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목공예가 이흥옥 씨

36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전통목공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흥옥 씨.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36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전통 목공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흥옥 씨.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망치로 나무를 쾅쾅 두드리는 소리, 쓱싹쓱싹 톱질하는 소리가 멀리서 경쾌하게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이흥옥(68) 씨의 목공예 공간 ‘올드 우드’가 나온다. 36년 공무원 생활을 마칠 무렵 무엇을 하면서 은퇴 후 인생을 살아야 하나 생각하다 톱과 망치를 손에 쥐었다. 그냥 목공이 아니었다. 우리 문화와 얼이 담긴 전통목공예다. 못을 쓰지 않는 대신 나무와 나무를 자르고 서로 잘 맞물리게 깎고 다듬어서 짜맞추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전통 목공예가로 사는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이흥옥 씨를 만났다. 

은퇴 이후 삶, 목수를 꿈꾸다

“2009년 사무관이 되면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뭘 해야 하나 했습니다. 양천구청 문화체육과에 있을 때였어요. 마침 정부가 많이 발행하는 문화‧예술 서적 중에 서 문화재 개보수 보고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걸 보다가 ‘한옥을 지어야겠구나’ 생각했죠.”

수많은 보고서가 발간돼 때마다 책상 위에 쌓이다가 버려지곤 한다. 운명이었는지 이흥옥 씨 눈에 잘도 띄었다. 이를 계기로 전통 목공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다. 조금 용기가 생겼을 무렵 한국문화의집(KOUS‧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 등록해 차근히 과정을 밟아 나갔다. 이곳에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6호인 심용식 소목장으로부터 창호(窓戶)를 배웠다. 공직에 있는 3년 6개월 동안은 주말 등을 이용해 전통 목공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2014년 6월에 퇴임했는데 강원도 화천에 있는 (재)화천한옥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서, 정년인 만 60이 되기 전에 공무 연수 기간에 들어갔어요. 입학이 만 60세까지라 퇴임하고 나서 도전했다가 떨어지면 기회가 없잖아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와서 다음 스텝을 준비한 겁니다.”

다행히 화천한옥학교는 단번에 입학해 옛 조상들의 방식으로 한옥을 짓는 모든 과정을 배우고 학습했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 다닐 때 소목(반상을 비롯해 작은 소도구)을 배웠다면, 화천한옥학교에서는 집 짓는 ‘대목’을 익히고 나왔습니다. 6개월 동안 화천에서 먹고 자면서 수업받았어요.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화천군이 전폭적인 지원을 했고, 학비도 저렴했어요. 그때 당시 ‘소목 작업실’을 저와 동기들이 함께 만들고 나왔습니다. 화천한옥학교를 마치고서는 제주시 애월읍 선운정사에 가서 128평 되는 오백나한전을 건립하는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선운정사의 오백나한전 한옥 시공 모습. 사진 이흥옥 제공.
제주시 애월읍 선운정사의 오백나한전 한옥 시공 모습. 사진 이흥옥 제공.

이후 한옥학교 동기들과 함께 한옥 세 채를 더 짓고 난 다음 소목장으로 되돌아왔다. 집 떠나 전통 방식을 따라 집을 짓는 일은 보람도 있지만 생각보다 더 힘든 작업이었다. 현재는 개인 공방과 양천구청이 운영하는 목공 수업에서 전통 짜맞춤 강의를 하고 있다. 제2의 인생에 나설 때 목공예를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 같다고 이 씨는 말했다.

“목공 일을 하니까 저는 너무 좋습니다. 머리도 깨끗해지고 말이죠. 생각해보면 제 아버지께서 손재주가 아주 좋으셨어요. 그리고 외삼촌이 전국을 다니면서 집 짓는 일을 하셨습니다. 집안이 이공, 기술 쪽으로 많아서 행정직을 선택한 제가 돌연변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봅니다.”

전통 목공, 자연스러움이 담기다

전통목공은 참으로 생소하다. 짜맞춤 기법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대해 배울 때 언뜻 들었던 게 전부다. 유명 연예인이 목공에 매력을 느껴 가구를 만들었다며 매체에서 보여주는 것마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어울리는 서양식 목공이었다.

“톱, 끌, 대패, 망치를 이용해 100% 짜맞추며 목공을 하고 있습니다. 철물은 여닫이문의 장식 등을 제외하고 거의 쓰지 않아요. 나무를 짜맞추면 온도나 습도 등에 따라 같이 늘어났다 줄어듭니다. 그런데 쇠(못)하고 나무는 수축 비율이 달라서 틀어져요. 쉽게 망가지고요. 10년 내지 15년 정도를 수명으로 생각합니다. 일부러 부수지 않고 관리만 잘한다면, 전통 목공으로 만든 것은 50년 혹은 몇백 년을 전해서 쓸 수도 있습니다.”

매번 새로운 목재를 맞을 때마다 드는 자연에 대한 이해도 높아갔다. 

“사람은 많이 살아봐야 한 세기, 100년을 살잖아요. 그런데 나무는 100년, 200년, 천년도 삽니다. 목재로 제 앞에 왔을 때 존경심 혹은 경외로움을 느낍니다. 함부로 다룰 수가 없어요. 최소한의 부분만 잘라내고 다 활용합니다. 작은 부분도 많이 쌓아놓았다가 원데이 클래스(1일 강의) 등을 열어 도마 만들기에도 활용하고, 더 작은 것 또한 쉽게 버리는 법이 없어요.”

