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영국과 EU가 북아일랜드 관련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를 도출하고 양자 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런던 인근의 윈저에서 영국의 EU 탈퇴 협정 부속 북아일랜드 의정서(Northern Ireland Protocol) 이행을 둘러싼 양자 간 분쟁을 해결하는 이른바 '윈저 프레임워크(Windsor Framework)'를 발표했다. 윈저는 유서깊은 윈저성의 소재지로 영국 왕가의 명칭이 이 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영국 국가 원수인 찰스 3세는 윈저를 방문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을 접견했다. 국왕의 정치 개입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상징성이 큰 제스처였다.

       취임 4개월 만에 EU와 새 합의 이뤄

북아일랜드는 2020년 단행된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영토이면서도 EU 단일 시장으로 남는 독특한 지위를 갖게 됐다. 이는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공화국 간의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를 적용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를 피하고 평화를 담보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나 2021년 북아일랜드 의정서가 발효하면서 영국과 북아일랜드 간 이동하는 모든 상품에 대해 적용되는 검역·통관 절차를 둘러싸고 북아일랜드 연방주의자들이 영국과의 사이에 사실상 무역 장벽이 생기는 것이라고 항의하며 동요했다. 이는 영국과 EU 간의 새로운 외교 문제로 비화했으며 북아일랜드에선 연방주의자들이 연정을 거부해 정치가 불안정해졌다. 이에 아일랜드섬에 평화를 가져온 벨파스트 평화협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커지고 미국에서도 경고음이 나왔다

이번에 합의된 윈저 프레임워크의 핵심은 영국 본섬에서 북아일랜드에 반입되는 상품 가운데 북아일랜드에서 소비되며 아일랜드에 수출되지 않는 상품에 대해 이른바 '그린 레인(Green lane)'을 통해 통관검사를 생략하는 것이다.

반면, 영국 본섬에서 북아일랜드에 반입되는 상품 가운데 아일랜드로 수출되는 상품은 이른바 '레드 레인(Red lane)'을 통해 통관검사를 실시한다.

이번 합의에 대한 정치권의 반대는 우려했던 것보다 적은 편이다. 영향력 있는 브렉시트 강경론자들도 지지하는가 하면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도 일단 판단을 유보하고 합의문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합의가 ‘수낵 총리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작년 10월 45일 만에 사임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에 이어 전격 등장한 수낵 총리는 북아일랜드 문제 해결에 성공하면 영국 정치를 지배하던 브렉시트의 망령을 극복하고 다음 총선을 향해 당을 끌어갈 동력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합의로 영국과 미국 간의 불편한 현안이 해결되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수낵 총리에게 브렉시트 난국 타개안을 EU와 협상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은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 25주년을 맞아 런던과 벨파스트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1998년 부활절 이틀 전인 4월 10일에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체결된 이 협정은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북아일랜드의 8개 정파가 참여한 평화 협정이다. 이 협정 타결로 30여 년간 이어진 신ㆍ구교계 간의 유혈 분쟁이 일단락됐다.

‘윈저 프레임워크’는 EU가 북아일랜드 의회 소재지 이름을 차용한 이른바 ‘스토먼트 브레이크’(Stormont brake)를 허용해 새롭게 도입되는 EU 법이 북아일랜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북아일랜드 의회가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배려가 가능했던 것은 브렉시트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던 보리스 존슨이나 리즈 트러스 전 총리들과 달리 영국과 EU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수낵 총리의 진정성을 EU측이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또 브렉시트를 둘러싼 끊임없는 논란에 대한 영국 국민의 ‘피로감’(‘Brexit fatigue’)도 이번 합의에 한몫했다. 최근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가 2016년 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실수’(mistake)였다고 답했다.

     북아일랜드 무역장벽 해소에 진일보

‘윈저 프레임워크’를 공동 발표하면서 수낵 총리는 EU와 영국은 과거의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보여주었듯이 ‘동맹이고 무역파트너이며 친구’라고 강조했다. 한편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제 북아일랜드에서도 영국 본섬에서와 같은 식품과 의약품이 동시에 같은 조건으로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번 합의를 대체로 극찬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사설에서 이번 브렉시트 합의는 ‘영국이 기대할 수 있는 최상'(‘The new Brexit deal is the best Britain can expect.’)이라며 보수당과 북아일랜드의 DUP는 이를 지지하라고 촉구했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도 ‘브렉시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제하 사설에서 이번 합의는 수낵 총리의 ‘대담한 승부수’로 영국과 EU가 양자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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