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농업은 식량을 얻는 일이므로 고금동서 구분 없이 중요하다. 우리 농업의 대명사는 쌀이다. 쌀 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토록 하는 정책이 논쟁거리다. 매년 추곡수매로 이미 많은 양을 사들이고 있으니 새로운 지원책이 아니다. 정부는 쌀 초과생산량에 대한 정부의 수매를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계속 줄어드는 수요를 감안해 쌀 생산을 줄여야 하는 근본적 해결 방안과 배치되며 재정 부담도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몇 가지 논점을 정리해본다.

첫째, 오늘날 우리의 쌀농사 문제는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어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공통점을 보자. 쌀이 역사적으로 주식 곡물이어서 쌀농사가 국가적 중대사였고, 같은 종류의 쌀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나며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온 것도 같다. 일인당 쌀 소비가 줄고 있을 뿐 아니라 인구 규모가 감소하고 있으니 두 나라 모두 쌀 소비가 부활하는 것은 다음 생에나 기대할 일이 되고 말았다. 일본은 고령화, 특히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공동화 문제도 우리에 앞서 경험했다.

두 나라 모두 쌀시장 정책의 변화는 대외무역과 관련이 깊다. 과거 세계무역기구가 주도했던 다자무역협상이나, 소규모 자유무역협정 논의 때마다 일본의 쌀 시장 개방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는데,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도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은 교역국들의 쌀시장 개방 요구에 제한적으로 외국 쌀을 사들이다 1999년에 수입물량 쿼터 대신 관세를 부과하는 관세화를 시행했다. 우리나라도 일정량을 의무 수입하여왔고, 2021년부터는 부분적으로 관세화를 병행해서 시행하고 있다. 국내 소비량에 비해 약 20만 톤의 쌀이 더 생산되고 있는데, 약 40만 톤의 쌀이 의무적으로 수입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둘째, 농업지원 정책의 효시는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CAP, Common Agriculture Policy)이다. CAP는 역사가 깊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초토화된 유럽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여 식량을 조달했다.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각국은 농산물 생산 장려에 매진했다. 1950년대 후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몇몇 국가들이 경제협력을 위해 로마조약을 맺으며 유럽경제공동체(EEC)가 탄생했는데, 회원국들 간 농업분야 정책 조율이 필요해지자 CAP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CAP는 돈 먹는 하마가 된다. 농업지원 규모가 커져 과거 공동체 예산의 반 이상이 투입되었고, 지금도 EU 예산의 약 30%를 차지한다. 초기엔 우리나라처럼 쌀 수매를 통해 쌀 가격을 지지하는 방식이었는데 1970년대부터 심각한 생산 과잉이 빈번히 발생했다. 수매된 농산물이 늘면서 버터산(butter mountain), 우유호수(milk lake)와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대외적으로는 다자무역협상 때마다 CAP가 단골 동네북이 되었다. 수차례 개혁을 통해 가격지원에서 농가소득 보전을 위한 직불제로 지원정책이 전환됐으나 아직도 EU의 농업보조금 규모는 미국이나 일본의 약 두 배에 달한다.

유럽 농산물의 품질이 높다는 것은 CAP의 괄목할 긍정적 효과다. 특히 축산업 분야에서 인도적 사육의 글로벌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좁은 공간에서 닭을 사육했던 것을 금하고 활동이 가능한 최소한의 닭장 규격을 의무화하고 있다. 가축에 항생제, 성장촉진 호르몬제 사용도 금지한다. 기준이 엄하다 보니 대규모 농장·목장이 많은 미국과 축산물 분야에서 갈등이 빈번하다. 유럽 회원국들이 다수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에서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잦은 것에 대해 밀집사육이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셋째, 장기적 해결 방안의 일환으로 경작지를 자연으로 돌려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쌀 농가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아 효과가 미미하다고 한다. 용도가 다양한 쌀가루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다른 벼를 보급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그 땅에 농사를 지어야 할 필요는 없다. 최근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동남아 쌀 농업 관련 기사에 따르면 수경 논농사는 온난화(메탄) 가스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경우에도 토양 유실, 화학 비료·농약 사용 등 환경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크고 작은 산이나 구릉 지대가 흔한 우리나라의 지형을 감안하면 논밭이 이들을 단절시키는 경우가 많다. 경작지를 녹지화했을 때 생태다리 역할을 하여 단절되었던 산자락, 구릉을 연결해 줄 수 있는 곳을 선별하여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가파른 산허리를 깎아 만든 자동차 길 위에 생태다리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게 곤충, 동물들이 더 넓은 서식지를 확보할 수 있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자동차 도로 위에 폭이 25m나 되고 물웅덩이까지 갖춘 생태다리를 건설하고 있다 한다.

‘식량안보’의 의미가 무엇이든 남아도는 쌀을 보관하느라 납세자의 세금을 들이고, 환경을 손상하는 일을 장려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장의 대응책 마련에 급급한 정부의 접근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작지를 자연으로 돌리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농지의 매입이나, 주택연금과 유사하게 토지를 포기하는 농가에 대가를 직접 지불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해결 방안은 농림축산식품부와 더불어 환경부도 참여해 마련해야 할 일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