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논설위원, 가정경영연구소장,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강학중 논설위원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뒤 척수장애인 남편과 결혼한 백정연 씨가 쓴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남편과 함께 약속 장소에 가려면 건물 구조를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건물 입구의 문은 적당히 큰가. 자동문인가, 당기거나 밀어서 여는 유리문인가, 아니면 회전문인가. 진입로가 경사져 있다면 얼마나 경사져 있나. 혹시 계단이 있나, 어느 높이로 몇 개나 있나. 약속 장소는 몇 층인가.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있나. 다음으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지 파악한다. 지하철을 탄다면 어느 역에서 타고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지, 타는 역과 내리는 역에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환승역 내 환승 통로에 계단이나 경사로는 있는지,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나와 약속 장소까지 가는 길에 턱이나 계단, 경사로는 없는지. 도착하면 화장실을 확인한다. 이 건물에 장애인 화장실은 어디 있나, 있기는 한가. 층마다 있나 1층에만 있나. 청소 도구로 가득 차 있나 아니면 이용할 수 있는가. 이동 시간은 지도 앱이 알려준 것보다 보통 1.5~2배 더 걸리고 도중에 예상 못 한 일도 일어나니 충분히 일찍 나서야 한다.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우면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는데 그러면 이동 시간은 예측조차 어렵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남편 혼자 셀프 주유소를 이용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비싸거나 멀더라도 셀프 아닌 주유소를 찾아다닌다. 영화관이나 식당, 카페 등의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서 있는 성인 기준으로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이나 추가 반찬은 ‘셀프’라고 써 붙인 식당이 많은데 좁은 테이블 사이를 헤쳐나갈 엄두가 안 나 반찬을 아껴 먹거나 아예 포기해 버린다.

그러니 장애인들에게 여행이란 한낱 꿈이며 상상조차 사치이다. 숙소 입구에 계단이 많거나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단념한다. 침대 옆에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는지, 회장실에 턱은 없는지, 변기 가까이 샤워기가 있는지 등등, 확인할 게 한둘이 아니다. 식당에 갈 때도 맛집은 포기하고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인지 아닌지부터 알아본다. 이사를 할 때도 따지고 확인해야 할 것이 많다.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갈 만한 거리인지, 경사가 없는 평지인지, 장애인 주차 구역과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결혼하고 방귀도 못 텄는데 신혼 시절, 똥부터 틀 수밖에 없었던 ‘웃픈’ 사연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척수장애인은 대소변 기능에 장애가 있어 좌약을 넣고도 화장실에서 최소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남편이 그렇게 화장실에서 애를 쓰는 동안 아내가 ‘급똥’을 해결하려면 옷을 급하게 챙겨 입고 집 근처 공중화장실부터 찾아야 했다. ‘똥 궁합’이 최악이었던 이 부부는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을 찾고서야 큰 숙제 하나를 풀었다.

이상은 척수장애인과 함께 사는 백정연 씨의 얘기일 뿐 장애에 따라 겪는 고통과 애환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지체 장애인, 뇌병변 장애인,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언어 장애인, 지적 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정신 장애인, 신장 장애인, 호흡기 장애인, 간 장애인, 안면 장애인, 장루(腸漏)·요루(尿漏) 장애인, 뇌전증 장애인 등 같은 장애라도 경중에 따라 양상은 또 다르다.

이동권을 주장하며 지하철역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들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출퇴근하는 시민들에게 최소한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라도 투쟁하지 않으면 아무도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제껏 우리는 장애인 문제를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손상으로 인한 개인의 문제로 보아왔다. 하지만 장애인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다. “장애가 있어서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억압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 장애인의 손상된 몸과 마음이 아니라 그렇게 장애인으로 만든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눈을 돌릴 때다. 온통 장애인이 전부인, 점자 도서만 가득한 도서관에서 비장애인이 책을 읽을 수 있겠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장애인에게 좋은 세상이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임산부, 유아차를 끄는 부모, 일시적으로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 무거운 짐을 든 사람, 인지 기능이 떨어진 사람 등 우리 모두에게도 좋은 세상이다.

전체 인구의 10% 남짓만 선천적인 장애이고 90% 이상이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장애라는 통계를 보면 우린 잠재적인 장애인, 일시적인 비장애인일 뿐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 장애인이 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요즘 배리어 프리(Barrier-free)나 유니버설 디자인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무장애 여행 상품이 등장하는 현상은 반가운 일이다. 읽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쉬운 정보’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도 고맙다.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환승 지도 제작도 고무적이고 탈시설 운동도 반갑다. 그러나 시설에서 나와서도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는 환경과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탈시설 운동이 설득력을 얻는다. 장애인을 격리하지 말고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통합교육을 확대하자고 주장하기 전에, 나와 다른 친구를 이해하고 서로 돕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장애인 학생이 따돌림이나 학폭의 희생자가 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 수도 있다. 세상이 서서히 바뀌고는 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집집이 다 장애인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생색내기나 면피용 연례행사 치르는 날로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복지학이나 장애학을 공부하고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조차 장애인의 일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비장애인의 무지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깊이 깨닫고 비장애인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여성문제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 간 관계의 문제이듯이 장애인 문제 역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관계 문제이다. 장애인은 격리 대상이 아니며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더 많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어울려 사는 데에 걸림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할 일을 지금 바로 실천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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