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일 먹글씨연구소 대표 인터뷰

황성일먹글씨연구소에서 만난 캘리그래피 작가 황성일 씨.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황성일먹글씨연구소에서 만난 캘리그라피 작가 황성일 씨.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객원기자] 천장이 제법 높고 긴 탁자가 놓인 캘리그라피 작가 황성일(57) 씨의 공간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황성일먹글씨연구소’라는 이름 때문인지 종이와 가구 곳곳에 스몄을 묵향을 기대했지만, 현대 감성과 세련된 향취가 풍긴다.

“어릴 때, 요즘으로 말하면 산업디자인이 하고 싶었나 봐요. 옛날 제 스케치북을 보니까 나이키나 프로스펙스 등을 그려놨더라고요. 관심은 많았는데 1남3녀다 보니 어른들이 남자는 예술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딸 셋은 피아노를 배웠는데, 저는 한 번도 못 쳐봤네요.”

찻잔과 마주한 황 씨의 얼굴에서 ‘평안’이 느껴진다. 좋아하는 뭔가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서예를 좋아했던 소년은 오십을 훌쩍 넘겨 붓과 펜을 손에 다시 쥐었다. 그의 직함은 어느샌가 먹글씨작가, 즉 캘리그라피 작가가 됐다. 

“서예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했고 중학교 때 서예로 서울시교육감상을 받아 세종문화회관 개관(1978년) 쯤에 전시회도 했었죠. 그런데 그 당시 서예 선생님이 전공할 거 아니면 그만하라고 하셔서 고1 때까지 하고 말았어요.”

서예를 완전히 접고 누구나 할 법한 생활을 했다. 나름 치열하게 공부했고, 첫 직장이었던 항공사를 시작으로 보험회사 영업도 해봤다. “푸르덴셜에 있다가 경력직으로 교보생명에 스카우트되어 갔습니다. 영업 관련 교육을 담당했는데, 결과적으로 ESG(지속가능 경영) 분야에 있다가 퇴직했어요. 퇴직을 결심한 건 2년 전입니다. 60세로 정년이 늘었지만, 그때까지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60말고 55에 신나게 퇴직해 나를 찾다

60세까지 다녀도 되겠지만 그때 회사를 나오면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마침 55세 때 돈을 받으면서 나가는 제도가 생겨서 퇴사했습니다. 5년 더 다니면 경제적으로 유리하겠지만 은퇴 준비가 안 되죠. 50세쯤부터 생각하다가 52, 3세 때쯤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서예를 다시 하되 캘리그라피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회사 밖을 나가면 남들하고 다른 글씨를 써보고 싶었어요.”

황 씨는 캘리그라피에 좀 더 진지하게 다가가기 위해 우리나라 캘리그라피 분야에서 손꼽히는 강병인 선생을 찾아가 사사하고, 캘리그라피에 입문했다.

“회사 다닐 때라 토요일은 하루 종일 선생님께 가서 수업받고, 평일 저녁과 일요일에는 숙제했습니다.”

주말 없이 2년 정도를 쓰고 또 썼더니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캘리그라피는 서예하고는 또 다른 신세계라 무진장 썼어요. 이것저것 되는 대로 다 썼습니다. 벌써 작년에 쓴 것과 차이가 나요. 지금은 성장기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그러고 싶고요.”

사실 그가 예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것은 외국에서 봤던 노포의 간판 혹은 일본에서 소소하게 볼 수 있는 양념통에 작게 보이는 글씨였다.

“거기에 글씨가 쓰여 있잖아요. 일본에서는 뭔가 비싸다 싶으면 손으로 쓴 글씨가 적혀 있어요. 우리나라도 분명히 그렇게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1970~80년대만 해도 인쇄체를 썼는데 요즘은 손글씨가 특히 많습니다. 음식점 간판만 봐도 그 집이 맛있을지 없을지 알잖아요.”

한 벽면에는 고민이 담긴 그의 캘리그라피 작품들이 걸려 있다. 반대쪽 진열장에는 황 씨가 직접 써서 작업한 상품들이 전시돼 있다. 

“멸치 겉봉에 쓴 글씨는 다 제가 쓴 겁니다. 근데 국외에서 판매되는 제품입니다. 지인들이 해외에 나갔다가 사진 찍어서 보내주세요. 한국마켓 갔더니 있더라면서요.”

펜을 잡고 있는 모습에서 즐거움이 느껴진다. 어릴 적 좋아하던 서예 대신 캘리그라피 분야에 도전해 열심히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펜을 잡고 있는 모습에서 즐거움이 느껴진다. 어릴 적 좋아하던 서예 대신 캘리그라피 분야에 도전해 열심히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황 씨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그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유심히 관찰하는 이들이다. 회사를 관둘 시기가 됐을 때, 가고 싶은 길에 대한 가능성도 SNS를 통해 감지했다.

