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현 논설위원, (주)터치포굿 대표

박미현 논설위원
박미현 논설위원

작년 가을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친척을 방문했다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급하게 아이 옷을 구매하게 되었다. 멀리 갔으니 그 나라에만 있는 브랜드를 찾아볼까 하다가 이미 한국에도 진출한 브랜드의 아주 무난한 검정색 점퍼를 구매하여 오래 입기로 했다.

가격을 확인하기 위해 택을 찾아서 환율을 적용해보고 있는데, 낯선 설명서가 눈에 띄었다.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판매원에게 물었더니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동복은 팔이 자라면 조정할 수 있도록 숨은 부분이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저렴하지 않은 겨울옷을 급하게 구매하는 것에 대한 내적 불편함을 상쇄해주는 순간이었다.

[데일리임팩트 관리자 ]  팔이 길어져도 시침선을 뜯어서 입을 수 있게 설계된 제품 설명서.
[데일리임팩트 관리자 ]  팔이 길어져도 시침선을 뜯어서 입을 수 있게 설계된 제품 설명서.

계산대에서도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VAT 적용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제품에 부가가치세를 미리 포함하여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지출할 돈을 예측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면, 국외 여행 시 표기된 가격에 세금이나 서비스비용 등을 추가로 계산해야 해서 당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라마다는 물론, 주마다, 제품과 상황에 따라서도 세율이 다르게 적용되어 세금과 팁을 계산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을 정도이니 어려움을 겪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또한 상대적으로 부가가치세를 별도로 계산해온 외국인에게는 한국이 훨씬 살기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한참 시간과 머리를 써서 계산 후 영수증을 확인하다 보니, 또 눈에 띄는 것이 있어 결국 또 바쁜 판매원을 불러 세워 세금 적용이 잘못된 것 같다고 물었다. 온타리오주의 의복류에 대한 세율은 주정부세 8%와 연방정부세 5%로 총 13%인데 내가 받은 계산서에는 세금이 더 적게 적용되어 있던 것이다.

계산도 복잡한데 왜 틀리기까지 하는지 원망하는 마음과 함께 답변을 기다리는데, 판매원은 또다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해당 상품이 14세 미만의 아동 제품이므로 세금이 할인된다고 안내해주었다. 솔직히 이번의 자랑스러운 표정은 나는 보지 못했다.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말정산을 통한, 이미 지출한 세금에 대한 환급은 익숙하지만, 구매 시에 바로 적용되는 세금의 절감이라니 어색한 경험이었다.

드디어 매장을 나서 이동하면서 곱씹어보니 우리나라에도 부가가치세 면세 품목들이 있다는 걸 환기하게 됐다. 마트 영수증에 *표로 표시되는 농축임수산물이 면세 적용되는 것과 도서, 학원, 분유와 기저귀에도 부가가치세가 부가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의류라니? 뭔가 익숙하지는 않은 품목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어린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또는 부모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옷을 부담 없이 사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또한 틀림이 없다.

그날 저녁식사의 대화 반찬은 세금 혜택이었다.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로밍 데이터를 써가면서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내가 매번 지출하면서도 모르고 있던 부가가치세 면세 품목이 꽤 있었다. 박물관 입장료, 수돗물, 복권, 일부의 의료서비스 등. 혜택을 누리면서도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니 연신 놀랍고 부끄러웠다.

연관 검색어로 현재 진행 중인 세금 감면 범위 확대를 주장하는 자료들도 찾을 수가 있었다. 시민들의 생활 필수 재화를 어디까지로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과 세제 혜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성명문에서 느껴지는 치열함은 어린이 의복을 구매했으니 세율은 낮아야지 하고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판매원의 편안한 표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이날의 가장 큰 깨달음은 알아서 계산되고 합계값만 확인하는 가격 표기방식이 편하고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일이 살펴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세금 표기방식이 세금의 납부와 혜택의 중요성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내가 세법 전문가가 아니어서 실제로 어떤 법적, 문화적 배경으로 지금의 표기방식을 채택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어도 세금의 납부와 혜택이 모든 시민의 기본의무이자 권리인 만큼 세금 정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는 여전히 의심이 없다.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생활필수 재화가 어디까지인지를 더 많은 국민들이 공감대를 갖고 토론해야 점차 확대되지 않을까?

최근 캐나다 직장인 사이에서 좋은 직장을 평가하는 기준에 회사가 제공하는 보험이 편안한 신발, 안경(처방전 필요)을 포함하는지라고 한다. 어떤 종합보험은 비타민 구매와 헬스 트레이너까지 제공한다는 내용을 들으니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권리에 대한 인식이 앞으로 한참 더 넓어질 거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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