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3월 초에는 24절기 중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경칩’이 자리 잡고 있다. 2월 초의 입춘이 봄에 들어선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한 달쯤 뒤인 경칩(올해는 3월 6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즈음에는 흔히 “만물이 소생한다”라고 얘기하게 된다.

지난해 가을 어떤 식물은 종자 또는 포자라는 후손만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였고, 어떤 식물은 몸통과 생장점만을 남기고 최소한으로 몸집을 줄여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을 준비를 하였다.

이 겨울 동안 얼마나 많은 종자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있는 실험 결과를 당귀나 고본 같은 약용 식물을 대상으로 한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연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험에서 우량한 종자를 채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채종 지역의 해발고도에 따라 겨울을 지난 후 생존율이 약 40~80%로 다양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적게는 20%부터 많게는 60% 이상의 종자가 겨울 동안 생명을 잃은 것이다. 이것은 실험적 환경에서의 결과이니 자연환경에서의 생존율은 훨씬 더 낮을 것이 분명하다.

종자가 식물의 ‘아이’와 같은 것이니, 만일 사람의 아이가 10명 중 4명만 살아남는다고 하면 엄청나게 끔찍한 상황인 것이 분명하다. 그만큼 겨울은 모든 생명체에게 혹독한 계절이다.

늘 굳건하게 사는 것 같은 나무에서도 겨울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계절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겨울 동안 많은 가지가 말라 죽고 떨어지는 것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한 경우 나무 자체가 동해를 받아 죽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지중해 지역에서 참나무 종류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부피 기준으로 볼 때 1년간 자란 나뭇가지의 40% 정도가 겨울 동안 죽는다고 한다. 연구에서는 춥고 건조한 겨울에 그 비율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꼭 이런 연구 결과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겨울이 많은 생명체에게는 생존을 좌우하는 아주 위험한 고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겨울이 혹독하고 길어질수록 생명체의 생존율은 더욱더 낮아질 것이고, 겨울을 대비해서 충분한 에너지를 몸속에 저장하지 못하는 취약한 생명체들의 생존율은 더욱더 낮아질 것이다.

식물들에게 위기의 계절은 겨울만이 아니다. 여름 또한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다. 오랫동안 비가 오거나, 너무 덥거나, 자주 강한 비바람이 몰아쳐서 식물들을 살기 어렵게 한다. 겨울 못지않게 식물들에게 위험한 계절이 여름이다. 어찌 보면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맞이하는 겨울에 비해서, 식물들에게는 변화가 심해 예측하고 대비하기가 어려운 여름이 더 혹독할 수도 있다. 가을도 식물들에게 그다지 여유가 있는 계절이 아니다. 곧이어 닥쳐올 겨울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봄이야말로 식물들에게는 구원의 계절이 아닐 수 없다. 혹독한 겨울 동안 겨우 살아남아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남은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또다시 어려움이 닥쳐올 여름 전까지 최대한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만 한다. 어떤 식물들은 아예 견디기 힘든 여름을 피하려고 그 전에 한 해의 삶을 정리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여름의 길이가 과거 30년에 비해 20일 정도 길어졌다고 한다. 봄의 길이는 거의 변화가 없는데 여름이 훨씬 길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식물들에게 어려운 시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겨울의 길이가 짧아지기는 했지만, 겨울 자체의 혹독함은 그 길이와 관계없이 식물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식물들에게 불리한 환경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계절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식물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식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같은 형편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인 일용 건설노동자들의 삶이 대표적이다. 겨울 동안 그들의 일자리는 정지되고 주머니 사정도 최저로 떨어진다. 봄에 반짝 살아났다가 다시 여름에는 한숨이 깊어진다. 농촌에서 일손을 도우며 근근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 삶이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난방비를 감당하지 못해 집 안에 장작불을 지피다가 숨진 태국인 부부는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자연에 사는 식물들에게 봄을 더 길게 해줄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에게는 국가와 사회가 봄의 온기를 전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구원의 계절 봄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짧은 봄이 지나가면 다시 괴로운 여름이 올 것이다. 우리가 모두 함께 사회적 약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긴 봄을 안겨줄 수 있길 바라본다. <다음 글은 3월 16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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