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가천대 명예총장, (사)현대미술관회 전 회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신(神)은 세세(細細)한 곳에 있다.”는 건축계의 거장 판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가 남긴 명구입니다. 그 간결한 메시지는 종종 “악마는 세세함에 있다.(Devil is in detail)”라며 단순하고 뻔해 보여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매사에 조심하라는 뜻으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이에 필자는 신라시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의 그 ‘굽혀진 발가락’, 바로 ‘보살님의 깨달음’을 오래전 6세기경 당시 신라 공방인(工房人)이 그의 조형물에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이라 보며 ‘역사는 세세한 그곳에 있다’라고 생각한 바 있습니다. (참조: 반가사유상, 그 ‘엄지발가락’, 데일리임펙트, 2021. 12. 29.)

또한 조선 시대 초상화에서도 필자는 조선 500년 넘게 올곧게 지켜 전해온 선비정신을 초상화에 그려진 다양하고도 미세한 피부병변에서 보았습니다. ‘역사는 세세한 곳에 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참조: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이성낙, 2018, 눌와)

그런 맥락에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Ⅰ.수저에 얽힌 한국과 일본의 ‘세세한 역사’

1970년대 초 독일 체류할 때 필자의 연구실에 몇 개월 머문 일본교수 내외를 집에 초청하여 식사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일본교수 내외는 밥상에 나란히 놓여 있는 은수저를 보고 놀라워하기도 하고,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질문이 오갔습니다.

문헌이나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수저를 사용하여왔다고 알고 있으며, 한국전쟁 때 피란길에서도 은수저나 놋쇠 수저를 사용하였던 것을 기억한다고 하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자, 일본 교수 내외는 몰랐다며 놀라워하였습니다.

그 후 자주 만나자, 어느 날 일본 교수가 실토하기를 자기 집에 독일 지인을 초청하여 일본 음식으로 대접했지만, 목제 젓가락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창피하다”라고까지 하는 것입니다. 숟가락이 없고 젓가락이 나무로 된 게 꺼림직했던 것입니다.

필자가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자, 젓가락이 아무리 옻칠로 깔끔하게 처리되었다지만, 금속처럼 끓는 물에 소독할 수 없어 마음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국물 음식이 담긴 그릇을 입에 가져다 ‘마시듯’ 먹는다는 게 서양 풍습과 거리가 있어서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일본인의 진지한 고민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나라현(奈良縣)에 있는 궁(宮) ‘유물 창고’인 소쇼인(正倉院, 정창원) 소속 연구원이 5년 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강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신라 시대의 촛불 가위가 어떤 용도인지를 모르다가, 한국 사찰에서 비슷한 도구로 촛불 끄는 것을 보고 깨쳤다면서, 통일신라 시대 일본 왕실이 신라에서 수입한 숟가락 묶음도 보여 주었습니다(2018.3.8). 반갑고 놀랍기도 하였습니다.

왼쪽은 백동전도(白銅剪刀, 일본 소쇼인 소장). 오른쪽은 경주 월지(月池, 안압지) 출토품.
왼쪽은 백동전도(白銅剪刀, 일본 소쇼인 소장). 오른쪽은 경주 월지(月池, 안압지) 출토품.
일본왕실이 신라에서 수입한 금속 숟가락(8세기 통일신라) 묶음(소쇼인 소장). 
일본왕실이 신라에서 수입한 금속 숟가락(8세기 통일신라) 묶음(소쇼인 소장). 

그러하다면, 금속 수저가 일본 식생활에서 왜 자리를 잡지 못하였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설에 의하면 일본 왕가에서는 전통적으로 금속 수저를 사용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II. 송 휘종의 문회도에 담긴 ‘세세한 역사’

중국 북송의 휘종(徽宗, 1082~1135)은 문화예술 중흥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로 꼽힙니다. 휘종이 남긴 문회도(文會圖)는 문인들이 모여 다회(茶會)를 즐기던 모습을 대형 화폭에 담은 작품입니다. 화폭에는 여러 문인이 큰 목상(木床)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담소하며 즐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다동(茶童)들이 부지런히 끓인 차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상(茶床) 위에 철제 수저, 즉 젓가락과 숟가락이 보입니다.

송 휘종의 '문회도'(1100~1125?). 184.4x123.9cm.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반상에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여 있다(아래 사진 빨간 원내).
송 휘종의 '문회도'(1100~1125?). 184.4x123.9cm.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반상에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여 있다(아래 사진 빨간 원내).

오래전 중국 식탁에서 금속 숟가락을 이용한 식문화의 흔적을 확인한 것입니다.

돌아보면, 중국에서도 ‘금속 숟가락’을 식생활에서 사용하였는데, 언제부터 금속 숟가락은 사라지고 근래 중국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둔탁한 사기(砂器) 재질의 숟가락으로 대치되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일본열도에서는 왕실과 서민 생활풍습 간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왕실에서는 금속 수저, 평민들은 나무젓가락만 사용했습니다. 엄격한 계급사회의 벽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는 금속 숟가락과 젓가락을 늘 사용하여왔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옵니다.

신은 세세한 곳에 있다지만, 마찬가지로 ‘역사는 세세한 곳에 있다.(History is in detail)’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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