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일 신구대 원예디자인과 교수

전정일 교수
전정일 교수

두 자리 숫자로 영하의 기온이 표시되던 일기 예보가 한 자리 숫자로 바뀌고 낮 온도는 영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엊그제 바꾼 것 같은 탁상 달력도 벌써 한 장 넘어가 2월이 되었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는 지금 2월 달력 첫 주에 쓰여 있는 ‘입춘(立春)’이라는 두 글자가 반갑기만 하다. 환경은 여전히 냉혹한 겨울이지만 곧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설렘과 희망이 마음속에 피어나고 왠지 얼굴에 미소도 번진다.

‘입춘 가절(立春 佳節)’을 맞이하는 농부들은 따뜻한 봄을 기대하는 우리들의 단순한 기쁨과 조금 다른 복잡한 마음으로 분주해진다. 특히, 이즈음에 과수원은 무척 바빠지기 시작한다. 지난가을에 미처 뿌리지 못한 비료도 뿌려주고 날이 조금만 따뜻해지면 일찍 깨어날 병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약도 쳐야 한다. 올 한 해 과일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이 시기에 빠뜨려서는 안 될 일이 가지를 적절히 잘라주는 일이다. 일반인도 다들 아는 전문 용어로 ‘정지전정’이라고 하는 일이다.

왜 과수원의 농부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추운 겨울에 고생스럽게 나무의 가지를 자를까. 일 년 동안 나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생각하면 이 시기에 하는 정지전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온대지방의 나무들은 대체로 이른 봄 새 생장을 시작해서, 초여름까지 잎과 가지를 만들고 꽃을 피우고 어린 열매도 만드는 일을 한다.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는 새로 만든 가지와 열매를 튼튼히 키우고 나무 몸통도 더욱 굳건하게 하려고 양분을 축적해간다. 겨울이 다가오면 열매와 잎을 떨구고 추운 겨울에는 저장된 양분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 다음 봄까지 견딘다.

이러한 나무의 생육 절기를 고려할 때, 봄이 오기 직전에 가지를 잘라주면 이어지는 봄 생장기에 원하는 모양으로 나무가 자라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나무의 모양도 잡아주고 가지의 숫자, 꽃이 필 꽃눈의 숫자 등을 조절해줘야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할 수 있고 적당히 큰 열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지전정을 하는 일은 나무를 ‘구조조정’해주는 것이다. 봄이 오기 직전 아직은 추운 겨울인 입춘 즈음에 나무를 ‘구조조정’해야 과수원에 나무가 좋아지는 봄이 오는 것이다.

한편, 자연에 사는 나무들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안되기 때문에 늦가을 생장을 정지하는 시기에 또는 수시로 스스로 잎과 열매, 심지어 ‘자연낙지’라고 부르는 가지를 떨구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한다. 아직은 좋은 계절에 혹독한 시기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수원에서 농부가 구조조정을 하든, 자연에서 나무들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든 모두 나무를 좋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건강한 가지도 잘려나가는 경우가 많다.

회사나 조직도 구조조정을 한다. 과수원의 나무 전정이나 자연에서 자연낙지처럼, 어려운 시기를 최대한 견디다가 구조조정을 시행하거나 아직은 환경이 좋은 상황에서 어려운 시기를 대비해서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때도 있다.

그런데, 과수원에서 잘려나가는 것은 나무 몸통이 아니라 가지라는 점이 중요하다. 회사나 조직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람을 가지로 보느냐 나무 몸통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무척 달라진다. 모든 회사나 조직의 성과는 결국 그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잘려나갈 가지가 아니라 과수원의 열매를 만들어내고 지키는 나무 몸통이다. 잘려나갈 대상이 아니라 건강해지도록 비료도 주고 약도 줘야 하는 나무의 중심이다.

어려운 경제 상황이 계속되면서 사회 여러 분야에서 사람의 수를 줄이는 인적 구조조정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구조조정이 과수원의 정지전정과는 매우 다른 목표와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 같다.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고 구성원의 합의를 통해 연봉을 조금씩 줄이거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솔선하여 급여 일부를 반납하는 등 어려움을 분담하는 노력이 먼저 이루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견딜 수 없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도 없다.

다만, 지금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구조조정이 과수원의 가지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몸통을 자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 인적 구조조정은 가장 마지막까지도 시행되지 않아야 한다.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솔직한 표현이겠다. <다음 글은 2월 16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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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69년 강원 원주 출생. 서울대 임학과 학사 석사 박사. 식물분류학 및 수목학 전공. 서울대 수목원 연구원, 중국 남경식물연구소・식물원 교환연구원 거쳐 2001년부터 신구대 교수로 재직. 신구대식물원 원장 역임. 저서: 길에서 만나는 나무 123, 자연 자원의 이해(공저), 세계의 식물원 산책(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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