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미래문명포럼 회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지난 8일, 국회는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을 이유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6개월 이내에 헌법재판소(헌재)가 탄핵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이 충돌하는 바람에 헌재가 심판관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국회 내에서 여야가, 그리고 대통령이 국회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국가의 주요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헌재)에 결정을 떠넘기는 것을 ‘정치의 사법화’라고 한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가 정치과정을 통해 정치적 사안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임명된 헌법재판관이 판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 탄핵, 그리고 호주제, 간통제, 군복무자 가산점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가정책이 헌재의 최종 심판을 거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 최근 들어 사법 의존도가 높아지고 사법부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나?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이상민 장관 탄핵 소추는 국회의 무능, 정당정치의 지리멸렬, 대통령의 정치력 부족 등으로 인해 발생하였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문제를 둘러싸고 국회에서 양대 정당(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극한 대립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의 위력을 발휘하여 탄핵 소추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초유의 장관 탄핵 빚은 ‘정치의 사법화’

이것은 우리나라 국회가 정치적 협상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더구나 여소야대 국회에서 여당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고, 야당은 이재명 당 대표의 사당화(私黨化) 현상으로 인해 이태원 참사의 정치적 책임 문제를 여야 원내 지휘부 간에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결과 헌재의 판단을 구하게 되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법치주의에 대한 강한 집착, 정치보다 법을 우선하는 태도가 헌정사상 초유의 장관 탄핵 소추를 낳았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실과 여야는 탄핵 소추를 두고 서로 입씨름을 벌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또 법치와 민주주의를 다시 성찰해 보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시종일관 강하게 법과 원칙을 강조하였다. 검찰총장을 지낸 최고의 법률전문가인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이상민 장관이 현행 법을 어긴 것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당과 정치적 타협을 거부했다고 본다. 당연히 법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므로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특히 법치가 권력의 남용이나 자의적인 행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기여하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법치가 법 형식주의나 법 만능주의에 빠지면 민주주의를 저해할 우려가 발생한다. 법치가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치는 분명히 두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법에 모든 것을 명시하지 못하므로 모든 국정 운영을 법적 판단에만 의존할 수 없다. 입법 미비가 수두룩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둘째, 법이 경제사회 변화나 국민의 의사를 즉각 반영하지 못하는 지체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 법치에만 매달릴 수 없고 대통령은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이번 이태원참사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참사로서 현행법과 행정에만 의존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은 법치의 테두리 내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이런 일이 발생한 원인을 따지는 것보다 헌재가 이상민 장관 탄핵 소추안을 현명하게 심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9명의 헌법재판관이 탄핵 여부를 결정하게 되고, 그 결과는 윤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 대표인 이재명의 리더십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의 후속 조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므로 헌재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나 헌법학자들은 탄핵 소추 재판에 정치적인 것이 개입해서는 안 되며 오직 법률적인 판단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이 지극히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앞으로 헌재는 어떻게 이 장관 탄핵 소추 사건을 다루어야 하나? 첫째, 현행법과 절차에 따라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고,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파악하여 체계적인 판결을 내려야 한다. 탄핵 소추가 극도로 상반되는 입장의 대립이므로 헌재는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정치적 오해를 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둘째, 헌재의 결정이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대립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고, 이 사안의 불확실성을 전면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한다. 헌재의 결정은 단순한 평가, 의견 표명, 진상 파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헌재 결정이 국민을 납득시켜 이태원 참사의 책임문제를 둘러싼 국민적 갈등과 의문을 완전히 해소해 줄 수 있는 최종적 판단이 되어야 한다.

       헌재 결정 불완전하면 갈등만 더 커져

헌재의 판결이 불완전한 경우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갈등이 오히려 증폭될 수 있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과거 헌재는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그 근거로 ‘관습헌법’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도입했으나, 어떤 관습이 헌법적 규범인지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탄핵 소추 사건 관련 헌재의 결정은 새로운 논란을 불러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헌재는 탄핵 소추 재판을 진행하면서 서로 대립하는 양측이 진지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법정이 서로 대립하는 양측이 역지사지로 생각할 수 있는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헌재 판결이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정치적 분열을 해소하여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시킴으로써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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