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논설위원, 전 한국일보 심의실장

 

정숭호 논설위원
정숭호 논설위원

버린다고 버렸는데 아직도 주변에 잡동사니가 많습니다. 대부분 개업 기념 사은품이거나 신상품 샘플, 오피스텔 같은 부동산 분양 업소에서 나눠주는 홍보물입니다. 안 받으면 되련만 나눠주는 분들 표정이 안쓰러워 받아들고 가져온 것들이지요. 어디 한번 볼까요.

일회용 휴지(물휴지 포함), 일회용 손 세정제, 일회용 핫팩 등등 온갖 일회용품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고 플라스틱 부채, 볼펜, 책갈피, 메모장, 화장품 샘플, 손톱깎이 같은 사은품도 서랍이나 신발장에 들어앉아 있어 정작 요긴한 것을 찾을 때는 이만저만 성가신 게 아닙니다. 먼지가 엉킨 게 대부분이라 잡동사니를 지나 ‘쓰레기’라고 해야겠지만 혹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막 내다 버리기가 좀 ‘거시기한’ 것도 제법 됩니다.

좀 큰 잡동사니도 많습니다. 신장개업한 마트나 휴대폰 판매업소에서 선착순으로 나눠준 장바구니 달린 손수레, 우산, 부직포로 만든 크고 작은 쇼핑백, 플라스틱 바구니, 접시, 컵, 뾰족한 삼각모자 등 생일파티 용품도 눈에 띕니다.

 사람마다 나라마다 잡동사니의 개념이 다르지만, '우리를 유혹하는 쓸모없는 물건'은 참 많기도 하다.
 사람마다 나라마다 잡동사니의 개념이 다르지만, '우리를 유혹하는 쓸모없는 물건'은 참 많기도 하다.

그런데 “잡동사니는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쓸모없는 물건을 말한다”라고 한 사람이 있군요. 우리 집 여기저기 박혀 있는 것 같은 작고 싸구려인 물건만 잡동사니가 아니라는 거지요.

이 말을 한 사람은 아일랜드 출신 경제/경영 사상가로 밀레니엄(2000년) 전후 인류가 새로 맞을 미래를 예측하는 여러 권의 저서로 주목받은 찰스 핸디(1932~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 등등과 함께 ‘기업경영의 구루(Guru. 교육자, 현자)’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비싸고 큰 것도 잡동사니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그가 1998년에 쓴 ‘The Hungry Spirit’에 나옵니다. 2009년에 ‘정신의 빈곤’(사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이 책에서 그가 예를 든 잡동사니는 비가 올 때 쓰는 와이퍼 달린 안경, 걸으면 마루가 닦이는 바닥에 걸레가 달린 슬리퍼, 선물 받았으나 절대 매지 않는 넥타이 등등입니다.

그는 또 잡동사니는 나라마다 다를 수 있는데, 자기가 아는 브라질 사람이 가지고 있는 냉장고 여섯 대 중 다섯 대도 잡동사니라고 했습니다. “그 브라질 사람이 설명하기를 물가 상승이 최고조에 달해서 돈이 마치 햇볕에 우유 마르듯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현금이 생기자마자 냉장고를 사들였다, 이 중 플러그가 꽂힌 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많은 책도 잡동사니라고 했습니다. “출판업자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만큼 책이 많이 팔렸겠지만, 분명히 그중 많은 책은 읽히지도 않은 채 책꽂이에 꽂혀 있을 것”이라는 거지요.

우리 집 살림살이와 책 절반 훨씬 이상이 잡동사니이고 그게 앞으로도 더 늘어날 수 있음을 깨우쳐준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언급합니다. “책을 비롯한 모든 잡동사니를 해결하려면 사회는 쓰고 버리는 경제체제가 되어야 한다.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을 것이다. 쓰레기 수거와 재활용이 인기 산업이 되고, 중고품 할인매장이 번창할 것이다.”

‘기업경영의 구루’다운 결론과 전망인데, 다만 “소비자들이 자기 집 잡동사니를 서로 사고파는 서비스도 등장할 것”이라고 했으면 더 완벽한 전망이 됐을 겁니다. 한국에서 성공하고 해외에까지 진출한 ‘당근’이 그 증거이지요. 내가 보기에 ‘당근’은 각 가정에 처박혀 있는 잡동사니를 이리저리 옮겨주는 서비스이기 때문입니다.

분리수거장에 내다 버리든, 아니면 '당근'을 통해 다른 집으로 옮기든 잡동사니를 제거하면 집이 넓어지고 훤해지고 깔끔해지고 빛나고 고급스러워질 겁니다. 먼지도 덜 생기겠지요.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시야에서 많은 것이 사라지면 마음에도 여유가 더 생겨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을 끝내려는데, “마음에 여유를 가지려면 집을 비울 것이 아니라 마음속 잡동사니를 내다 버리고 다시는 안 들여놓는 게 좋지 않겠어?”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음속 잡동사니! 이제부터는 내 마음속에는 어떤 잡동사니가 들어박혀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보려 합니다. 나라마다 잡동사니가 다르다는데, 한국의 잡동사니, 한국사람 마음속 잡동사니에 관해서도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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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마르케스(1927~2014, 콜럼비아)는 잡동사니를 아래의 글로 설명했네요. 그의 장편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데, 압축하면 찰스 핸디의 잡동사니 정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순간적인 충동 때문에 그런 것들을 원했으며, (의사로서 큰 부자인) 남편은 그런 충동을 합리화시켜 주면서 흐뭇해했다. 그런 물건들은 원래 로마나 파리, 런던 혹은 뉴욕의 쇼윈도에 있을 때는 예쁘고 쓸모 있었지만, (가난하고 너저분한 남아메리카의 시골에서) 돼지 튀김을 먹으며 즐기는 슈트라우스의 왈츠나 그늘에서도 4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속에서 벌어지는 (남아메리카 식) 축제의 시험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그녀는 세계 최신식의 진귀한 물건들의 주인이 되기는 했지만, 그 값비싼 물건들은 제값을 해내지 못했다. 단지 그 지방 사람 중 누군가가 처음으로 보게 될 덧없는 순간에만 제값을 했을 뿐이다. 사실 그런 이유로,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 보이려고 구입한 물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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