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도 모습도 젊다! 꽃중년 전성시대

시니어 모델들이 스페이드재이 신재이 대표(맨 오른쪽)의 지도로 워킹 연습을 하고 있다. 요즘 시니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가정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지 않고 나만의 삶을 꾸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시니어 모델들이 스페이드재이 신재이 대표(맨 오른쪽)의 지도로 워킹 연습을 하고 있다. 요즘 시니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가정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지 않고 나만의 삶을 꾸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객원기자] 

지금까지 OO세대라고 불렸던 이들은 주로 20, 30대 젊은 층이었다.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기도 하고 경제, 문화, 사회현상을 대변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베이비부머의 결정판인 1958년 개띠의 은퇴 시점을 전후로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산업이 주목받았고, 그들의 설 자리가 점점 확장됐다. ‘여생’이라는 말 대신 인생 2막, 후반생, 신중년, 꽃중년, 선배시민 등으로 달리 부르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담아 표현했다. 신세대만큼이나 사회를 구성하는 중추 역할로 시니어 또한 중요해졌다는 방증이다. 

시니어 트렌드, 현상이 나타나다

해마다 다양한 분야에서 새해를 전망하는 트렌드 서적이 발간된다. 올해에는 시니어와 관련된 키워드가 유독 눈에 띄었다. 바로 ‘네버랜드 신드롬’과 ‘리본 세대’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23’의 열 번째 키워드인 네버랜드신드롬은 피터팬처럼 젊은 모습을 유지하면서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개성 있게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말한다. 단지 일부의 취향이 아닌, 사회 전체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현실도피를 대변하는 ‘피터팬 신드롬’이 아니라 인생을 좀 더 가치있고 젊게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해석해 ‘네버랜드 신드롬’을 탄생시켰다. 

샌드박스네트워크 데이터랩의 ‘뉴미디어 트렌드 2023’에 나온 키워드 ‘리본 세대’ 또한 시니어에 초점을 맞춘 용어이다. 지난 몇 년간 소비 주체로 떠올랐던 MZ세대가 경기 위축으로 소비를 줄이며 자세를 낮추는 사이, 시간과 자산에서 훨씬 자유로운 시니어 세대가 그 자리를 메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뜻은 ‘네버랜드 신드롬’과 엇비슷하지만 오늘날의 시니어들은 "늙었다"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젊고 역동적이라는 점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로 ‘리본(Re-born)세대’라고 정의했다. 말하자면 뉴 시니어세대다.

리본세대라는 키워드는 2018년 6월에 이미 등장한 바 있다. 라이나전성기재단과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5060세대 설문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중년인 5060세대는 그동안 의무와 부담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으려는 욕구가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향후 다른 일을 시작할 의향을 내비친 시니어를 대표해 ‘리본(Re-Born)’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5년이 지난 이 시점에 트렌드 키워드로 재등장한 이유가 있다면? 그때의 전망이 코로나19로 제 기능을 못 하다가 최근 들어 눈에 띄는 현상으로 자리 잡아서가 아닐까 싶다. 

2023년 문화 현상을 전망한 책에는 시니어 문화에 대한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2023년 문화 현상을 전망한 책에는 시니어 문화에 대한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슬램덩크', 중년의 감성을 깨우다

그렇다면 시니어와 관련된 전망이 사회 전반에 얼마나 반영되고 있을까.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극장가로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 원작‧각본‧연출)’.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3월 8일 현재 39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슬램덩크 개봉 소식에 감격스럽다는 이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관람 후기도 속속 SNS에 실리고 있다. 눈물을 흘렸다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영화관 안에서 관람하다 옆에 앉은 모르는 사람과 하이 파이브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손뼉을 치며 환호하기에 옆을 보니 소녀의 눈빛을 한 중년 여성이다. 관람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니 10대 소녀가 “우리 엄마도 슬램덩크 알고 아빠도 너무 잘 안다”며 친구한테 설명 중이었다. 

최근 기사에서도 슬램덩크와 관련한 화제가 여럿 보였다. 슬램덩크 굿즈를 받기 위해 반차를 내고 극장에 온 관객이 있는가 하면, 문 닫을 뻔했던 부산의 한 식당에 슬램덩크 여파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재료가 빠르게 떨어져 영업을 조기 마감했다는 소식도 함께 들렸다. 이 집이 대박 난 이유는 영화의 등장인물과 연관이 있다. 정씨 성을 가진 식당 사장이 하는 대만요리점’이라는 뜻의 식당 이름이 ‘정대만’이었기 때문. 슬램덩크의 인기 바람이 부산의 한 식당을 살려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램덩크가 199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보니 자연스레 소비 중심층은 40대 초반에서 50대가 됐다. 네버랜드 신드롬이라는 말에 걸맞게 그때를 추억하고 소비하는 세대로서 2023년을 열었다.

올해 초 중년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며 극장가를 장악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포스터.
올해 초 중년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며 극장가를 장악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포스터.

