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언론인
이석구 언론인

국회는 토론의 장이다. 이념과 가치를 달리하는 정당의 의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장소다. 의원 상호 간, 국무위원들과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고 법률을 만드는 곳이 국회다. 이를 본 국민들은 판단한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우리가 그리는 국회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국회는 이런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의원들의 일방적인 주장과 호통, 자기 정당의 옹호, 정쟁으로 세월을 보낸다. 토론다운 토론은 찾기 힘들다. 지난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한동훈 법무장관과 민주당 권인숙 의원의 질의 응답이 좋은 예다.

한 장관은 “의원님, 제 말 좀 들어 보시면 안 될까요?”라며 14차례나 말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권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려던 한 장관이 자신의 발언을 여러 차례 중단시킨 권 의원에게 한 읍소다. 권 의원은 한 장관의 말은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펼치다 질의를 끝냈다. 그럴 생각이면 왜 장관을 불러냈는가. 문제는 권 의원만 그런 것이 아니란 점이다. 의원들의 대정부질의가 대부분 그런 식이다.

그러나 지난 8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같은 사안을 놓고 한 장관과 가진 질의응답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아주 드문 사례라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차분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도 합리적으로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류 의원의 고성이나 윽박지르는 모습도 없었다. 두 사람의 ‘건설적 토론’ 은 보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사실 전문지식을 갖춘 데다, 많은 정보도 갖고 있는 국무위원들을 몰아붙이기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한동훈 장관처럼 논리적이면서도 전문지식을 갖춘 인사를 상대하려면 의원들이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지금까지 율사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한 장관을 윽박지르기만 하다 창피를 당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류호정 의원은 법조인 출신이 아니면서도 법률안을 놓고 한 장관과 토론다운 토론을 했다. 정치공세가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정책질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회의원들의 자질이나 자세가 문제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들의 개인적 자질은 대부분 훌륭하다. 교수, 법조인, 사회운동가, 언론인 등 전문적 식견과 훌륭한 인품을 갖춰 공천을 받고 국회에 진출한 의원들이 많다. 그러나 의원이 된 후 그들이 보이는 행태는 과거의 평판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각종 막말과 코미디 같은 언행도 예사로 한다. 당 지도부의 지시만 따르는 행동대원이나 거수기가 그들의 주된 역할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으로서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진영으로 나뉜 ‘묻지 마’식 투표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거나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원들은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 눈치나 본다. 유권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깨어나야 한다. 진영으로 나뉘어 무조건 찍는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산당식 투표도 아닌데 어떻게 70~90%의 몰표가 나오는 가. 중립지대인 수도권이나 기호지방도 진영별 ‘묻지 마’ 투표는 여전하다. 단지 중도층이 선택을 달리해 승패가 갈릴 뿐이다.

망국적 지역주의를 타파한다고 지금 중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강화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우린 이미 1972[데일리임팩트 관리자 ]년 유신체제가 시작되면서 15년간 중선거구제를 실시해본 경험이 있다. 소선거구제가 승자독식으로 민의를 왜곡한다고 지금 유신체제 선거로 돌아가자는 얘기인가. 중선거구제는 당내 파벌 성행, 선거구가 커짐에 따른 막대한 선거비용, 신진인사의 진출 제약, 정국 불안정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강화된다 해도 민의의 왜곡현상은 개선되겠지만 지역주의가 타파되는 건 아니다. ‘묻지 마’식 투표가 계속되는 한.

대통령 4년 중임제나 내각제 개헌도 마찬가지다. 이런 투표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재선을 위해 온갖 포퓰리즘적 정책을 펴다 4년 임기를 채울 공산이 크다. 내각제 역시 토론과 타협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정치권의 정쟁만 더 치열해질 것이다.

의원 각자의 생사가 걸린 제도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제도를 탓하기 전에 유권자가 먼저 변해야 한다. 함량 미달의 정치인은 가차없이 퇴출해야 한다. 정치인이 유권자를 무서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현행 제도 안에서도 훌륭한 타협과 화합의 정치를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공자님 같은 말씀이라 하겠지만 국민의식이 향상되어야 정치 수준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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