서울시 양천구가 운영하는 목공방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전통공예 강좌를 하고 있다. 사진 이흥옥 제공. 
서울시 양천구가 운영하는 목공방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전통공예 강좌를 하고 있다. 사진 이흥옥 제공.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작업

이야기할 때 연신 미소를 감추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일에 제대로 빠져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구청에서 일할 때와 비교해달라 물었더니 ‘비교 불가’라고 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주어진 여건에서 열심히 제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저 스스로 해야 합니다. 조금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어떤 걸 만들까 고민도 하고 정확하게 치수를 재서 도면도 그립니다. 건물 관련 서적도 보고, 목공에 필요한 수공구도 찾아보다가 좋은 게 있으면 현장에 가서 사고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인 듯하다. 현대식 생활에 익숙한데 굳이 지금의 의식주와 연관이 없고, 애써 찾지 않는 것을 알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씨가 가는 길은 첨단의 시대를 뛰어넘어 중요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최근 경기도 파주시의 한 문화재 개보수 현장에서 가지고 온 기둥. 80년 내지 100년은 버티다 아래쪽이 썩어 새것으로 교체돼 쓰임을 다했다. 버려지는 기둥을 이용해 사궤를 뜨고,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최근 경기도 파주시의 한 문화재 개보수 현장에서 가지고 온 기둥. 80년 내지 100년은 버티다 아래쪽이 썩어 새것으로 교체돼 쓰임을 다했다. 버려지는 기둥을 이용해 사궤를 뜨고,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한옥을 짓고, 반상이나 창호 등을 잘 만드는 실력을 키우는 이유는 우리 문화재 보존과 큰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역사적 가치를 품고 있는 목조 건축이 많죠. 매년 개보수를 할 전문가가 꽤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 정부는 2000년 이후부터 한옥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2010년 이후에는 한옥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요. 명맥이 끊기기 전에 한옥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내야 꾸준하게 우리 문화재를 가꿀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제 나이대뿐만 아니라 20대, 30대 젊은 층에 여자분들도 관심을 가지고 전통 목공을 하려고 하세요. 배우시는 분들 요청으로 토요일에 자격증반도 운영하고 있어요.”

덧붙이자면 2005년 강원도 양양 낙산사 전소를 계기로 문화재 복원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떴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조연환 산림청장은 ‘문화재 보수용 국산 목재 공급에 관한 협약’을 맺어 문화재 보수에 필요한 국산 목재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나아가 각종 재해와 환경파괴로부터 문화재와 산림을 보호하는 업무에 두 기관이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2005.7.14. 문화재청). 이후 2008년에 국보 1호 남대문마저 방화에 의해 전소됐을 때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다. 

이 씨의 말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전국적으로 소목 자격증 보유자는 207명이고 대목을 포함한 24개 종목은 1만 2천 명이 안 되는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에 이 씨도 4전 5기 끝에 문화재수리기능자자격증(소목수)을 취득했다.

“실력이 쌓이면 문화재 개보수할 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저도 소목과 관련해 자격증이 있으니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갈 수 있습니다. 소목도 따냈으니 이제는 대목수로 자격증을 따려고 신청했는데 이달 중 시험 치러 갑니다. 목수로서 정부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대단하잖아요(웃음). 올해 안 되면 내년에 또 도전할 거고요.”

이흥옥 씨가 만든 신사임당상. 나전에 염료를 착색하여 옻칠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사진 이흥옥 제공.
이흥옥 씨가 만든 신사임당상. 나전에 염료를 착색하여 옻칠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사진 이흥옥 제공.

‘가구재를 짜다’의 의미

이 씨의 얘기를 귀 기울여듣다 보니 위 내용에는 안 드러났지만 ‘집을 짓는다’가 아니라 ‘가구재를 짠다’라는 표현을 쓰기에 특이했다. 

“한옥에서 기둥이나 대들보 등 집을 이루는 것을 통칭해 가구재라고 합니다. ‘집 짓는다’가 아니고 ‘가구재를 짠다’는 표현을 써요. 모두 다 짜맞춤이잖아요. 집을 사면 집 자체를 가구로 보는 거에요. 집을 만들어가는 각 단계를 예술로 보면서 얘기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대목수들은 ‘오늘 뭐 했어?’라고 하면 ‘오늘 지붕 가구재 짰어’라고 표현합니다.”

주춧돌에서 서까래까지 한옥을 만들어가는 단순한 부분이 아니라 매 순간 완전함을 담아 내면서 만들어가는 집이 한옥이다. 먼 옛날 대가족을 이뤄 한집에 살면서도 적당한 거리 안에서 상생하는 사이좋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기본 단위가 한옥이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코앞에 닥친 대목수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매진하는 것과 함께 저를 가르쳐주신 심용식 선생(소목장 인간문화재)의 명맥을 이을 ‘이수자’가 되기 위한 ‘이수자 시험’도 겸한다고 했다.  혹시나 본인의 집을 한옥으로 지을 생각이 없냐고 물으니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서 못 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초반에는 제가 가고자 하는 분야에 대해 가족들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그랬던 거죠. 지금은 많이 응원해 줍니다. 훗날 고향 영월에 내려가 한옥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계획입니다.”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지금의 삶이 좋다는 이흥옥 전통 목공예가.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전통 목공의 소중함을 알아 가게 되기를 바란다”라며 밝게 웃었다. 

이흥옥 씨가 오래전에 만든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통 목공예 분야에서 해야할 일이 많다고 했다.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이흥옥 씨가 오래전에 만든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통 목공예 분야에서 해야할 일이 많다고 했다.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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