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대학생 때 연합 MT, 동기 MT, 새내기 배움터까지 과 모임은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다. 사실 말이 모임이지 단체 술자리였고 나는 유독 그런 곳이 재미있었다. 물론 술을 잘 마셔서도 아니었고, 그 당시에는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자체를 즐겼다. MT 장소에 도착하면 덩치 큰 동기들은 녹색 병과 갈색 페트병이 든 박스를 가져오고, 요리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앞치마도 없이 학과 단체 티셔츠를 팔뚝까지 걷어붙인다. 나머지는 널찍한 공간에서 둥그렇게 앉아 옆 사람에게 젓가락과 잔을 착착 전달한다. 한창 성한 나이에 소시지 야채볶음이나 어묵탕 따위는 안주감으로 역부족이었지만 안주를 한 술 뜰 새도 없었다. 빈속을 술로 적시니 살짝 찌르르한 느낌이 들면서, 어느새 그곳은 소란스러워졌다.

“잔이 들어간다~ 쭉쭉. 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술자리 게임은 과 모임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때는 배스킨라빈스 31, 훈민정음, 공동묘지를 목이 쉴 때까지 목청껏 따라 외쳤다. 게임에서 걸린 사람은 벌칙 잔을 들었고, 나머지는 취한 기운에 잔뜩 흥분해서 어깨춤을 추면서 벌칙자를 향해 빨리 원 샷하고 다시 게임을 이어가라고 종용했다. 취할수록 어깨춤은 더 크게, 더 과격해졌다. 나만 안 걸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도 열심히 어깨춤을 들썩였다. 그 부담스러운 분위기는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술로 채워진 자리가 부담스러운 지금은 그때 그 어깨춤으로 단련된 덕분인지, 대중교통에서 나름 잘 쓰고 있다. 덩치가 작아도 단단한 어깨로 백 팩이나 인파에 치이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다. 집과 회사가 1시간 10분 떨어져 있어 콩나물시루 버스와 지옥철을 매일 이용 중이다. 한때는 1시간 50분 떨어진 학교의 장거리 통학생이었고 1시간 30분 거리의 회사원이었는데, 10년째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익숙해지기는커녕 하루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대중교통 안에서 뺏기고 있다.

예를 들면, 대중교통에서 경험한 것들로 인해 기분이 휩쓸릴 때가 있다. 기분 좋은 경험은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바로 올라탈 때와 사람들로 가득한데 내 앞에 앉을 자리가 생기는 순간이다. 사소하고 부정적인 순간들은 일일이 끄집어낸다면 자칫 뇌에 과부하가 걸릴지도 모르겠다. 거의 매일 겪고 있으니까.

교통지옥이 인생과 비슷한 건 스스로가 안정감을 찾는 타이밍이 꽤나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각각 물리적인 측면, 심리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고작 두 뼘 정도의 공간을 사수하려고 오늘도 소리 없이 치열하게 자리 전쟁 중이다. 반대로 안정감을 찾지 못하면 백 팩에 치이거나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밀려날 수 있다. 미꾸라지처럼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다른 사람에게 편안함을 뺏겨서 목적지까지 애매한 자세로 삐딱하게 가야 할 수 있다. 서로 밀치는 사람들끼리 으르렁거릴 때도 있는데, 서로 피곤한 처지이면서 이겨보려고 바득바득 안간힘을 쓴다.

언제까지 이렇게 어깨에 긴장감을 안고 대중교통 타야 하는지… 게다가 서울시는 우리들이 피곤한 사투를 벌이는 중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어색한 명예감을 심어준 적도 있다. 탄소 발자국과 에너지 절감을 실천에 동참하는 개념 있는 시민들이라는 점에서다. 나는 한 달 20일 통근 기준으로 약 47시간을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에서 보내는데, 36그루의 나무를 심은 것과 다름없는 환경 지킴이가 되었다(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의 탄소발자국 계산기 기준). 조금 과장하면 환경보호라는 대의를 위해 대중교통을 탄다고 하면 어깨싸움을 영예로운 행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명예를 가졌으면 그 무게감을 고스란히 지녀야 하는 것처럼, 또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서울의 하루 평균 대중교통 이용자 500여만 명(2021년 대중교통 이용현황 기준 이용 건수 참고)은 300~400원 교통비가 인상된다는 소식이 반가울 리 없다. 대학 시절에 MT에 참석하려면 1만5000원~3만5000원 정도 회비를 냈다.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간 친구도 있었을 거고, 새로운 선·후배를 만나는 기대감으로 기꺼이 지불했을 그 금액은 우리의 주머니 사정에 비하면 부담이 되는 액수였다. 어깨춤을 보자고 꺼냈던 돈은 아니었을 것이다.

로드무비의 주인공인 500여만 명의 서울 시민은 오늘도 콩나물시루 버스와 지옥철에서 겨우 두 발을 붙인다. 언제쯤이면 이동수단의 흔들림에 치여도 괜찮을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교통비 부담에서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모두가 고생하는 통근길이 조금이라도 편안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어깨춤을 춰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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