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김기호 논설위원
 김기호 논설위원

요즘 서울에서는‘그레이트 한강프로젝트’가 화제다. 2007년 한강르네상스사업의 후속편으로 그동안 미흡했던 부분과 새로운 시대변화에 따른 요구를 살펴 ‘함께 누리는 더 위대한 한강’을 추구한다고 보도되고 있다.

산과 강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대동여지도(1861) 속 서울주변 산맥과 강.  
산과 강의 관계가 잘 드러나는 대동여지도(1861) 속 서울주변 산맥과 강.  

서울의 중심이 강북 역사도심에서 강남으로 갔는가 했더니 이제는 한강 유역이 강력한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강북의 한강변 구)’이니 ‘강남4구(서초-강남-송파-강동 등 강남 동쪽의 한강변 구)’니 하는 용어는 사람들의 주거지(아파트) 관심과 선호도가 한강변으로 향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강남’이라는 단어보다 ‘한강변’이라는 용어가 훨씬 더 힘있게 도시 내 지역의 위상과 특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산의 시대가 가고 강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는 강이나 산이 주는 쾌적성(amenity)의 우열(優劣)보다 한강이 서울의 중심을 통과하는 위치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배산(背山)을 우선으로 하던 전통적 도시와 주거관이 임수(臨水)가 더 중요성을 띠는 새로운 입지관(立地觀)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때에 서울의 도시계획이 한강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여의도 시범아파트 앞(사진 중앙)과 한강대교(사진 우측) 쪽 모습. 사진: 서울 2019/2020 도시형태와 경관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여의도 시범아파트 앞(사진 중앙)과 한강대교(사진 우측) 쪽 모습. 사진: 서울 2019/2020 도시형태와 경관

르네상스란 중세 신본(神本)주의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인본(人本)주의를 추구하며 인간을 모든 것의 척도로 삼고 합리성을 그 판단기준으로 하는 문화혁신운동이었다. 한강르네상스(마스터플랜, 2007)도 서울을 혁신하는 개념으로 출발하여 그 구체적 실증과 사업의 대상으로 한강을 선택하였다. 당시 계획의 기본방향은 ‘회복과 창조’였으며 이는 이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역사와 경관 및 생태 훼손에 대한 반성이었다. 이 기본방향은 그레이트 한강프로젝트에서도 계승된다고 한다. 그래도 발표된 사업들을 보면 좀 더 근본적인 측면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조용한 한강은 없는가?’라는 질문이다.

발표된 여러 사업은 매우 센세이셔널하고 사람들의 시각을 붙잡는 것들로서 대체로 내외 (內外)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하는 사업으로 보인다. 중요한 일이다. 국제도시 서울은 세계 속 도시경쟁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기본적으로 거기 사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약하다. “아마, 서울사람만 남산 서울타워 못 가봤을 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시끌벅적하고 사람 많이 오는 곳을 즐겨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일상에서 호젓하게, 조용하게, 사색하며 누릴 수 있는 한강도 계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목멱조돈(木覓朝暾, 남산 일출, 1741)’, 겸재 정선(1676~1759). 간송미술관. “…상쾌한 아침 기운과 여명의 잔영이 어우러진 새벽 분위기가 갓 세수한 것처럼 맑다. 시야를 가리는 것 없어 시원하게 터진 조망과…일찍이 낚싯배를 노 저어 나오는 한강 풍경이 신선하다.”(정옥자(국사학자), 잃어버린 한강;京江, 동아일보, 2007.6.22.)
‘목멱조돈(木覓朝暾, 남산 일출, 1741)’, 겸재 정선(1676~1759). 간송미술관. “…상쾌한 아침 기운과 여명의 잔영이 어우러진 새벽 분위기가 갓 세수한 것처럼 맑다. 시야를 가리는 것 없어 시원하게 터진 조망과…일찍이 낚싯배를 노 저어 나오는 한강 풍경이 신선하다.”(정옥자(국사학자), 잃어버린 한강;京江, 동아일보, 2007.6.22.)

두 번째는 자연성 회복에 대한 것이다.