나이를 알 수 없는 5060 

지난달 18일 서래마을 인근 카페에서 만난 시니어 모델 5명은 최근 모델 에이전시인 스페이드재이(대표 신재이)와 계약했다. 밀라노 컬렉션 등에 진출할 다양한 스타일을 가진 모델의 지원을 받았고 선발된 정예 맴버였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58세. 아이들 다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사회생활에서 은퇴하고 난 뒤 선택한 길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나이를 듣지 않았다면 좀 더 어리게도 봤을 듯싶다.

직업 군인 출신인 이연대(60) 씨와 대학에서 비올라를 전공했다는 최성연(54) 씨는 이날 에이전시 모델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KTX를 타고 왔다. 5명 중 연장자인 이동원(62) 씨는 모델 준비 경력이 꽤 된다. 동양화를 전공한 황선(59) 씨는 이번 모델 선발을 계기로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했다. 이들 중 가장 어린 이인하(54) 씨는 조금씩 얼굴을 알리고 있는 CF모델이라고 했다. 각자에게 맞는 운동으로 몸을 가꾸고 건강한 삶을 산다고 말했다.  

CF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인하 씨. 건강 관리를 위해 산에 자주 다닌다고 했다. 사진 훼라민Q 방송광고 캡처.
CF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인하 씨. 건강 관리를 위해 산에 자주 다닌다고 했다. 사진 훼라민Q 방송광고 캡처.

은퇴한 시니어들이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10년 전쯤부터 모델로서 런웨이를 걷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 못해봤던 꿈을 이루는 정도로만 비칠 뿐이었다. 시니어 모델이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개념도 크게 서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가 바뀐 계기는 2018년 혜성처럼 등장한 시니어 모델 김칠두(68)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 또한 데뷔 전 식당을 운영하던 평범한 아버지였다. 물론 젊은 시절 모델을 할 뻔한 사연도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해왔다. 전문 모델로 봤을 때 키가 상당히 크지는 않아도 비율과 카리스마 면에서 지금까지 봐온 시니어 모델과는 확연히 다르고, 지금도 여전히 모델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등장은 시니어 모델 혹은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할 수 있다. 

시니어 모델 김칠두의 등장은 시니어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서 모델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사진 김칠두 인스타그램 캡처
시니어 모델 김칠두의 등장은 시니어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서 모델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사진 김칠두 인스타그램 캡처

이번에 만난 시니어 모델들은 키는 물론 워킹에서도 가능성을 보일 정도였다. 이동원 씨의 경우 모델을 꾸준하게 준비해온 듯 나이와 상관 없이 건강미가 물씬 풍겼다. 이연대 씨와 최성연 씨는 에이젠시 교육뿐만 아니라, 영남이공대 모델테이너과에 입학해 3월부터 본격적인 전문 모델의 길에 들어섰다. 

예전에 인터뷰했던 시니어 배우 신강균(71) 씨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며 드라마와 단편영화 등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최근 긴 수염을 깎고 이미지 변신에 나섰으며, 자신이 쓴 대본, 시, 수필, 한글 서예를 담은 에세이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수도 없이 오디션에 떨어지고 또 떨어져도 자기를 찾아주는 곳이 있으니 연기 연습도 거르지 않는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의 시니어 세대만 해도 모델이건 배우건 취미라는 경계 안에서 활동했지만, 최근 진지하게 도전하는 시니어가 늘자 공급자도 새롭게 이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페이드재이 신재이 대표는 “시니어 모델은 포즈나 워킹 등에서 젊은이보다 몸이 느리고 배우는 것이 그리 빠르지 않아 5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델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 취미인 시니어도 있겠지만, 파리나 밀라노 컬렉션에도 나갈 분을 찾기 위해 고심 끝에 시니어모델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특히 “외국은 시니어모델 구분없이 남녀 모델로만 구분한다”며 “젊은 친구들과 똑같은 과정으로 수업하고 또 그에 맞게 존중하며 모델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이공대 모델테이너과 안경미 교수는 학과를 개설하면서 시니어에게도 학습 기회를 준 이유에 대해 “50대 넘어서면 엄마 혹은 아내로서 역할이 줄어들어 자신감도 떨어지고, 할 일이 없어진다”며 “엄마 혹은 아빠가 아닌 ‘나’라는 존재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로 모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스스로를 위한 삶을 다시 살 기회”라며 “시니어를 포함한 모두가 교육을 통해 100세 시대를 자신감 있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광고회사 임원과 광고홍보학과 교수를 지낸 시니어 배우 신강균 씨는 최근 긴 수염을 깎고 이미지 변신을 선언했다. 사진 신강균 페이스북 캡처
광고회사 임원과 광고홍보학과 교수를 지낸 시니어 배우 신강균 씨는 최근 긴 수염을 깎고 이미지 변신을 선언했다. 사진 신강균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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