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 구도심의 배다리마을

침을 잘 놓기로 유명했다는 동성한의원은 책방과 손뜨개, 제로웨이스트샵 등이 있는 '문화상점'이 됐다. 사진 권해솜 기자.
침을 잘 놓기로 유명했다는 동성한의원은 책방과 손뜨개, 제로웨이스트샵 등이 있는 '문화상점'이 됐다. 사진 권해솜 기자.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나와 왼쪽 길 전통시장 사이를 5분 정도 걸어가면 인천 구도심을 대표하는 배다리마을이 나온다. 송도나 검단 같은 인천 신도시에 이목이 쏠리면서 관심이 현저하게 줄어든 대표적인 곳.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없지는 않다.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여전히 사람 사는 향기를 뿜어내면서 매일 하루를 연다. 누구는 서점을 열었고, 또 누군가는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요리한다. 오랜만에 방문한 배다리마을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1940년대 중후반에 지어진 길조 여인숙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옛 빨래터가 발견돼 '빨래터'라는 이름의 카페로 바뀌었다. 사진 권해솜 기자.
1940년대 중후반에 지어진 길조 여인숙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옛 빨래터가 발견돼 '빨래터'라는 이름의 카페로 바뀌었다. 사진 권해솜 기자.

빛바랜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던 한적한 골목길이 관광객을 맞이할 채비를 갖춘 듯 정리 정돈이 잘 됐다. 지난해 7월 인천 동구는 구도심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 아래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을 마쳤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렇게 배다리마을에 큰 변화가 찾아왔음을 알렸다.

배다리마을의 랜드마크였던 조흥상회는 국가문화재 등록을 기다리고 있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건물이다. 사진 권해솜 기자.
배다리마을의 랜드마크였던 조흥상회는 국가문화재 등록을 기다리고 있다.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건물이다. 사진 권해솜 기자.

1930, 40년대에 지어져 어렵게 살던 이들이 이용했던 여인숙은 최근까지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던 숙소였으나, 커피숍, 미술관, 공원 등으로 분위기 전환을 마쳤다.

독립책방 ‘나비 날다’와 ‘배다리 안내소’가 있었던 이 마을의 랜드마크 조흥상회 건물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문화재 등록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다. 

문화상점으로 탈바꿈한 동성한의원의 내부. 사진 권해솜 기자.
문화상점으로 탈바꿈한 동성한의원의 내부. 사진 권해솜 기자.

독립책방 ‘나비 날다’는 손뜨개 '실꽃'과 제로웨이스트샵 '슬로슬로' 등과 함께 침 잘 놓기로 유명했던 동성한의원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 동네에 오래 살아온 한 주민은 동성한의원이 다시 문을 연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가기도 했다. 

요일마다 주인이 바뀌던 요일가게의 달셰프는 그만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40여 개였던 책방은 다섯 곳으로 줄었다가 다시 여덟 곳으로 늘었다. 예전에 없던 성냥박물관도 2019년 개관했다. 

몇 년 전 요일마다 상점의 모습이 바뀌는 '요일가게' 셰프로 만났던 달셰프는 그만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사진 권해솜 기자. 

배다리마을 주민과 이 지역 시민활동가들, 인천동구 관계자들은 최근까지도 배다리마을의 발전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독립책방 ‘나비 날다’ 대표 권은숙 씨는 “예전에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도 많다”면서 “다양성에 맞춰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심 활성화라는 목표 아래 민관이 모인 것은 반길 일이지만, 관 차원의 갑작스러운 개입은 공동체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 잡음은 있지만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마음만은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성냥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옛 성냥. 사진 권해솜 기자. 

배다리마을의 과거사를 들춰보면 딱하고 애잔하다. 일제강점기 닥친 거센 파도에 맨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사람들의 척박한 삶과 흔적이 남아 있다. 1883년 지금의 인천항인 제물포 포구가 개항하면서 그 일대는 일본인과 중국인의 조계지가 됐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노동일을 하던 사람들은 배다리를 중심으로 율목동, 금곡동, 창영동 등지로 쫓겨나야 했다. 밀물 때 수로를 통해 드나들던 작은 배 위로 장(場)이 서니 사람들이 모였고 그렇게 조선인 마을이 생겨났다.

오래전 조흥상회 주변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사진제공 권은숙 씨.
오래전 조흥상회 주변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사진제공 권은숙 씨.

옛 사진을 찾아보면 조흥상회 건물 옆으로 길이 나고 , 많은 사람이 한 짐 들고 지나가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개발 이익을 노리던 2000년대 후반에는 부동산 아니면 도로 사업을 벌인다는 지방자치단체의 발표에 원도심 주민들이 삶터를 잃을 뻔했다. 내몰리고 또 내몰리다 배다리 끝에 선 사람들이었다. 주민들에게 별 도움 될 것 없던 개발이익에 맞서 문화·예술인, 시민 활동가들이 모여 마을공동체를 견고하게 만들어 나가고자 했다. 조흥상회와 인천문화양조장 스페이스 빔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을 하는 젊은 예술가와 시민 활동가가 찾아들었다. 

인천문화양조장 스페이스 빔의 입구. 황해도 출신 최병두 선생이 24세에 인천에 정착해 1927년부터 이곳에서 인천 대표 향토 막걸리 소성주(邵城酒)를 생산했다. 스페이스 빔은 2017년 ‘인천문화양조장’으로 바뀌어 여러 단체와 개인 활동가들이 임차료를 일부 분담하는 조건으로 입주해 함께 사용 중이다. 사진 권해솜 기자. 
인천문화양조장 스페이스 빔의 입구. 황해도 출신 최병두 선생이 24세에 인천에 정착해 1927년부터 이곳에서 인천 대표 향토 막걸리 소성주(邵城酒)를 생산했다. 스페이스 빔은 2017년 ‘인천문화양조장’으로 바뀌어 여러 단체와 개인 활동가들이 임차료를 일부 분담하는 조건으로 입주해 함께 사용 중이다. 사진 권해솜 기자. 

문화와 생태적 삶이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성지를 만들었고, 날것 그대로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따뜻함을 안겼다. 일회용품 사용이 빈번한 요즘 세상이지만 적어도 배다리마을에서는 함께 돌려가며 쓰는 에코백에 물건을 담고, 공용 물병을 모아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대신한다.

'돌고 도는 마을 공용 텀블러'라고 쓰인 물병은 테이크아웃 종이컵 대신 사용되고 있다. 사진 권해솜 기자. 
'돌고 도는 마을 공용 텀블러'라고 쓰인 물병은 테이크아웃 종이컵 대신 사용되고 있다. 사진 권해솜 기자. 

10여 년의 실험 기간을 거치면서 지역화폐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생태적 삶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배다리마을이 증명했다. 시대는 흐르다 어느 순간 변혁을 맞이하는 수순을 밟는다. 변혁의 순간은 어딘가 아플 수도 있고, 과할 수도 있다. 방문자 입장에서 지금의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다. '배가 닿는 곳'이라는 뜻의 배다리마을은 사람들이 찾아와 닿는 역사문화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인천 동구 배다리마을의 구심점과도 같은 아벨서점 내부. 사진 권해솜 기자.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