강은 자연의 선물이다. 그리고 강은 산과 구릉이 만들어 준다. 그러기에 강뿐만 아니라 강과 산이 만들어 내는 생태와 경관이 한 묶음으로 자연의 귀한 선물이다. 자연성 회복은 일부 수변생태계의 보호에서 끝날 수 없다. ‘산수(山水):산과 강의 연결’이라는 우리 특유의 전통적 경관의식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서울(60%가 아파트) 시민이나 한강 주변에 사는(주로 아파트) 사람들이 한강에 산책 나왔을 때 다시 온통 아파트로 둘러싸인 강만 보게 된다면 이는 매우 큰 재앙일 것이다. 거대한 한강과 함께 서울 도시 입지의 근원이 되는 아름다운 산들을 볼 수 있다면 그나마 좀 더 감성적이며 품격있는 경관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강에서 남산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 것’같은 걱정이 기우(杞憂)가 되었으면 좋겠다.

거론되는 조망회랑(view corridor)은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조망 회랑은 회랑을 따라가는 사람을 위한 좁은 조망통로일 뿐 한강변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산과 강을 아우르는 좀 더 구조적인 도시 관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반포 서래섬에서 본 남산 풍경. 이미 남산의 반 이상이 차폐되어 한강과의 시각적 관계를 잃어가고 있다. 그 앞의 아파트들은 더 높은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21.
반포 서래섬에서 본 남산 풍경. 이미 남산의 반 이상이 차폐되어 한강과의 시각적 관계를 잃어가고 있다. 그 앞의 아파트들은 더 높은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김기호 2021.

셋째, 한강에는 밤섬, 선유도, 노들섬 등 3개의 작은 섬이 있다. 섬은 접근에 제약이 있어 도시개발의 눈으로 보면 불편하고 외로운 곳이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자연을 보전하고 조용함을 보장하는 데 오히려 장점으로 나타난다. 이미 밤섬은 한강생태계의 보고로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선유도도 폐정수장이 자연과 함께 다시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매력있는 공원으로 사랑받는다.

마지막 남은 노들섬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체로 보행교 등 추가 건설로 섬을 활발히 이용하자고 한다. 생각을 바꿔 섬이라는 특성을 살려 조용하고 사색적인 섬, 자연이 매우 풍부하게 보존되는 섬을 기본방향으로 삼고 필요할 경우 일부 기본방향에 적합한 시설만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연구나 교육 등 시설이나 도서관, 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이런 부류일 것이다. 

노들섬과 남산. 한강대교 좌측(여의도 방향)은 라이브하우스등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우측(동작대교 방향)은 숲이다. 대상지 규모와 접근성을 감안할 때 공원이나 공원과 병존할 수 있고 일시통행량을 크게 유발하지 않는 시설을 조성하는 게 적합해 보인다. 사진: 서울도시형태와 경관 1999/2000.
노들섬과 남산. 한강대교 좌측(여의도 방향)은 라이브하우스등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우측(동작대교 방향)은 숲이다. 대상지 규모와 접근성을 감안할 때 공원이나 공원과 병존할 수 있고 일시통행량을 크게 유발하지 않는 시설을 조성하는 게 적합해 보인다. 사진: 서울도시형태와 경관 1999/2000.

한강에 대한 계획에서 예전부터 여러 번 한강사(漢江史)박물관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제기돼왔다. 이 기회에 한성백제 시기와 조선시대 한양을 아우르는 2000년 역사를 연구 전시하는 서울역사박물관(현 경희궁부지 내)을 이곳으로 이전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되겠다. 아울러 서울연구원(현 우면산 서울인재개발원 내)이나 서울역사편찬원(현 올림픽공원 내) 같은 관련기관이나 숲속 작은 미술관이나 전시관 등도 함께하여 자연이 풍부한 섬 속의 박물관-연구원 클러스터를 이룬다면 말 그대로 사색과 조용함 속에 미래의 꿈을 키워가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이를 통해 5대 궁의 하나인 경희궁이 제모습을 찾게 된다면 이 역시 목표하던 회복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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