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금감원‧한은 등 당국 간 이견 충돌 지속
특화은행, 금리, 배당 등에서 입장 번복 빈번해
금융권은 "일관성있는 정책 기조 필요해" 주장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 사진=기획재정부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 사진=기획재정부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현 정부 출범 초부터 지속된 금융당국의 소위 ‘오락가락’ 정책 행보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금융권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예금 금리 인상, 공매도 시행, 충당금 적립 등 주요 이슈를 놓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던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권 내 혁신과 경쟁 유발을 도모하기 위한 소위 ‘챌린저뱅크’ 출범과 관련해서도 기존 적극 지원에서 신중 모드로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같은 상황이 금융환경에 맞춘 유연한 태도라는 시각도 있지만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금융권은  수시로 변하는 정책 기조가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1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업권 내 혁신 및 경쟁 촉발을 위해 추진하고자 했던 소위 ‘챌린저뱅크’ 논의를 사실상 유보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외부 사업자의 은행업 진입을 통한 경쟁 촉발보다는, 기존 은행 간 경쟁을 유발해 혁신 나아가 은행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국내 20개 은행사의 행장들과 가진 간담회를 통해 이 같은 입장 변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금융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전제로 국민의 효용증진 관점에서 판단한다는 대원칙하에 새 플레이어가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개혁회의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와 이복현 금감원장(오른쪽). / 사진=금융위원회.
규제개혁회의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와 이복현 금감원장(오른쪽). / 사진=금융위원회.

‘혁신 잡는 메기’는 어디로?

여기서 언급된 ‘새 플레이어’란 ‘챌린저뱅크(특화은행)’을 일컫는다. 지난 2월 진행된 ‘은행권 관행‧제도 개선 TF회의’에서 금융위는 사실상 5대 시중은행 중심으로 고착화된 은행업계의 과점체제를 허물기 위한 새로운 플레이어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신규 은행 사업자의 진입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논의는 불과 두 달도 채 안 돼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이다. 앞서 언급했듯 신규 플레이어 도입보다는 현재 은행권 내 경쟁을 유발할 방법을 우선 찾겠다는 것으로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소영 부위원장은 최근 회의에서 “당장 신규 플레이어의 진입 없이도 예금과 대출 시장에서의 실질적 경쟁 촉진을 유발할 수 있는 체계는 구축됐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규 플레이어에 대해서도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하되, 다만 엄격한 심사를 통해 충분한 능력이 검증된 경우에만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며 사실상 당장 신규 은행사업자의 진입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이러한 금융위의 입장과 달리, 금융당국의 양대 축 중 한 곳인 금감원에서는 챌린저뱅크 도입 논의를 지속하겠다며 금융위와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실제로 최근 이복현 원장은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챌린저뱅크 도입 동력이 힘을 잃었다는 분석에 대해 “SVB가 특화 은행으로서 실패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굳이 SVB 파산 사태 때문에 특정 사안(챌린저뱅크 논의)을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사실상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불과 일주일의 시차를 두고 동일 사안에 대해 금융위와 금감원이 다른 입장을 밝히면서 시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물론, 아직 논의 단계라는 점에서 실제 업계에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새로운 메기의 출현에 대비해야 하는 기존 금융권의 입장에선 이같은 당국 간 명확한 의견차가 반가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한국은행

1년째 이어지는 ‘갈지(之) 자’ 행보

사실 이같은 당국의 오락가락 행보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속돼왔다. 표면적으로는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적극 대응하려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 나왔지만, 엇박자 행보 속 당국 간 충돌양상으로까지 전개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금리 정책을 둘러싼 혼선이었다. 불과 일주일 차를 두고 예금 금리와 대출금리에 대한 금융당국 권고의 방향성이 엇갈리면서 오히려 어설픈 관치에 금리체계가 꼬였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출금리 억제를 이유로 금융위원회가 은행권에 예금금리 인상 경쟁 자제를 요구한 직후, 이복현 원장은 “예외적 상황이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은행권에 에둘러 금리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 은행업권 내 예대금리차가 공시된 이후에는 도리어 “예대금리차 축소를 위해 은행권이 예‧적금 등 수신금리 인상 속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올해 주총 시즌 최대 화두 중 하나였던 금융사 내 ‘배당 문제’에 대해서도 엇갈린 발언을 쏟아냈다.

올 초 진행된 한 간담회에 참석한 이복현 원장은 “금리인상으로 막대한 수익이 발생한 만큼, 은행권은 발생한 이익의 3분의 1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배당 확대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금감원 업무보고에서는 “배당을 많이 하려면 위험가중자산 비중을 낮춰야 하는데, 이럴 경우 중·저 신용자에 대한 신용 공여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또 한번 입장을 바꿔 배당 확대에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금융당국의 불안정한 행보는 앞서 언급한 챌린저뱅크 도입 외에도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상생금융을 통해 대출 금리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전략이, 최근 변동성 심화로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얼마 전 진행된 경제수장 비공개회의에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당국의 금리 인상 자제령과 관련해 “일시적 고통 완화는 기대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고통을 더 길어지게 할 것”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국내 5대 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국내 5대 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금융권 “일관된 방향성 필요해”

이러한 입장 변화를 지켜보는 금융업계의 표정은 다소 복잡미묘하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이번 금융당국의 입장 변화가 급변하는 금융시장의 환경을 적절히 반영한 것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데일리임팩트가 만난 일부 금융권 관계자들은 당국의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오롯이 유지되는 유일한 기조는 사실상 ‘금융권 팔 비틀기’ 뿐이라는 한숨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최근 공개한 상생금융 방안을 통해 올해만 4000억원이 넘는 이자 지원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 불거진 레고랜드 사태 진화를 위한 유동성 공급, 코로나19 금융지원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책무’에 근거해 지원한 금액만 100조원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같은 사안을 놓고 금융당국과 대통령실, 당국과 당국(금융위와 금감원) 간 다른 발언으로 이렇게 자주 혼선을 빚은 전례가 없다”며 “일관성 있게 당국의 권고를 수용하는 업계의 기조처럼 당국도 금융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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