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합계 출산율 0.78 쇼크가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인구 위기의 심각함을 호소하는 대통령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나고, 출산율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연금개혁 또한 물 건너간다는 심란한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여전히 20대 중후반 여성들 입장은 쿨하기만 하다. “출산율? 더 떨어져야 정부가 정신 차리고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을 겁니다.”, “출산문제는 글로벌하게 해결해야지요.”, “수능시험 같은 고통을 태어날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최근 기사를 보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MZ세대를 초청해 출산 걸림돌이 무엇인지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요즘 것들은 왜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 낳는지 모르겠다.”하고 끌탕하기보다, 출산 당사자들 의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음은 늦은 감은 있지만 일단은 환영한다.

한데 한국의 저출산 기조는 2004년 출산율 1.04를 기록하면서 저출산 대책 마련에 호들갑을 떨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 2,83이었던 합계출산율이 1985년 1.67, 1990년 1.59로 떨어졌다. 이미 출산율에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1980년대를 풍미하던 표어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고, 1990년대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였다.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만원”이라던 포스터도 생각난다. 88학번 제자들이 들려준 자신들 표어는 “가족계획은 이웃 집과 상의해서 두 집 건너 하나”였다고 했다.

‘0.78 저출산’, 반등은 희망사항일 뿐

한국에서 가족계획사업을 시작했을 때 서구의 인구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실패를 예측했다. 뿌리 깊고 강력한 아들 선호가 살아있는 한 단기간에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한국 엄마들이 누구인가. 전문가 의견을 보란 듯이 뒤집고, 1960년 6.2명을 넘나들던 고출산율을 2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대폭 떨어뜨리고, 대신 아들은 골라 낳았다. 1980년대 영남 지역의 셋째 자녀 성비는 아들이 딸의 3배를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출산/출생은 국가 입장에서는 인구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자녀요, 여성 입장에서는 모성을 의미하는데, 이들 3주체 간 이해관계가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가족계획사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와 가족, 그리고 여성(모성)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거꾸로 지난 20년 동안 저출산 정책이 먹히지 않았던 건, 국가가 아무리 인구 절벽의 위기를 외쳐도, 가족 입장에서는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 및 사교육비 부담 증가로 인해 출산의 유인책이 눈에 띄게 약화되었고, 여성 입장에서도 경력 단절 및 독박육아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초고령화 대책에 더 공들이길

이제 출산율 올리기는 간절한 희망사항임엔 틀림없지만 실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음을 직시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현 수준이라도 유지하려면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미국식 이민정책도 고려해보고, 유럽식 ‘출산과 가족의 분리 정책’도 살펴보고, 난임부부 및 미숙아 지원도 적극 도입할 일이다.

저출산 쇼크는 정책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어떤 위기에 직면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핫 이슈로 떠오른 연금개혁 또한, 천문학적 재원을 쏟아붓고도 꿈쩍하지 않던 출산율 반등(反騰) 프레임에 갇히는 한, 저출산 극복 정책과 동일한 실패의 길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연금을 처음 설계하던 당시 ‘적게 내고 많이 받아가는’ 방식을 도입한 데다, 평균 기대수명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출산율은 더욱 빠르게 감소하면서 인구 추계가 엇나간 결과 연금 고갈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했으니, 현실 여건에 맞추어 재설계하는 것이 순리 아니겠는지.

연금개혁은 프랑스 사례에서 생생히 목격하고 있듯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비인기 정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출산율 증가라는 비현실적 목표에 희망을 걸기보다는, 차라리 저출산 쇼크로 인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초고령화에 적극 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기도 하거니와 보다 현명하리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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