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최근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거듭된 경고성 연설 등으로 이러다가 정말로 핵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미국의 핵과학자회가 최근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지구 종말이 단 90초만을 남겨 놓았다며 지구종말 시계 모습을 공개하였다. 핵과학자회는 1947년 사람들이 인류를 끝내기 위해 무언가를 할 가능성을 상징하기 위해 지구종말 시계를 처음 만들었는데, 냉전 종식 후 자정 17분 전까지 늦춰졌던 지구종말 시계는 이번에 불과 1분30초 전으로 앞당겨져 자정에 가장 가까워졌다고 발표된 것이다. 이 시계는 종전보다 10초가 앞당겨진 것이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이 남았다는 발표다.

미 핵과학자회가 공개한 핵 시계.
미 핵과학자회가 공개한 핵 시계.

이 경고의 핵심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패배를 받아들일 용의가 없이 필사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핵과학자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종말에 가까워지는 데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처음으로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도 지구종말 시계의 움직임에 대해 발표했다.

만약 러시아가 어떤 이유에서건 핵폭탄을 사용한다면 거기에 보복대응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으므로 그때 우리 인류는 공멸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음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이다. 또한 북한도 핵무기를 적재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미국 본토에까지 보낼 능력을 과시하면서 핵을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그럴 리가 없다는 핵전쟁에 의한 인류 공멸과 종말이 ‘설마’에서 ‘정말’로 다가오고 있지 않느냐고 볼 수 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필자에게는 60년 전 세상을 놀라게 한 소설의 상황이 정말로 현실이 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 다시 다가왔다. 바로 1957년에 발표된 영국 작가 네빌 슈트(Nevil Shut)의 소설 '해변에서(On the Beach)'가 전하는 종말의 상황이다.

소설의 표지/아마존.
소설의 표지/아마존.

무대는 1963년 호주의 멜번,

그 전 해에 지구의 북반구에서는 3차 세계대전에 의한 핵전쟁이 일어났다. 이탈리아 옆의 알바니아가 핵공격을 하고 이집트가 미국과 영국을 폭격한다. 이 폭격기들이 소련제여서 소련이 사주한 것으로 오인한 NATO가 소련을 때리고, 중국은 소련 국경 근처의 산업지대를 점령하려 하다가 소련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이때에 사용한 포탄들이 보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코발트탄이이서 방사능 피해가 급격히 퍼진다.

북반부에 가득 차게 된 방사능 구름들은 북반구의 북동 무역풍과 남반구의 남동 무역풍이 수렴되는 지역인 ‘열대수렴대(熱帶收斂帶, intertropical convergence zone)을 통해 남반구로 넘어와 드디어는 남아프리카나 호주 상공도 덮치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호주 해군은 이미 모든 생명이 멸망한 것으로 보이는 북반구의 시애틀 근처에서 모르스 부호가 잡히자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잠수함을 보냈지만 그것은 폐허 속에서 바람에 날리던 창문 창살이 부딪쳐 내는 소리임을 확인한다. 즉 북반구에 더 이상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은 이런 상황에서 호주 멜번의 각 가정과 개인들이 어떻게 종말을 맞는지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정부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먹으면 조용히 죽는 알약을 배포한다. 마지막까지 가족에게 선물을 챙기는 아빠, 술에 잔뜩 취해보는 남자, 자동차 경주에 나가 극한 속도를 내는 사람, 가족에게 주사로 죽음을 맞도록 하는 남자, 북반구에서 이미 죽은 기족들을 환상 속에서 만나 거기에 빠져드는 사람들, 잠수함과 함께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승조원들... 이들 모두가 하나하나 남김없이 죽음을 맞는다.

대학 다닐 때 삼각지의 헌 책방에서 우연히 산 이 소설은 내가 다 읽은 몇 안 되는 영어 원서였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밀려오는 충격, “아! 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정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한동안 멍해 있어야 했다. 소설은 벌써 60년 전에 3차 세계대전을 예상하며 핵전쟁의 시나리오를 짜고 그 전쟁으로 모두가 사라지는 최후의 순간들을 섬뜩하게 묘사하였기에 전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였고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 TV의 주말명화 시간에 방영되기도 했다. 그 소설이 예상한 1963년의 상황이 정말로 60년 만에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새삼 커진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핵과학자들의 경고는 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이 밀리고 밀리다 최후의 선택을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전쟁은, 대량절멸의 수단을 보유하고 있기에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지는 쪽으로 가지는 않는다. “핵 가진 나라가 전쟁에서 지는 일은 없다”는 푸틴의 말이 단순히 협박으로만 넘기기에는 상당히 찜찜하다. “나만 죽을 수 없다. 차라리 다 같이 죽자”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런 문구로 끝난다;

이렇게 세상이 끝나는 것이라네.

'쾅' 하고가 아니라 찍소리도 못하고.

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핵전쟁의 위협이 높지 않았던 6·25 한국전쟁에서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며 전쟁을 계속하려 했지만 우리의 희망과 소원과는 달리 휴전을 하고 말았는데,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마찬가지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지루한 소모전에 들어섰고, 최전선에서는 젊은이들이 매일매일 죽어간다. 이제 우크라이나의 희망대로 그 전에 러시아가 병합한 땅을 다 되찾고 러시아의 완전한 항복을 받는 일은 가능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침략자 러시아를 응징해야 하지 않느냐는 정의론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 핵무기 시대의 국제상황이고 국제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를 지원하는 서방 쪽, 그리고 상대편인 푸틴이 이제는 자신들의 목표를 수정해서라도 이 전쟁을 속히 종결시키는 데로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돌리라는 것이 인류종말 시계의 초침소리의 강력한 메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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