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내년 총선을 1년 앞두고 언론사들이 다양한 분석 기사를 내놓고 있다. 167석의 거야가 승리할 것인가, 여당이 승리하여 윤석열 정부가 국회 권력마저 차지할 것인가 등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러한 승패에 영향을 끼칠 여러 변수들을 제시하고 있다. 선거제도 변경, 이재명 대표 체제의 지속, 친윤 검사의 대거 등장, 제3정당의 등장, 중도층 표심의 향방 등이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이러한 분석에서 빠진 것이 있으니, 그것은 여의도정치의 역사적 진화과정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의도정치는 대강 20년 주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 1987년부터 2002년까지 15년간은 3김시대였고, 2002년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20년은 86세대(386세대가 486을 거쳐 586이 되었다)가 여의도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내년 총선에서 586세대가 퇴진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여의도에 진입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해답을 얻으려면 86세대가 어떻게 정계에 진입하여 여의도정치를 장악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시대는 공천권, 정치자금, 지역 표를 독점한 세 사람이 정당을 기계처럼 운영한 머신정당(political machine-type party) 시대였다. 3김이 추종자들에게 “헤쳐 모여” 하면 기계(machine)처럼 움직였다. 예컨대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대중 씨가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자, 민주당에 있던 국회의원들이 거의 모두 합류했다. 당시 김동길 씨가 3김 정당정치의 폐해를 통렬히 지적하고 ‘3김 낚시론’을 펴면서 “3김은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요지부동이었다.

   586이 주도해온 좌우대립 정당정치

그렇지만 2003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3김시대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비록 김종필이 2004년 총선에서 자민련의 비례대표 1번으로 등록했으나 자민련이 2.82% 득표에 불과하여 낙선함으로써 조용히 정계를 물러났다. 2003년 노무현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이미 3김 이후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 정치학자들의 최대 관심은 “3김이 만든 정당이 3김의 정치 퇴진 이후에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였다. 일반적으로 보스(boss) 중심의 머신 정당은 보스가 사라지고 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3김 정당 중에서 김종필이 만든 충청지역 정당은 사라졌지만 YS, DJ를 각각 대통령으로 만든 영남정당과 호남정당은 살아남아 있다. YS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만든 소위 영남정당인 민자당은 그동안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등으로 당명을 여러 차례 바꾸었지만,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대통령 후보로 받아들여 성공함으로써 여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한편 3당 합당에 대항하여 DJ가 만든 호남정당인 민주당도 이합집산을 거듭했지만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국회 다수당으로 활약하고 있다. 어찌하여 머신정당에 불과했던 양대 지역정당이 3김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나?

2000년 총선 이후 운동권 출신 386세대의 정계 진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론”에 따라 새천년민주당 김민석 국회의원이 이인영, 임종석, 우상호, 오영식 등을 영입했는데, 임종석이 유일하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86세대에게 정계 입문의 문을 열어준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2년 대선에 승리한 후 안희정, 이광재, 김종민, 서갑원 등이 청와대에 입성하였다.

이어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통해 이인영, 오영식, 강기정, 김태년, 김현미, 최재성 등이 국회에 진출하였다. 이들을 통해 86세대의 정계 진출은 계속되었다. 결국 이들이 호남정당을 좌파 이념정당으로 탈바꿈시키면서 DJ 머신정당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한편 영남정당은 호남정당의 이념화에 대항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따라가다가 우파정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결과 지난 20여 년간 영·호남 지역정당이 우파-좌파 경쟁 카르텔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머신정당이 이념정당으로 탈바꿈한 과정을 분석해 보면 양대 지역정당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방책이 상호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의 등장으로 한국정당의 이념 분화가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한국 정당정치는 보수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가 강하였다. DJ도 노동자, 농민은 물론 기업과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민정당, 즉 포괄정당(catch-all party)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달랐다. 스스로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친북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둘째,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새로운 이념정당의 가능성이 열렸다. 더구나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이 진보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였다. 열린우리당의 86세대는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4대 악법 폐기 등을 추진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협상을 개시하는 바람에 열린우리당의 좌파 정당화 노력은 지체되었다.

한편 호남정당 후보로 당선된 노무현이 신당을 창당함으로써 호남정당은 노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 후 완전히 결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양당이 통합함으로써 호남-좌파 연합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처참하게 패배했지만 2009년 노 대통령 사망사건이 호남-좌파의 결속력을 높여주었다. 이제 노무현과 김대중이 나란히 호남정당 중심의 좌파들에게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셋째, 2004년 영남정당(한나라당)이 노무현 탄핵의 역풍을 막으려고 박근혜를 당 대표로 영입한 후, 총선에서 선전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였다. 이후 ‘선거의 여왕’으로 등장한 박근혜가 그의 부친과 함께 우파정당의 상징이 되었다. 넷째,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뉴라이트(New Light)운동에 참여한 우파 86세대가 영남정당에 진입하였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과 오세훈의 무상급식 반대가 영남정당의 우파성을 강화시켜 주었다. 2012년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는 “경제 민주화”를 내세워 영남정당의 우파성을 희석시킴으로써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 공약을 실천하는 데 인색했기 때문에 영남정당에 대한 우파 이미지가 한층 강화되었다.

다섯째,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 이후 지리멸렬 상태에 있던 영남정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은 2019년 조국 사태로 정치적 행운을 얻었다. 조국 가족의 비리가 쏟아지는 바람에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서 속수무책이던 우파가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더구나 이 사태 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이 우파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여 성공한 결과 영남정당이 살아남게 되었다.

  ‘20년 주기설’ 정치적 진화 이루어지길

지난 20여 년간 86세대가 주도한 정당정치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정당의 “젊은 피 수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내년 총선에서 어느 정당이든 자질과 능력과 비전을 가진 훌륭한 젊은 후보를 많이 공천해서 국회에 입성시키면 앞으로 장기간 정당정치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둘째,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뭉친 좌파 86세대는 정치적 가치, 목표, 경험 등을 공유했으나 뉴라이트 운동 등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우파 86세대는 지리멸렬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나이가 젊은 것이 아니라 가치와 목표가 분명하고, 세력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우파의 이준석 당 대표 사건, 좌파의 박지현 비대위원장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셋째, 386세대는 정보화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70년대 학번은 컴퓨터 자판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으나 80년대 학번은 정보화 능력을 정치권에 접목해 성공할 수 있었다. 예컨대 2002년 대선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현상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온라인 선거운동이자, 정치인 팬덤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젊은 피가 내년 총선에서 정계로 진입하다면 향후 우리 정치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교훈은 가치 집단으로 출발한 좌파 386세대가 세월이 가면서 권력의 단맛에 물들어 점차 정치적 이익에 집착하는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됨에 따라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의 비리 사건이 대표적인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586세대가 물러나고 젊은 피가 수혈되면 2000년 이후 86세대가 주도하던 좌우 이념정당의 경쟁 카르텔이 막을 내릴 수 있다. 86세대의 퇴진을 비롯하여 여야 정치권의 물갈이가 대폭 이루어지면 20년 만에 여의도정치가 새로운 길을 찾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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