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도시설계)
[데일리임팩트 관리자 ]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상징목이다. 흔히‘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고 하며 우리는 소나무사랑을 통해 우리가 존중하는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세한도(歲寒圖)(추사 김정희, 1844)에도 소나무가 중요한 상징매체로 등장한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논어, 자한 子罕).’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松]와 측백나무[柏]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는 뜻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변치 않는 의리를 보여준 제자를 칭찬하며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얼마 전 건축계 전문가들과 함께 오래된 성당을 답사하는 이탈리아여행을 다녀왔다. 목적과 일정이 분명하고 컴팩트한 여행이었다. 여행 후 자료와 사진 정리 등을 하고 나니 내 머릿속에는 성당 건물보다 오히려 소나무[松]와 사이프러스(Cypress, 측백(柏)나무의 한 종류)가 뚜렷이 남아 있게 되었다. 하려는 건축공부는 뒤로 숨고 무심히 스치며 본 나무들이 나의 대표적 이탈리아 이미지가 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의 소나무는 세 가지 모습으로 다가왔다. 먼저 길가나 공원 주택가 등 어디서나 자주 보이는 우산소나무(학명은 Pinus Pinea이나 성장한 모양이 우산을 닮아 umbrella pine이라고 흔히 부른다). 두 번째는 건물 부착 조형물, 기념품상점 등에서 만나는 솔방울이다. 세 번째는 특히 토스카나 지방에서(거의 이탈리아 어디서나) 교외에 나가면 흔히 보이는 연필 형태의 나무 사이프러스다(영어로 pencil pine tree로 부르기도 한다).
나무는 버스를 타고 여러 곳으로 움직이는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시간에 자연스레 스쳐 지나가는 경관의 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 내 광장의 거대한 성당보다 더 진하게 마음속에 새겨진 것을 생각하니 어떤 도시나 지역을 대표하는 이미지 요소로는 건물보다 오히려 나무들이 더 강력하고 호소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요즘 서울, 부산 등 여러 도시에서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도시상징 슬로건이나 이미지 등을 바꾸는 디자인 작업으로 분주하다. 자치단체장이 바뀌면서 겪는 홍역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정말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상징과 이미지를 아직도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공연히 잘 사용하지도 않을 슬로건이나 상징물을 억지로 만들어 낼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미 오랜 세월 익숙한 주변의 자연이나 역사에서 상징을 발굴해 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도시를 ‘상징’하려는 것이라면 중요한 비결은 ‘의미와 가치가 담긴 장소나 물건을 상징화’하고 이를 오랫동안 공유하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한때 남산과 소나무를 가지고 중구(中區)에서 시가지 이미지와 정체성을 만들려고 노력한 때가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장이 바뀐 후 흐지부지된 것 같아 아쉽다.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이나 외사산(外四山), 그리고 소나무 등 동식물은 매우 역사가 긴 요소로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어 엉뚱한 외래어 표현이나 대상물보다 쉽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새로운 해석과 의미 부여 등으로 현대의 감각에 맞도록 하는 과제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