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이석구 언론인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의 일반적 정서다. 이런 일본은 나치의 죄과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는 독일과 종종 비교된다. 그래서 독일은 도덕적이고, 일본은 정의롭지 않은 나라로 간주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독일이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한다지만 그들의 식민지였던 나미비아, 탄자니아 등에서 행한 학살에 대해선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리스와도 배상과 사죄문제로 다툼이 많다. 독일은 국제 정치, 경제적으로 힘이 막강한 유대인에 대해서만 철저한 반성과 배상을 한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바르샤바의 게토 유대인 추념비 앞에서 참회의 무릎을 꿇었다. 브란트의 이 제스처는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반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됐다. 이 행위는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브란트는 또 패전으로 독일이 폴란드에 빼앗긴 영토 ‘오데르 나이세’ 동부 지역(10만 평방km)도 포기, 통일의 초석을 놓았다.

독일은 2차대전 패전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연합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전승국들은 1,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할 수 없도록 공업지대와 농업지대를 분리, 독일을 여러 개의 작은 농업국가로 쪼개려고까지 했다. 자칫 군소 농업국가로 전락할 뻔했던 독일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간 대립으로 냉전이 격화되면서 살아났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3국이 나눠 통치했던 독일 점령지를 합쳐 1949년 5월 23일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을 수립, 군정을 종료했다. 소련과 공산주의 동유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서유럽의 부흥이 절대적이고, 그 핵심에 서독을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도 그해 10월 7일 자신들의 점령지역에 위성국인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을 세웠다.

동서냉전은 2차대전 전범 독일에게는 축복이었다. 서독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도 물지 않고, 우수한 인적 자원에 마셜 플랜의 혜택도 누려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며 경제강국이 됐다. 북대서양동맹에도 가입하고 재무장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서독은 2차대전의 참화를 불러온 히틀러와 나치정권을 철저히 부정하고,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통일로 다가가기 위해서도 이웃 국가들의 신뢰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통일 독일이 갖는 국력에 대한 우려를 불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이 처한 국제환경은 독일과 달랐다. 미국은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하자 소련에 대일(對日) 참전을 요청했다. 당시 미군은 ‘전국 옥쇄(玉碎)’를 부르짖으며 격렬히 저항하는 일본군에 고전하고 있었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참전을 미루던 소련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자, 이틀 뒤 전리품을 챙기려 대일전에 뛰어들었다. 소련군은 저항의지가 꺾인 관동군을 격파하며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그대로 뒀으면 한반도는 물론 일본까지 전령할 기세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팽창을 경계한 미국의 견제로 소련군의 진격은 한반도 38선 이북에서 멈췄다. 한국이 분단되고 전범인 일본은 온전히 국토를 지키게 된 연유다.

2차대전 후 독일과 일본이 처한 주변국가 환경도 달랐다. 일본의 주변국가를 보면 한국은 분단된 약소국이고, 중국은 국공 내전으로, 소련은 유럽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일본은 생존이나 통일을 위해 독일처럼 나치를 부정하고 사과로 주변국에 환심을 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일본을 단독 점령한 미국 눈치만 보면 됐다. 국토가 분할 점령되지도 않았고 주변국가가 일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맥아더의 일본 점령군 사령부(GHQ)도 당초에는 독일처럼 일본을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려 했다. 맥아더는 일본 군국주의 발로가 군산복합(軍産複合)의 결과로 보고 전쟁을 뒷받침한 군수산업, 즉 재벌을 쪼갰다.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관여한 정치인과 관료들에게도 공직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나 냉전과 한국전 발발로 미국은 일본을 공산주의에 맞서는 아시아의 보루로 키우기 위해 정책을 바꿨다. 재벌 해체는 중단되고, 기시 노부스케 (岸 信介) 등 전쟁 협력자들도 모두 복권됐다.

일본인들은 오늘의 일본, 선진 일본을 가져온 근원을 명치유신에서부터 찾는다. 쇼와(昭和) 덴노를 비롯 전쟁 협력자들이 모두 복권, 일본의 지배세력이 됐다. 이들은 모두 과거사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들이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려면 명치유신부터 부정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이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는 것은 자신의 직계 조상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국제관계에서 정의는 힘이다. 냉전이 전범인 독일과 일본을 살려줬듯이 국제관계는 힘으로 좌우된다. 우리가 일본을 능가할 때, 일본이 독일처럼 사과로 주변국의 환심을 사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사과로 얻을 것이 있을 때 일본은 진정한 사과를 한다. 죽창가를 부르며 반일만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사과를 얻어낼 힘이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과거 제국주의 열강 중 어느 한 나라가 피식민지 국가에 제대로 반성한 예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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