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오래전에 필자는 신부님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즉답 대신 “정의는 또 다른 정의에 의해 부정됩니다”라는 절묘한 답을 들었다. 최근 필자는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알게 된 후, 신부님의 답을 실감하였다. 즉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의 대안으로 등장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가 우리 사회를 더욱 평화스럽고 안전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가해자에게 적절한 처벌을 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후자는 가해자에게 벌을 주는 대신, 가해자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또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구하여 양자가 화해함으로써 피해자의 회복과 양자 관계의 복원을 통해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회복적 정의는 잘못된 행동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처벌과 통제가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들이 피해를 회복하고 깨진 관계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두는 정의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자 대안적 패러다임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나라가 응보적 정의를 바탕으로 사법체계가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응보적 정의는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가해자에 대한 처벌 위주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데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또 법과 원칙만을 따지기 때문에 가해자-피해자 간의 관계 회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재판을 통한 처벌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고, 법 적용을 둘러싼 재판은 대결적이고 소모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 처벌 대신 가해자가 스스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진정한 반성을 바탕으로 피해 회복은 물론 가해자-피해자 간의 관계 회복을 추구한다. 그리고 경찰이나 사법부 외에 공동체가 참여하여 피해자의 회복을 도와주고, 가해자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는 1970년대 캐나다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두 명의 고등학생이 술에 취해 마을에서 22곳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창문을 깨고 타이어를 찢는 등 각종 기물을 파손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법원 판사는 이들을 바로 처벌하는 대신 1개월 이내에 피해자들과 화해하고 합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보호관찰관의 도움을 받아 이들은 피해자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여 진정한 사과와 함께 합의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이 학생들은 봉사활동과 배상을 치른 후, 가정과 학교에 복귀하여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고, 피해자들도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그 후 여러 나라의 종교단체, 사법 종사자, 교육자들이 회복적 정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컨대 1989년 뉴질랜드 정부는 청소년 범죄의 사법처리 과정에 회복적 정의를 최초로 도입하였다. 또 2000년 이후 유엔은 회복적 정의를 권장하면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운영 핸드북(Handbook on Restorative Justice Program)’을 보급하고 있다. 특히 미국 천주교의 ‘동원 네트워크(Mobilizing Network)’는 회복적 정의의 시각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꾸준히 추진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중반 사회복지학의 교정복지 전공자들이 회복적 정의를 소개하였다. 그 후 천주교, 개신교,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사법과 학교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예컨대 서울가정법원이 소년부 화해제도를 도입하여 전국적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여러 교육청과 학교들이 학교폭력 해결 등을 위해 ‘회복적 학교생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응보적 정의에 기반한 현행 형사 사법체계 내에서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는 방안을 연구한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각종 범죄가 늘어나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연 처벌만으로 범죄를 방지하거나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특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더라도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앞으로 회복적 정의 운동을 확산시켜 우리나라가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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