제조업 주도의 개발도상국, 또한 국토 면적이 크거나 인구수가 많은 국가이다. 그렇기에 2022년 기준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나라는 중국(107억 톤)이다. 미국(47억 톤)의 2배 이상, 인도(24억 톤)의 4배 이상이다. 러시아 16억 톤, 일본 10억 톤, 이란, 독일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한국(6억 톤, 9위)은 제조업 중심 국가이기에 국토 면적이나 인구 수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다. 친환경 에너지 발전 비율이 낮고, 운송 수단의 에너지원이 화석연료인 탓도 있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 1.5℃ 이하 억제를 목표로 설정한 파리협정에 따라 현재 130여 국가에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중립(carbon-neutral)이란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적 배출량이 0(zero)이 되게 하는 것으로, '넷-제로(Net-Zero)' 또는 ‘탄소제로(carbon zero)라고도 한다.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7.3억 톤) 대비 40% 감축,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대안으로 석탄발전 축소, 신·재생에너지 확대(전기·열), 철강 공정 전환, 석유화학 원료 전환(산업), 전기·수소차 비율(수송), 건물 에너지관리(건물),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기술) 및 흡수원 확보량 등 핵심 감축 수단을 적용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중립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은 시작되었다. 탄소배출 감축은 정부나 산업체, 연구계만의 몫이 아니다. 일반시민은 기후변화의 문제점에 대한 체감도가 낮고, 탄소중립이 크고 어려운 기술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개개인의 일상생활에서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 사용 등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온실가스는 에너지나 상품을 생산, 소비할 때마다 방출되므로 에너지 상품을 가급적 적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내 적정온도 유지, 대중교통 이용, 전기자동차 구매 사용, 고효율 에너지 가전제품 사용,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의 플러그 뽑기, 친환경제품 소비, 재활용·올바른 분리배출, 물 아껴 쓰기, 1회용 제품 사용 억제 등 조그마한 불편을 감수하면 탄소제로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바자우족과 투발루 국민이 겪고 있는 재앙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감수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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