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회장

민경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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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라는 말이 있었다. 혹자는 딸은 결혼하고 나서도 친정 부모에게 잘해주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풀이한다. 그런데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고? 아들 낳아도 비행기 탄다.’라는 책을 낸 분(곽의숙, 뱅크북)도 있으니, 딸이든 아들이든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가 아닌가 싶다.

필자의 딸이 미국으로 시집가서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살고 있는 지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래서 딸을 보러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가까운 지인은 프랑스 리옹 남자에게 시집보내 놓고는 딸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인다. 작년에 첫 손주를 보아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긴 비행시간도 그러려니와 리옹까지 직항이 없으니 드골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일들이 아마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도 캔자스시티까지 바로 갈 수 없어서 디트로이트나 시카고에서 갈아타야만 한다. 보따리 서너 개(딸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바리바리 들어 있어 얼마나 무거운지)를 찾아서 다시 국내선으로 보내고 탑승 시간을 맞추느라 허겁지겁했던 일들이 새롭다.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는 공항이 여행으로 설레는 곳이라기보다는 고생, 그리고 이별의 장소로 얘기되곤 한다. 딸을 낳아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너무 먼 곳에 사니 늘 애잔한 마음이다

그런데 이제 프랑스에서는 국내선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프랑스 의회가 2시간 30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국내선 항공 운항을 금지하는 내용의 ‘기후와 복원법률’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 법률은 2030년 프랑스의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서 40%까지 절감하고자 하는 기후법안 내용의 일부분이다. 애초에는 프랑스 기후위원회가 4시간 안쪽 이동거리의 모든 항공편을 폐기하는 안을 내놓았으나 항공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축소된 것이라고 한다. 근래에 에어프랑스는 국내 노선 수를 40%까지 줄이겠다는 약속까지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항공 산업에 대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법안을 제정하거나 준비 중인 나라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는 350km 이하 구간 비행에 30유로 세금을 부과하고, 열차로 3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는 국내선 운항 중지를 의회가 의결했다고 한다. 만약 이 법을 우리나라에 들이댄다면 제주도, 강원도 양양같이 철도가 다니지 않는 곳을 제외하면 부산 김해공항도 국제선만 남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KTX가 거의 2시간 30분 내 이동권을 보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항공사정은 어떤가. 새로 계획된 신공항만 해도 제주도 제2공항을 비롯해 부산 가덕도 신공항, 대구경북신공항 건설이 속속 준비를 마치고 출발선상에 있다. 지난달 6일 환경부가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조건부(환경 악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조건) 동의라고 발표했는데, 이제 공은 제주특별법에 따른 제주의회로 넘어가 있다. 차후 넘어야 할 산들이 있겠지만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환경부가 신공항 건설에 따른 항공기소음 영향평가를 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에 대해서는 어떻게 조건부 동의를 해주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 문제점은 조류 충돌 위험,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 2급인 맹꽁이 서식지 훼손 문제, 천연기념물 두견이와 남방 큰돌고래가 당할 위협 같은 것들이다. 공항 건설로 빚어질 이런 최악의 조건에 대해 얼마나 고려를 한 것일까.

더욱이 가덕도 신공항은 공사 일정을 당겨야 한다고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이 지난달 14일 발표했다. 2030년 부산 세계박람회가 마치 결정이라도 난 것처럼(결정이 되었더라도 그렇다) 그에 대비해야 한다며, 정부가 조바심을 내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는지 벌써 잊은 모양이다. 공사 일정은 공항의 배치에 따른 공사의 난이도(매립공사)와 환경문제의 최소화와 안전을 고려해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빨리빨리 고질병(?)이 또 도진 것 같아서 걱정이다.

작년 말에 강원도 양양군이 환경부에 제출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건설사업’(오색약수터에서 끝청까지 편도 3.3km)에 따른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에 대한 검토 의견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은 자연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큰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이미 제출했다. 국립환경과학원, 국립공원공단, 국립생태원, 국립기상과학원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조건부 동의’한다는 결정을 또다시 내놓았다(3월 8일).

40여 년간 버티고 버티던 환경부가 국책 연구기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슨 이유로 이렇게 묘한 결정을 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으나 이를 기화로 케이블카 사업이 줄을 서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 울산바위 케이블카 사업, 충북 보은군의 속리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 대전시 중구 보문산 케이블카 사업, 전남 구례군과 경남 산청·함양군이 추진 중인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도 환경영향평가 재심사 보완서 제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경북 영주시청도 소백산 케이블카 사업의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니 가히 조건부 동의가 지자체의 희망시그널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유동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재정의 어려움을 관광 사업으로 풀어내는 데 케이블카 사업이 적격이라는 것이다. 이제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다시 불붙게 되었다. 그러나 국립공원이 소재지 지방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의 재산이며 훼손된 환경의 원상회복은 조건부 동의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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