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주)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ESG 열풍과 기후위기, 탄소 중립 등 여러 가지 이슈로 연초부터 다양한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기업과 담당자가 순환경제에 관심을 갖게 돼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필자를 찾아왔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지만 회의가 끝난 후에 씁쓸함이 남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만난 모 기업 담당자도 신규로 업무에 배치되었다며 찾아왔는데 일단 올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으니 호기심도 좀 있고,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신나 있는 상태면 좋았겠으나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효과를 내야 하는 담당자는 속이 타겠다고 이해했다.

해당 기업이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배출하고 있는 자원이 여러 가지여서 자원순환 현황이나 문제점, 기술적인 한계, 국민 인식 변화 등에 대해 설명이 길어지자, 정보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프고 정리할 시간이 없으니 뭘 해야 하는지 위주로 결론만 간략하게 말해달라고 했다. 자주 듣는 이야기라서 가볍게 웃으며 현상과 배경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도 돌아가서 설명하기 힘들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알고자 하는 마음도 크지 않은 비전문가, 내일이라도 바뀔 수 있는 담당자가 이른 시간 내에 윗분들이 만족할 만한 제안서를 쓸 만큼 정보를 주는 것이 왜 내 일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원순환 문제는 오랫동안 관심의 뒤편에 있었고 요즘 들어 늘어난 관심에 각종 기술과 시도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미팅이 길어진다고 일이 성사되는 것도 아닌데 자원순환 체계를 고도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법적인 체계나 기존 재활용 흐름과 해결을 위한 시도들을 소개하는 것은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하나만 딱 찍어줄 수 있는 유일의 극단적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고, 가짜 정보들도 많고, 오늘의 대안이 내일의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니 말이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으면 필자도 알고 싶다.

두 시간에 가까운 긴 회의를 마치자 담당자가 한숨을 내쉬며 “다 좋은 말이지만, 비용과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역시 담당자의 개인적인 진정성이나 고민의 깊이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제한된 자원의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정부 책임과 관리하에 자원의 순환과 재활용에 대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전국에서 표준으로 진행하도록 안내할 수밖에 없다보니 지역마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현장에서 알아도 도입이 쉽지 않다.

이 상황에서 고도화된 자원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가동하는 일에는 자원과 시간이 반드시 수반된다. 배출자 단계에서 한 번 더 분류하도록 작업이 추가될 수도 있고 새로운 배출 방식이 정착될 때까지 내부 구성원을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필자가 만나는 담당자들이 자원의 구매와 생산에 직접 관계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가장 기본으로 파악해야 하는 정확한 소재, 버려지는 양, 기존 폐기절차에 대해 모르는 경우도 있다. 자원에 따라서는 재활용을 할 수 있는 기술과 기반이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재활용 가능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연구비용을 마련하거나, 재활용이 용이한 단일 소재로 변경하는 것을 가장 추천한다. 그러나 여지없이 소재 개선은 본인들의 소관이 아니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요새는 아예 ESG팀이 진짜 효과를 내려면 생산 팀과 연구소의 협력 체계부터 갖추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Recyclable–자원순환 가능이라는 표시가 유행이던데, 이 표시가 있다고 해서 친환경 제품이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말 그대로 가능성이지 재활용이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자원이 한 차례 쓰임이 끝나고 폐기를 진행할 때, 어떻게 분리배출 및 폐기하는 것이 환경 영향성이 적은지 명확하게 안내할 수 있는 건 생산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바로 버려지는 겉 포장에만 재질과 재활용 표시를 하지 말고 실제 버리는 시점까지 남아있는 부분에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를 표시해야 진짜로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 된다.

미팅은 끝났고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재질 표시로는 탄소 감축량을 숫자로 도출하기도 어렵고, 홍보 기사라도 한 줄 내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했다고 홍보하는 것보다 비용지출 없이도 기존 생산하는 제품에 생산자만 알고 있는 정보들을 명확히 표시하는 것, 이 간단한 변화의 큰 효과를 제대로 이해하는 생산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내일의 미팅에도 열심히 설명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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