“페이스북을 한 10여 년 정도 하니까 ‘이 사람은 이거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알면서 연락하세요. 회사에서 나오기 전부터 한두 가지씩 의뢰받았어요. 이제 회사를 나가도 될 것 같다는 자신감도 올라갔죠. 회사 그만두고 1년을 집에서 쓰다가 작년에 '그러면 이제 정식으로 해봐야겠다' 싶어서 연구소를 만들어 나왔습니다.”

캘리그라피 작가의 삶을 선언하고 나서 다양한 의뢰인을 만났다.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감사의 마음이 생길 만큼 자신감을 높여주는 이도 있었다.

SNS로 만나게 되는 고마운 인연

“최근에 시골에 밭을 샀는데 정원 이름을 만들고 싶다는 분이 페이스북으로 연락주셨습니다. 모르는 분이었고 작품 가격을 말씀드렸는데, 그만큼은 준비가 안 됐다고 하셨어요. 밭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고 하시니 비싸게 받을 수도 없고, 너무 가격을 낮추기도 그래서 얼마를 원하시냐고 물어봤는데 그분 답변이 너무 멋있었어요.”

그 의뢰인은 “현재 제 부족한 걸 가지고 선생님의 작품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준비되는 대로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황 씨 또한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그냥 드릴까 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 정도로 생각해주시는 분이라면 드릴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저에게 작품 의뢰하는 분들을 위해 일정한 가격표가 있지만 공개는 하지 않아요.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기업 혹은 상품의 로고 등이 인기를 끌면 자연스레 누가 만들었고, 가격은 얼마였다고 공개되기도 하지만 늘 조심스러운 부분이 돈에 관한 거다.

“똑같은 글씨를 쓰고 어디는 많이, 어디는 적게 받는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거든요. 그래서 나름 가격표라는 게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도 좋은 일에 쓰인다면 무료 작업도 했었죠. 어떤 경우는 받은 작품비를 재단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황 씨가 생각하는 서예와 캘리그라피의 다른 점이 궁금했다. 붓을 이용하고 글씨를 쓰는 행위가 같은데 말이다. 

“정의된 건 없어요. 캘리그라피를 인터넷 영어 번역기로 번역하면 ‘서예’라고 나옵니다. 인공지능 기술로 최근 떠오르는 챗GPT에도 물어봤어요. 스틱, 붓이나 펜 등 다양한 재료로 쓴 예쁜 글씨라고 좀 폭넓게 해석했어요. 광의적 의미는 저 또한 생각이 다르지 않지만 협의적으로 생각하면 서예에 디자인 요소가 담겨야 하는데 상업적 디자인이 좀 들어간 게 캘리그라피가 아닌가 싶어요. 평보(平步) 서희환(徐喜煥, 1934~1995) 선생이 서화동원(書畫同原, 서예와 그림의 근원은 같다)이라고 하셨어요. 저도 그렇게 캘리그래피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황 씨는 자신만의 작품을 빚어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뜻하는 글귀를 얻으려 꾸준하게 책도 읽고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글귀들이 떠오를 때마다 차곡차곡 담아놓는다.

어떤 문구를 작품 안에 녹여낼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황성일 씨 SNS 캡처
어떤 문구를 작품 안에 녹여낼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황성일 씨 SNS 캡처

“내 글을 쓰면 마음이 편해요. 제가 썼던 것 중에 ‘마음 담은 글씨는 마음을 닮습니다’도 있고요, 특히 ‘친구라서 가까운 게 아니고 오래도록 가까워서 친구다’라는 문구는 제 또래 사람들이 굉장히 공감합니다. 글씨를 쓸 때 남의 글씨나 글을 베껴쓰는 건 쉽지만,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아요.” 

앞으로 캘리그래피를 통해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먹글씨연구소에서도 강의를 하지만, 외국인 학생에게도 멋지게 글씨 쓰는 방법을 알리고 싶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은 많은데 한글을 한국인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돈도 많이 안 받으려고요. 언젠가 글씨를 아주 잘 쓰게 되어서, 누구에게서 배웠냐고 했을 때 나한테서 배웠다고 말해라. 저는 그거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양념을 시리즈로 써보고 싶습니다. 간장, 된장 아니면 참기름, 들기름 이런 것들요. 저는 왜 그렇게 양념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어요(웃음).”

현재 캘리그라피 작가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는 황성일 씨지만 현업에 있을 때도 또 다른 전문성으로 인정받아왔다. 그런데도 그 시간은 멀리 사라지고 소년에서 현재 모습으로 점프한 것만 같다.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돌고돌아 어른들이 막았던 그 길에서 멋지게 인생 한 획을 긋고 있다고 말이다. 

황 작가는 한글을 아주 잘 쓰는 외국인 학생을 배출하고 싶어 한다.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황 씨는 한글을 아주 잘 쓰는 외국인 학생을 배출하고 싶어 한다. 사진 구혜정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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