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지난달 24일로 러시아-우크라이나(러·우)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미국과 나토의 지원 아래 결사 항전한 결과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다. 3~4개월 만에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려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당초 야욕은 실패로 끝났다. 자유 우방국들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일치단결된 모습에 찬사를 보냈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병사와 민간인이 1만 명 이상 사망하고, 100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난민 신세가 되었고, 국토는 황폐화되었다. 전쟁터가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우크라이나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잘 싸운다고 칭찬만 할 것이 아니라 전쟁을 종결시키도록 설득해 나가야 한다.

일부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지금 전쟁 종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는 것에 반대한다. 푸틴을 응징하지 않으면 침략의 혜택을 용인함으로써 나쁜 전례를 남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굳은 항전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유 우방국들이 일치단결하여 자유민주주의의 힘을 과시해야 권위주의 세력이 창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정전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규범적인 차원에서는 침략을 통한 혜택을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푸틴 정권을 굴복시켜야 하는데,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지가 걱정이다. 그리고 엄청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가 절대적인 승리를 쟁취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전쟁을 하루 빨리 종식시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보다 더 큰 가치가 아닐까?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 의지와 서방의 지원을 전후 복구에 쏟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전쟁 중단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자는 목소리를 내기는 매우 어렵다. 양국이 자존심, 정체성, 정권, 영토를 둘러싼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물러설 수 없다. 한국전쟁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오랫동안 정전을 반대한 것을 상기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게 전쟁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또 국제사회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정전 협상에 나서도록 중재를 해야 한다. 미국이나 나토는 간접적인 전쟁 당사국이 되어 중재에 나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이나 인도가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인해 중립적인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예컨대 인도는 이번 전쟁 이후 러시아의 석유를 30% 이상 값싸게 수입하고 있어서 경제적 이득만을 챙기고 있다.

결국 유엔이 나서야 하는데, 이번 사태와 관련, 유엔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안타깝다. 지난달 23일에는 유엔이 긴급 특별총회를 열고 “러시아군의 즉각적인 전면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강제력은 없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즉각적인 대화”를 요구하는 평화계획을 발표했으나 미국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평화계획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하였다. 더구나 유엔 안보리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별도로 거행할 정도로 러·중 진영과 미국을 비롯한 나토진영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러·우 전쟁의 종결을 강력히 제창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전쟁의 처참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러·우전쟁의 종결을 호소할 때 울림이 클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정전 협상 경험을 수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쟁의 원인, 진행양상 등에 있어서 러·우전쟁과 한국전쟁 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만 후자의 정전 협상 방식이 전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정전을 위한 영토 재획정 방식에 있어서 교전선(交戰線) 원리를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전쟁 이전상태인 38선을 영토 재획정의 기준으로 삼기 어려웠던 것처럼 러·우전쟁에서도 전쟁 이전상태로 되돌아가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전쟁을 계속함으로써 더 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우가 영토 재획정에서 과감히 양보하도록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영토보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희생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또 한국의 정전체제에서 알 수 있듯이 러·우 간의 정전 합의가 실효를 거두려면 이를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러·우의 경우 민스크협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협정의 실효를 보장하는 장치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무력 분쟁의 발생이나 확산을 억제함으로써 정전체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였다.

그런데 미국이나 나토는 전쟁의 간접적인 당사자가 되어서 이런 역할을 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한국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등 여러 나라가 유엔평화유지군을 만들어 러·우 정전체제에서 새로운 무력 분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에 비참한 전쟁을 경험한 한국이 러·우전쟁의 종결에 기여함으로써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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