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삐삐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연상되나요? 이 질문에 무선 호출기라 응답하면 구세대, 가수 아이유의 노래라 응답하면 낀세대, “삐삐가 뭔가요?”라고 되물으면 신세대란다.

초등학생 시절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던 이들이 대학생이 되었다. 입시 관문을 뚫었다는 기쁨도 잠시, 캠퍼스의 낭만 대신 무수한 시행착오와 빈번한 좌절이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오디세이세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10년이라는 오랜 세월 형언하기 어려운 고생을 한 후에야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갔듯이, 오늘의 대학생들은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발바닥에 불나듯 뛰어다녀야 겨우 성인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들의 부모 세대만 해도 성인이 되는 길은 그토록 멀고 험하진 않았다. 졸업→취업→결혼→출산이라는 일련의 패키지를 완수하면 자연스럽게 성인으로 인정받았다. 서구에서도 부모로부터 독립→졸업→취업→결혼이라는 표준화된 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25~34세 중 성인기 진입 과정을 모두 마친 비율이 1960년에는 75%가 넘었던 반면, 2010년에는 30%대로 격감했다.

이제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모두가 지나가야 하는 길이 있다는 생각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누구나 똑같은 길을 가는 것도 아니거니와, 주변에 무수히 많은 갈래길이 생기고 있는 중이다. 이를 두고 사회학자들은 ‘생애주기의 탈(脫)표준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예전에는 결혼을 해야 어른 대접을 받았고, 자식을 품에 안아 봐야 어른이라 했던 반면, 요즘은 성인의 자격으로 결혼 대신 경제적 독립을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25~29세 남녀를 대상으로 ‘초기 성인기 생애주기 과업’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 과업으로는 대학입시, 연애(연인과의 이별), 첫 성경험, 취업 준비, 첫 직장이 제시되었다. 이들 과업을 수행하는 동안 얼마나 스트레스를 느꼈는지, 100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스트레스 점수는 여성이 남성보다 높게 나타났지만, 남녀 모두 1순위로 지목한 것은 취업 준비였고 스트레스 점수도 다른 과업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다음 순위는 남녀 간에 다소 차이가 있어 남성은 대학입시, 연애, 첫 직장, 첫 성경험 순으로 나타난 반면, 여성은 첫 직장, 대학입시, 연애, 첫 성경험 순으로 밝혀졌다.

생애주기 연구에서 20대는 인생의 주요한 밑그림이 그려진다는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꼽힌다. 여기에 고등교육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대학입학 후 8주!”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해졌다. 물론 이 주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생들의 적성을 고려하여 체계적인 진로교육을 실시하는 유럽식 교육제도를 전제로 한 주장이다. 진로교육은 ‘무늬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내신 등급과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우리네 상황을 고려하자면, “20대 전반!”으로 연장함이 마땅할 것 같다.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직업 사회화’ 과정은 평균 10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적성보다는 배치표에 따라 대학 문을 들어선 우리의 오디세이세대는 진로 탐색과 시행착오의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이 분명하다.

부모 세대는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그런대로 취업문이 넓었던 시절 직장을 잡았던 행운의 세대였지만, 직장의 의미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사실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오디세이세대는 좁디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하는 불운의 세대이지만, 기왕이면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고 싶은 직장’을 원한다. 이들에게 직업은 월급봉투 이상의 의미를 갖는 만큼, 업무를 수행하면서 성장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길 원한다.

도대체 그런 직장이 어디 있느냐고, 제발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기성세대의 조언은 한 귀로 흘려버리고, 10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이 진정 원하는 자리에 당당히 닻을 내릴 수 있는 주인공이 되길 응원한다. 오디세이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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