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선 논설위원,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 연구교수

 

이주선 논설위원
이주선 논설위원

세계은행에서 각국 고위 공무원들을 상대로 규제개혁을 강의하러 1주일 동안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 이후 거의 15년이 흘렀다. 이번 워싱턴 DC 방문은 온전히 개인적 여행이다. COVID19로 외국 여행을 4년여 중단했는데, 재개하는 첫 여행지로 이곳을 택했다. 30년이 훌쩍 넘은 유학 시절 처음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왔고, 미국에 처음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왔던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주의 깊게 돌아본 곳은 스미소니언 박물관들과 조지타운이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곳은 자연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2층의 ‘인간의 기원’ 방이었다. 특히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 가운데, 사피엔스가 “13만 년 전 처음으로 원거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자원 거래를 시작했다.”는 설명이 아주 크게 다가왔다.

   13만 년 전 거래로 인류문명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설명문. 
   13만 년 전 거래로 인류문명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설명문. 

사람은 통상적으로 자신을 이롭게 하는 데 두 가지 수단을 이용한다. 먼저 사용된 수단은 ‘남을 해쳐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개인은 살인, 강도, 도둑질, 강간, 사기 등을, 집단은 전쟁, 혁명, 패싸움 등 정말로 다양하게 이 수단을 동원한다. 인류의 출현 이래 지금까지 이 수단들이 이어진 것을 보면, 인류가 이것들을 완벽히 제거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사실 이 수단들은 동물적 본능에 속하므로, 인간이 건설해 온 고상한 문명과 문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인류는 다행히 이 수단들을 악으로 규정하여, 사용 방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종교의 율법, 전통과 관습, 윤리와 도덕, 법과 규제들이 개인의 이런 행동을 규율해서 그 시도를 예방하거나 사후적으로 제재해 왔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 방지를 위해서 UN 등 다양한 국제기구들을 구축하였고,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적인 전쟁 억제에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이런 인류의 선택은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번영의 핵심 기제이다. 물론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 위협 등은 이 방향과 다르게 전개되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또 하나 사람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수단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바로 거래와 교환이 그렇다. 자발적인 거래와 교환은 항상 거래 양방이 이로울 때만 이루어진다. 거래에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대가로 자신도 유익을 얻는다. 그러니 여기에는 분쟁이 없고 공동번영(common prosperity)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거래를 13만 년 전 지구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 가운데 바로 우리의 원조인 호모 사피엔스가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 거래와 교환은 ‘시장’으로 발전해서 인류 번영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거래와 교환의 시작이 가진 의의는 정말로 감격스럽다. 첫째, 이는 사람이 지금까지 자신의 필요를 자급자족하는 동물적 특성을 넘어 남의 필요를 채워서 자신의 필요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생존 기반을 확대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는 남을 해쳐서 자신을 이롭게 하는 동물 상태를 벗어나, 분업과 협업을 통한 사회협력으로 거래주체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는 시장이 사람이 만든 허접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유일하게 동물 상태를 벗어난 문명적 존재의 출발점이며 오늘날 지구에 인류세(Anthropocene)라 불리는 지배적 지위를 확보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후 인류는 화폐를 사용해서 교환과정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축소하는 여러 혁신을 거쳐 지금과 같은 세계화된 시장을 구축하고 거래하여 번영을 구가하는 존재로 진보했다. 오늘날 세계를 돌아보면 수많은 적대적 비판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장 중심으로 제도와 사회를 건설한 나라들은 대륙·인종·환경·국경을 초월해서 번영하고 있다.

과거에는 종교들이, 현재는 공산주의·사회주의 등 사람 머리에서 나온 전체주의 사조 신봉자들이 시장과 시장에서의 경쟁을 불평등과 사회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공공연히 적대시한다. 그리고 이기심이 가득 찬 사람들이 구성한 독재·전제 정부나 공산당이라는 독점적 조직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을 폐쇄·축소하고 정부나 공적 조직이 임의로 개인의 생명과 소유에 대한 의사결정을 해서 불평등을 제거하고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나 공산당은 전지전능하며 자애로운 신이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므로,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그 행태가 시장보다 더 큰 불평등을 조장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하면 인류가 생명을 걸고 쟁취하려던 자유와 번영은 잃고, 독재자와 전제군주 그리고 그 하수인들만 특권을 누리고 다른 사람들은 노예가 되는 체제를 다시 불러들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런 현상들을 과거 소련과 동구권, 북한과 중국,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목도해 왔다.

더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대개 다른 사람을 해쳐서 자신을 이롭게 하는 수단들을 동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최근 북한, 러시아, 중국의 핵무기 선제 사용 위협은 이런 나라들을 장악한 제왕 같은 독재자들이 수시로 들이미는 반문명적이며 동물적인 수단들이다. 그러므로 이들과 연합하거나 이들을 옹호하는 자들은 문명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금수(禽獸)만도 못한 자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기원’ 방에서 본 ‘13만 년 전 사피엔스가 물물교환을 처음 시작했다.’는 설명은 실로 감격스러운 인류 문명의 진정한 시발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발전한 지금의 자유시장과 시장경쟁은 지속적 번영을 구가하려면 반드시 지켜내야 할 핵심 가치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