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당신은 왜 결혼하셨나요?” 이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 퍼뜩 떠오르질 않는다. 대신 “판단력이 부족해서 결혼하고 인내력이 없어서 이혼하는데 기억력이 흐려져 재혼한다.”고 했던, 오래전 95학번 제자에게서 들었던 농담이 생각난다.

실제로 1959년 발표된 논문을 보면 “당신은 왜 결혼하셨나요?”라는 질문에 10명 중 7명의 응답자가 ‘전통적 관례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라는 보기에 동그라미를 했다. 1980년 조사에서 동일한 질문을 했을 때 가장 빈번하게 나온 응답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기에’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정서적 안정을 얻기 위해’로 나타났다. 당시 심층면접에서는 “비주류를 벗어나 주류에 편입된 것이 결혼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불과 20여 년의 시차를 두고 결혼하는 이유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한데 이제는 남녀를 불문하고 ‘결혼은 선택’이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이 되었다. 덕분인가, 예전엔 단칸 셋방 얻을 돈만 있으면 결혼을 했었는데 왜 ‘요즘 것들’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묻는 대신, 결혼을 굳이 선택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찍이 미국 시카고대학의 게리 베커(Gary Becker, 1930~2014) 교수가 결혼 및 부부관계와 같은 영역에도 경제학 원리가 찰떡같이 적용된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노벨 경제학상의 영광을 누린 바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베커 교수에 따르면 배우자 선택과정에서 결혼시장이 형성되고, 결혼시장에서 남녀는 이해득실을 따지게 마련인데, 남자가 생계를 전담하고 여자가 가사와 양육을 전담할 때 결혼으로 인한 실익(實益)이 극대화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오늘날 남자=생계 부양자, 여자=전업주부 모델을 선택하고자 하는 커플은 지극히 적고(현실적으로 전업주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은 더더욱 적고), 남녀 공히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을 상실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수의 커플이 결혼식장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이유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마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혼의 원인을 추적하는 데 골몰하던 연구자들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조(粗)이혼율 50%를 넘나드는 ‘이혼의 규범화’ 시대에, 백년해로하는 커플들은 도대체 왜 이혼을 안 하는 것일까,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 것처럼 말이다.

질문을 바꾸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도 하는 법. 결혼이 필수이던 시대는 누구나 지나가는 생애주기 단계에 안착했다(fit in)는 의미가 컸다면, 결혼이 선택이 된 지금은 결혼 지위를 성취했다(achieve)는 의미가 강해졌다는 것이, 새로운 질문에 대한 잠정적 답변이다.

결혼을 일종의 성취로 본다는 인식 속에는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제 결혼을 해도 좋을 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나 일정 수준의 수입을 확보했다는 사실, 자가든 전세든 월세든 주거 안정성 또한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사실, 안심하고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결혼 서약을 해도 좋을 파트너를 만났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힘을 모아 안락한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자녀를 낳아 키우기로 합의했다는 사실 등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녀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는 딩크족도 빠르게 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는 결혼을 해야 온전한 성인으로 대접받는 관행이 있었다면, 이제는 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을 두루 완수했기에 자신의 오롯한 의지에 따라 결혼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생각의 전후관계가 바뀌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결혼하는 커플이 감소하면서 출산율이 동반 하락하는 우리네 상황에서, 결혼율은 경제 호황기에 상승 곡선을 타고 불황기에 하향 곡선을 그린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전쟁이 끝나고 눈부신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 결혼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결혼 연령은 20대 초반으로 낮아졌으며, 출산율이 급증했던 경험이 있다.

결혼은 선택이요 성취라 믿는 요즘 세대를 위해 결혼으로 가는 길을 넓혀주기 위한 방안은,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지극히 상식적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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