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훈 논설위원, KBSI 분석과학 마이스터

이석훈 논설위원
이석훈 논설위원

술 한잔한 다음 날 북어국 한 그릇이 밥상 위에 놓여 있으면 세상 행복하고,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세상 평화가 몸속에 있음을 애주가들이라면 흔히 경험하는 일상이다. 명태(明太)는 지방이 적고 아미노산이 많아 개운하고 시원한 맛에 속풀이 숙취 해소엔 그만이다. 부드러운 식감에 감칠맛이 일품인 생태탕, 쫄깃쫄깃한 살을 두툼하게 떼어먹는 코다리조림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러나 요즘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명태의 원산지는 러시아나 일본 등 외국산으로 표기되어 있어 왠지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다. 일본산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오염수 방류에 따른 방사성 오염이 걱정되고, 러시아산은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아 생물을 선뜻 선택하기가 주저된다.

예로부터 명태는 제사, 고사, 전통혼례 등 관혼상제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품에서부터 “북어 한 마리 주고 제상 엎는다.”(보잘것없는 것을 주고 큰 손해를 입힌다)라는 속담에 등장할 정도로 가장 흔한 한반도의 국민 생선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소비량이 가장 많은 생선이 명태다. 연간 30만 톤 내외가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명칭이나 별칭도 다양하다. 명태만큼 이름이 다양한 생선도 없을 것이다. 상태에 따라 생태, 선태, 동태, 북어, 황태, 코다리, 노가리 등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이름이고, 건조했을 때의 색이나 모양에 따라 백태, 흑태, 낙태, 무두태, 통태, 깡태, 파태, 먹태, 짝태로 불리고, 잡는 시기에 따른 일태, 이태, 삼태, 오태, 춘태, 막물태, 섣달받이, 동지받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동해 연안에서 연중 잡히는 생선임을 나타낸다. 그 외에도 잡는 방법, 잡힌 장소, 습성에 따라서도 다양한 명칭이 있다. 그만큼 많이 잡혔고, 그에 따라 다양한 요리법으로 즐겨왔다는 얘기이다.

1990년대 이후 동해안 명태 어획량은 처참할 정도로 줄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1943년 명태 어획량은 21만 톤으로 국내 전체 어획량의 28%를 차지했다. 1950년대 2만4천 톤, 1960년대 1만7천 톤이었으나 1970년대 7만 톤, 1980년대 7만4천 톤으로 치솟았다. 1981년엔 해방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0만 톤을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6천 톤, 2000년대엔 100 톤 이하, 2007년 이후엔 1톤 이하로 급감했다. 심지어 2014년엔 300여 마리만 잡혔다. 인공 수정과 부화를 위해 살아있는 명태에 50만 원, 죽은 명태에 5만 원의 보상금을 걸었음에도 이 정도밖에 안 잡혔다는 것은 동해 연·근해에서 명태가 사라졌음이다.

그렇게 흔했던 명태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의문은 수십 년째 이어졌고, 정부는 이유 중 하나로 노가리의 남획이라고 판단했다. 노가리는 길이 27㎝ 이하의 미성숙한 어린 명태다. 1963년 ‘수산자원보호령’으로 금지했던 노가리잡이를 1970년 전면 허용했다. 노가리잡이가 허용된 1970~1995년에 전체 명태 어획량(무게)의 68%, 어획 마릿수의 91%가 노가리였다고 한다. 심지어 1976년엔 전체 명태 어획량의 91.9%가 노가리였을 만큼 씨를 말렸다. 1980~90년대 맥줏집의 대표적인 안주가 노가리였을 정도다.

1992년 명태 어획량이 1만 톤 이하로 떨어지자, 정부는 1996년 10㎝ 이하, 2003년엔 15㎝ 이하, 2006년 27㎝ 이하의 명태를 잡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2007년부터 명태는 사실상 동해에서 자취를 감췄고, 국내 수요를 맞추기 위해 명태잡이는 원양어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흔해서 가격이 저렴했던 명태의 가격이 오르는 결과를 낳았고, 정부는 다른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치어 방류사업이다. 과거 크게 줄어들었다가 정부와 어민들의 노력으로 되살려낸 대구나 청어, 홍어, 참조기 등이 좋은 사례가 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2014년부터 매년 인공 수정을 통해 부화한 치어 수백만 마리를 동해에 방류해왔지만, 여전히 명태는 동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과학적 자료 없이 추진된 정부 정책의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명태는 대구목 대구과에 속하는 한류성 어종으로 수온이 1~10℃인 찬 바다에서 서식하는 바닷물고기이지만 연령에 따라 서식 장소가 다소 다르다. 성어는 수온이 10℃ 내외의 대륙사면에서 서식하나, 치어는 더 낮은 온도인 1~6℃의 연안 수면에 떠다니며 서식하는 등 수온에 민감한 어종이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명태가 사라진 원인으로 기후 변화 등의 가능성이 제시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자료가 부족했다.

최근 국내 연구진(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조양기 교수 연구팀)이 인공위성 관측자료와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명태가 사라진 시기의 해류와 수온 변화를 과학적으로 재현하여 기후 변화에 의해 동해안이 명태 산란과 유생(幼生) 정착에 불리한 환경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처음 밝혀(Frontiers in Marine Sciences 2022년 4월호) 주목받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들어 명태 산란지역의 해수면 온도가 약 2℃ 상승하였고, 주요 산란지였던 원산만 인근까지 수온이 올라 산란지가 더 북쪽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동해안의 산란 적지가 크게 감소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동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따뜻한 해류인 ‘동한난류’가 강해지면서 연안으로 유입되는 명태 유생 수가 줄고, 오히려 먼바다 쪽으로 내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입자 추적 모델을 통해 분석한 결과 1980년대 후반 산란지에서 동해안 서식지로 이동한 유생 수는 74% 감소하였다. 또한 북쪽으로 흐르는 동한난류의 강화로 인해 남부 지역으로 이동된 명태 유생 개체 수의 급격한 감소와 수온 상승을 우리나라 동해안 명태 감소의 원인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해양환경 변화는 1980년대 후반의 급격한 기후 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약해진 몬순으로 겨울철 기온 상승과 북서풍 약화는 과거처럼 동한난류의 북상을 저지하지 못하여 명태의 산란 및 어장 해역의 온난화가 가속화되었음을 밝혀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한 기후 변화는 우리네 밥상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2019년부터 명태 조업이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지금도 여전히 생선 소비 1위는 명태다. 결국 수입과 원양어업을 통해 명태를 조달해야 하는데, 현재 명태의 원양어업은 대부분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이뤄지며, 할당량(쿼터)의 제한을 받는다. 이 때문에 한때 30만 톤을 넘었던 원양 명태 어획량은 현재 4만 톤 정도에 그치고 있어 소비되는 명태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제 명태를 편하게 즐기기엔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스럽고, 노가리는 잡아서도 안 되고 먹어서도 안 되기에 아구포나 대구포로 대체할 수 있지만, 동해안에서 잡은 생태로 끓인 생태탕의 부드러운 살맛은 영영 즐길 수 없게 되었다. 기후 변화와 더불어 한반도에서 명태의 명성은 전설로 남을 것이기에 안타까움이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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